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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㉟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청년 윤봉길을 만나다.”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박태랑   입력 : 2022-02-25 오후 1: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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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없는 평화는 국민을 지킬 수 없었다”는 일간지 헤드라인이 진심으로 아프게 와닿는 요즘이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연일 화염 속 위기상황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에게는 3.1절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은 103년 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자극을 받고 식민지 노예교육을 배격하면서 자퇴한 뒤 조국의 독립운동에 매진한 한 청년을 만나보고자 한다. 그 청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양재시민의 숲. 양재시민의숲역 5번 출구로 나와 다리를 따라 100m 정도 걷다 보면 우측에 검정색 기와를 얹은 박물관이 있다. 바로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다.

 ▲ 박태랑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앞 윤봉길 의사 동상 ⓒkonas.net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은 윤봉길 의사의 삶과 업적을 올바로 알리고, 농촌계몽과 의열 투쟁을 위한 애국애족의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자 1988년 12월 1일 국민들의 성금으로 양재시민의 숲 안에 건립했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에게 영화 ‘암살’로도 친근하다.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을 만난 암살조가 태극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은 꽤 익숙한 장면이다. 바로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의 공원에서 폭탄을 던기지 전에 찍었던 장면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 매헌기념관 전경(좌)과 기념관 중앙홀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 좌상(우) ⓒkonas.net

 

 윤봉길 의사는 1908년생으로 고려 장군 ‘윤관’의 후손이며 시인 겸 계몽가다. 그는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입단해 몸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이동녕과 이시영, 조소앙 등과 1932년 4월 29일 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축하기념식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이때 상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상해의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 등을 즉사시키고,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 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 등에 중상을 입혔다.

 이어 현장에서 붙잡혀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를 받고 그해 11월 18일 일본으로 호송돼 20일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됐으며, 12월 19일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올해는 윤봉길 의사의 순국 90주기가 되는 해다.

 ▲ 윤봉길 의사 소개 안내판(좌)과 순국관련 안내판(우) ⓒkonas.net

 

 기념관 안에 들어서면 중앙홀에는 태극기가 펼쳐있으며, 그 앞엔 폭탄을 던지기 전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한 윤봉길 의사의 좌상이 위치해 있다. 

 제1전시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출생과 성장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제2전시관에서는 상하이 폭탄 의거, 한인애국단, 유해봉환 등을 접할 수 있고 사진촬영과 VR체험 공간이  있다. 야외에는 윤봉길 의사 동상이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 바쳐 무엇인가 큰일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당시 폭탄투척 상황도 ⓒkonas.net

 

 그의 유골은 독립 후 대한순국열사 유골 봉환회의 노력으로 1946년 7월 6일 고국으로 돌아와 10여만명의 추모 인파가 모인 가운데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25세의 청년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거쳐온, 짧지만 그 누구보다 강렬했던 삶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우리도 그의 정신을 본받아 진심으로 국가의 소중함을 담은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돌아본 후 자료를 정리하는 동안 동유럽 약소국의 비애가 속보로 뒤덮이고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인 24일(현지 시각)만 해도 우크라이나인 사상자 226명이 발생하고 기반 시설 83곳이 무력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와 비슷한 우크라이나 사태가 결코 남의일이 아님은 자명하다. 힘없이 나라를 빼앗겨 전쟁과 다름없는 사상자가 발생하고 온 국민의 삶이 피폐하게 되었던 우리 역사를 돌아보며 자주독립, 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가치를 깊이 되새겨 보자.(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박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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