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해군함정 안에서 함장이 부하 여군장교에 대해 성희롱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여군이 함정에 배치된 뒤 함정 안에 성희롱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달 초, 해군 상륙함이 남아시아 지진해일 구호물품을 싣고 인도네시아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였다. 함장인 김모 중령은 함장실에서 위관급 여군장교의 어깨를 만지며 "내 첫사랑과 닮았다. 밖에서 따로 만나자"는 여군장교로서는 수치심을 느낄만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해당 함장은 잘못을 시인하고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는데, 해군은 이와 관계없이 4일 오후에 징계위원회를 열어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停職)'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월말 전역할 것으로 알려진 김 중령에게 '정직'은 별 의미가 없는 처벌이다.

금녀(禁女)의 공간으로 불렸던 해군 함정에 여군이 처음 배치된 것은 2001년도였다. 당시에는 군수 지원함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는 구축함 등 전투함에도 배치 되었으며 현재 약 50명 정도의 여군이 함정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함장의 권위 때문이기도 하다. 함장은 배 안에서 준 사법권을 갖고 있다. 예를들어 해상 작전 중에 명령에 불복하거나 군율을 어기는 장병을 배 안에 있는 영창에 가둘 수도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함정을 방문했을 때도 함장의 자리에는 앉지 않는 게 전 세계 해군의 관례일 정도로 함정 내에서의 함장의 권위는 인정되고 있다. 이처럼 함내에서 절대권을 가진 함장의 요구가 외부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 안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피해자가 느낀 압박감은 오죽했을까 짐작이 간다.

해군은 2001년 함정에 여군이 처음으로 승선하면서부터 성희롱 예방을 위한 지침을 만들어 예하 각 부대에 하달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함내 여군 침실에는 누구도 들어 갈 수 없도록 규정했고, 부득이 한 경우 상관이 들어가야 할 때에는 침실문을 열어 두도록 되어있다. 성희롱 예방을 위한 사전 조치는 어느 정도 해 놓았으나 정작 이 지침을 솔선이행하고 감독해야 할 함장 스스로가 규칙을 위반한 것이다.

여군에 대한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건이 함정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과거에도 부대 안에서 유사한 사건은 적지 않았다. 2000년에는 육군 사단장이 부하 여장교를 성추행 해 보직 해임되는 사건이 있었고, 2003년에는 군의관이 간호장교를, 그리고 또 병사가 상관인 여군장교를 성추행한 일도 있었다. 심지어 2년 전에는 남자 대대장이 당번병을 성추행하는 동성간 성범죄가 드러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성간, 동성간 사건을 모두 포함해 군내 성범죄 건수는 2002년도에 139건, 2003년도 202건, 지난해 197건으로 집게 됐다.

지금은 육.해.공.해병대 어디에도 여군이 없는 데가 없다. 해마다 여군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여군 숫자가 늘기 때문에 성범죄가 늘어 날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군대가  남자만의 군대에서 남녀의 군대로 변하고 있고, 여군이 장기간 작전에 투입되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군내 성범죄에 대한 대책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어야 하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뒷따라야 한다.

해군의 경우에도 함정내 과다 노출과 성적인 농담 금지를 담은 '여군해상 근무 지침'이 오래전에 제정된 것 처럼 군 전체적으로 규정이나 지침은 잘 만들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상명하복의 군기가 엄정한 군내에서 하급자가 어떻게 상급자의 뜻에 저항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 중에 하나로 지적될 것이다. 또 군대에서 이런 문제가 벌어졌을 때 마다 보수적인 일부 지휘관들이 군에 사기를 떨어뜨린다거나 일부 몇 명의 문제라고 축소시키고 은폐시키며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점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도 문제점 중에 하나다.

군대내 가혹행위에 대한 처벌 10건 가운데 9건 꼴로 경징계에 그치고 있다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최 의원이 3일 육군으로부터 제출받은 `2003-2004년 상습폭행 및 가혹행위 징계현황'을 분석한 결과, 가혹행위와 관련해 회부된 154건 중93%(143건)가 경고, 징계유예 등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렇게 어물쩡 넘어가서는 군대내 성희롱 사건이나 가혹행위가 절대 근절될 수 없는 것이다.

군내 인권,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이제 시작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군내에 전반적인 인권의식 부재와 남성중심 문화에 따라 팽배해 있는 성희롱, 성추행에 대한 불감증 등을 하루속히 개선할 때 군의 전투력이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