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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54) 6.25반공 투쟁 산악대원 전적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양혜린   입력 : 2024-05-14 오전 10: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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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리에 있는 한국전쟁 때 가평 지역을 수호하기 위해 활동한 반공투쟁 산악대원들을 기리기 위하여 6.25 반공산악동지회가 건립한 6.25 반공투쟁 산악대원 전적비가 있다.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리에 위치한 6.25 반공투쟁 산악대원전적비 전경 ⓒkonas.net

 

이 지역에서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다음 날인 6월 26일 한국군 10중대의 주력부대는 가평군 목동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여 금곡으로 후퇴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3일 만에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였고 7월 3일에는 한강 이남으로 진격하였다. 한국군이 수세에 몰린 상황 속에서 가평에서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1950년 9월 15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였고 9월 28일에 서울이 수복되었다. 가평은 서울이 수복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은 10월 4일에 수복되었다. 결사대를 조직하였던 가평인들은 가평이 수복되기 전까지 게릴라전으로 북한군과 전투를 하였다. 수복 이후에는 경찰연합으로 공비를 색출하는 데 주력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은 가평군과 가까운 춘천시를 점령하였다. 가평 청년들은 북한군에 항전하기 위해 강원도 춘성군 서천리 일대의 산간지대로 피신하였고, 10명의 청년이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10명의 청년들이 조직한 결사대는 이후 반공 투쟁 산악대로 발전하였다. 반공투쟁 산악대는 1950년 8월 15일에 정식 발기회를 개최하였다. 발기회에서 대장, 중대장 등 임원 선출과 결의문 낭독 등을 하였으며, 선언문은 권희경이 작성하였다. 반공투쟁 산악대는 대장이었던 이승균을 포함한 86명의 대원이 있었으며, 방하리 칼봉산의 화전민 집채를 본거지로 삼고 활동하였다. 산악대는 가평이 수복되는 10월 4일까지 약 90여일간 활동하였다. 반공투쟁 산악대는 내무서를 습격하고 정보와 무기를 획득하였으며, 인민군이 의용군을 모집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산악대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9월부터 가평이 수복되는 10월 4일까지 공산군 패잔병들을 추격, 체포, 총살하였다.

가평이 수복된 10월 4일 이후에도 패잔병을 격퇴하였다. 반공투쟁 산악대의 총 사살 및 생포는 33명, 북한군의 무기 약 20점을 압수하였다.

 ▲ 6.25반공산악대원전적비 비문 ⓒkonas.net

 

이처럼 가평 지역을 수호하기 위해 활동한 반공투쟁 산악대원들을 기리기 위하여 6.25 반공산악동지회가 1999년 4월 17일에 6.25 반공투쟁 산악대원 전적비를 세웠다.

6.25전쟁 발발로 평화롭던 당시 남면 방하리에도 북한군이 들이닥쳤고, 조국과 내고장, 내 가족을 지키고자 마을의 청년들과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반공투쟁 산악대를 조직했다. 주변 지리에 밝은 이들은 추천시 남면, 경기도 가평, 청평지역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불순분자 제거, 내무서 습격 등으로 북한군과 내무서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많은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매년 가평읍에서는 현충일에 전적비 주변을 대청소하고 있으며, 6월 25일에는 산악대원들이 모여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한번 호국영령들을 위한 묵념을 해본다. (konas)

향군대학생인턴기자 양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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