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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애라·심영식·신관빈·임명애...3월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감옥 '동지' 여성독립운동가 4인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23-02-28 오전 11: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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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개성과 파주 지역의 3·1운동을 주도하고,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 동료인, 권애라(1990년 애국장)·심영식(1990년 애족장)·신관빈(2011년 애족장)·임명애(1990년 애족장) 선생을 <2023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 유관순과 서대문감옥 '동지' 여성독립운동가 4인 [국가보훈처 제공] ⓒkonas.net

 

 경기도 강화(현 인천광역시) 출생(1897년)의 권애라 선생은 1918년 서울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 교사로 재직했다. 

 재직당시인 1919년 3월 1일 선생은 예배당에 숨겨두었던 독립선언서를 직접 꺼내 와 심영식, 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 배포하고, 3월 2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했다. 

 다음 날인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은 거리시위에 나서며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로 선생은 독립선언서 배포 혐의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아 경성복심법원에 상고했으나, 1919년 7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1920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 조직원으로 독립자금 모집에 관여한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해 가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해애국부인회와 고려공산당 상하이 지부에서 활동했고, 1922년 1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 상해애국부인회 대표로 참가하면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40년 항일 독립운동 참여를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고, 아들 김봉년과 함께 지린성 영신농장을 거점으로 독립군 병력 충원을 위해 활동 중 1943년 3월 일본 관동군에 체포되어 만주국 고등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장춘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광복으로 석방되었다. 

 1887년 개성 출생의 심영식 선생은 열병을 앓은 뒤 시력을 잃어 시각 장애를 갖게 되었다. 호수돈여학교를 거쳐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하였고, 1919년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1일 권애라, 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3월 4일 개성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투옥 중 간수에게 뺨을 맞고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후유증으로 고생)를 치렀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개성 미리흠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6개월 만에 출옥했다. 

 1885년 황해도 출생의 신관빈 선생은 호수돈여학교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기독교 전도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권애라, 심영식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다음 날 3월 2일 선생은 교회에서 체포되어, 1919년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만기출옥 후, 선생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감옥생활에 대해 “사람으로는 받지 못할 만큼 망측한 대접을 받았다”라고 회고했으며, “우리의 할 일은 학교를 많이 설립하여 청년 남녀에게 교육을 많이 시키고 해외로 유학을 보내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886년 경기도 파주 출생의 임명애 선생은 한국 구세군 사령(염세호)의 배우자로 1919년 구세군으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1백여 명을 이끌고 앞장 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는 파주의 첫 만세시위였다. 3월 25일에는 선생의 집에서 배우자, 학생 등과 함께 격문을 작성하여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선생은 거사 예정 이틀 전인 3월 26일 염규호 등 700여 명과 와석면사무소로 가서 유리창을 부수고, 면서기들에게 휴무하라고 압박했으며, 주재소로 진행하던 중 일제 헌병의 발포로 최홍주가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고 시위대는 해산됐다. 

 선생은 이날 현장에서 체포되어 1919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권애라·심영식·신관빈·임명애 선생은 주체적으로 3·1운동에 참여하여, 일제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여성 독립유공자이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애라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심영식 선생과 신관빈 선생에게는 1990년과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으며, 또한 임명애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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