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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⑲ 나야대령 기념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김현우   입력 : 2021-09-29 오전 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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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참전 인도 군인 ‘우니 나야(Unni Naya)’대령의 기념비는 대구 수성구의 범어공원 내(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산156번지)에 있다. 기념비는 범어네거리에서 수성구청을 지나 KBS방송국에서 200여 미터 더 가면 범어공원이 나오는데 범어공원 입구 안내판에 나야 대령 기념비 위치가 소개되어 있다. 공원 입구에서 100여 미터만 올라가면 단아하게 단장된 묘지와 기념비가 나온다.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함께 한 나야대령의 기념비는 동쪽을 제외한 묘소 주위에는 대나무, 광나무, 영산홍, 가문비나무 등이 울타리를 이루었다. 비석 가까이에는 맥문동이 가을바람을 잘 이겨내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기념비 정면으로 향하는 돌계단 양옆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씩을 심어 수문장 역할을 맡겼다. 짙은 회색의 비석 정면에는 크게 ‘國際聯合韓國委員團 印度 交替代表 故나야大領記念碑’라고 새겼고, 그 위에 출신국, 순직장소 및 일시, 매장일자 등을 영문으로 간략하게 적었다. 좌우 및 뒷면에는 간략한 전기, 순직경위와 더불어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내용이 국한문 혼용으로 기술되어 있다. 맨 끝에는 기념비 건립행사를 주관한 조재천 당시 경북지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 대구시 수성구 범어공원 내의 나야대령 기념비와 안내문. ⓒkonas.net

 나야대령은 한국전쟁 당시 국제연합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한국에 들어왔다.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1950년 8월 12일 경북 칠곡군 왜관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지뢰 폭발로 39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본국인 인도에서 그를 안치하고자 했으나 전쟁 중이라 고국으로의 송환이 어려웠던 나야대령의 시신은 유엔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1950년 8월 13일 지금의 대구여고 동편 야산인 속칭 주일골에서 화장하였고, 같은 장소에 1950년 12월 7일 당시 조재천 경상북도지사는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각계의 성금을 모아 나야 대령 기념비를 건립했다. 당시 고국 인도에는 결혼한 지 3년 된 미망인 ‘비말라 나야(Vimala Nayar)’여사와 2살 된 딸 ‘파바시 모한’이 있었다.

 ▲ 불멸의 사랑! 인도와 한국을 잇는다. 나야대령과 미망인 비말라나야 여사, 사랑하는 남편 곁에 영원히 함께하다. ⓒkonas.net

 

 나야대령의 미망인 비말라 나야 여사는 주 뉴델리 한국총영사였던 임병직 씨로부터 남편의 기념비 사진을 받고, 1967년 17년 만에 이국땅에 묻힌 남편의 넋을 찾았다. 그녀는 그로부터 19년 후인 1989년 5월 주한 인도대사와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아와 세상을 떠난 남편의 넋을 기리고 애틋한 마음을 새기다 돌아갔다. 세월이 지나고 산기슭에 버려지듯 방치됐던 나야대령 기념비는 1996년 수성구청에서 보수공사를 통해 주변을 단장하고, 2003년 9월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받았다. 매년 현충일을 맞아 주민, 학생들이 함께 기념비를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

 2011년 나야 대령의 조카사위인 비제이 남비아 UN사무총장 비서실장이 UN 가입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부인과 함께 나야대령 기념비를 참배하였다. 미망인 비말라 나야 씨는 짧은 3년 동안의 신혼생활을 끝으로 이국땅에서 순직한 남편을 떠나보낸 뒤 51년간의 순애보를 간직하다 2011년 9월 '남편 옆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딸 파바시 모한이 그 뜻을 수성구청에 전해 왔고, 2012년 8월 24일 영현 안장식을 거행하여 영혼이나마 남편 곁에 묻히게 되었다. 2021년 수성구는 헌화대 설치 등 나야대령 기념비 재정비공사를 했다. 이국인으로서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숨진 故 나야대령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현충일을 비롯해 수차례 기념비 주변을 깨끗하게 단장하여 학생, 주민 등 참배객들이 안보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야대령의 기념비는 인도인들이 한국을 찾을 때 둘러보는 방문코스가 되고 있다.

 ▲ 나야 대령 기념비. ⓒkonas.net

 

 대구 수성구는 나야대령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매년 기리고 있다. 매년 현충일에는 한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이국땅에서 숨진 나야대령을 기리고자 나야대령 기념비 참배 및 추념식 등 호국행사를 진행한다. 2021년 6월 현충일에도 김대권 수성구청장, 주한인도대사관 국방무관인 ‘라케쉬 쿠마르 미쉬라’대령, 주민, 학생, 참전용사, 50사단 장병, 수성구 재향군인회 등이 참석하여 기념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수성구청장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장렬히 순직한 나야 대령의 기념비가 수성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의미를 부여하고,“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의 거룩한 희생을 추모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그 정신을 기리는 사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교류도시인 인도 푸네시와의 교류를 지속해서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특히 학생 교류단 방문, 상호 문화교류, 경제협력 등을 통해 故 나야대령으로 맺게 된 한국과 인도의 인연을 아름답게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수성구재향군인회에서는 추모행사는 물론 참배와 함께 주변 환경정리 봉사활동 그리고 지역 내 청소년 학생들의 안보교육 장소로 나야 대령 기념비를 자주 찾고 있다. 

 ▲ 대구시 수성구 재향군인회 회원들이 나야대령 기념비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konas.net

 

 ‘북괴의 남침을 저지하다 숨진 고(故) 나야 대령에게 신의 가호가 있어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이국땅에 묻혀야 했던 나야대령을 기리는 비문의 한 구절이다. 기념비 취재를 마치면서, 6.25전쟁 시 참전 후 순직한 나야대령도 집안의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였으나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노력하다 순직하신 사연이 안타까웠다. 젊디젊은 39세의 나이에 이역만리 타국에서 아깝게 순직한 나야대령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멘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지만, 같은 직업군인으로서 왠지 남 같지 않은 전우애가 느껴진다. 돌이켜 보면, 나야대령 사후 지난 71년 동안 한반도에는 실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가 만약 오늘 갑자기 소생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머나먼 남의 나라에 와서 꽃다운 나이에 전장의 포화 속에서 산화한 자신의 희생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할까? 영면해 있는 그는 “발전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서 희생은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나라는 안보가 튼튼해야 국민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 할 것 같다. 가을의 중반을 지나면서 범어공원에 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야대령 기념비를 찾아서 그분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오늘을 사는 지혜도 배웠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본다. 정재숙 시인의 나야대령 추모시 <또 하나의 등불로> 를 읊으며 글을 맺는다. 

<또 하나의 등불로> 

나야르 그대가 왔다.
타골이 건넨 횃불 높이 들고,
동방의 등불 이곳을 지키러

비말라 나야르
그대도 왔다.
한국전쟁이 앗아간 불멸의 사랑을 찾아
팔랑 한 장의 붉은 꽃잎으로 날아 왔다.

꺼지지 않는 등불로 빛나고 있는 고운 영혼이여 
그대가 목숨 바쳐 지켜준 이 땅 이 하늘아래
봄 꽃 피고 가을 잎 물들고 흰 눈 날리는 일
자자손손 같이 보며 피보다 진한 영원이 되었구나. (konas)

향군 대학생 기자단 김현우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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