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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58) 춘천지구 전적비

Written by.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입력 : 2024-06-11 오전 10: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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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의 도시 춘천. 휴전선 부근 파로호부터, 소양호, 춘천호, 의암호로 이어지는 북한강 물줄기가 지나는 곳이다. 춘천 수변공원에서 바라보는 의암호는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 이 공원 한쪽에 위치한 춘천지구 전적비를 찾아가 본다. 

한국전쟁 개전 초기에 각 전선에서 국군의 지휘체계가 와해된 채 철수를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도 춘천주둔 국군 제6사단만은 유일하게 춘천, 홍천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시켜 북한군의 전박적인 작전계획 수행에 차질을 빚도록 만들었다.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삼천동 수변공원에 위치한 춘천지구 전적비 전경 ⓒkonas.net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6사단은 가평에서 현리까지 84㎞의 넓은 정면을 방어하고 있었다. 제6사단은 사단사령부를 두고, 예하의 제7연대는 춘천 방면, 제2연대는 홍천 방면, 제19연대를 예비연대로 원주에 주둔시키고 있었다.

반면에 북한군은 춘천과 홍천에 제2군단을 공격 부대로 투입하였다. 북한군 제2군단은 부대 규모 면에서 서울 방면을 공격하는 제1군단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임무의 중요성은 매우 높았다. 제2군단이 예정된 시간 내에 춘천, 홍천을 점령한 후 이천, 수원, 그리고 원주를 장악해야만 국군 주력 부대에 대한 완전한 포위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춘천지역에서는 경계진지를 돌파한 북한군 제2사단 제6연대가 자주포 10대를 앞세우고 국군 제7연대 제1대대가 배치된 옥산포로 공격해 왔다. 이 때 대전차포중대의 심일 소위가 육탄공격으로 자주포 2대를 파괴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고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제6사단 포병대대의 활약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북한군은 소양강을 도하하지 못했다. 국군 제7연대 제1대대가 26일 오전에는 포병의 지원포격과 원주에서 이동한 제19연대 제2대대의 측방엄호 사격을 받으면서 옥산포로 집결 중이던 북한군 1개 대대를 기습 공격해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 춘천지구 전적비 조각상(좌)과 안내문(우) ⓒkonas.net

 

한편 소양강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27일 11시경, 한동안 두절되었던 사단과 육군본부를 연결하는 전화가 소통되었다. 육군본부 참모부장은 “서부전선이 완전히 무너졌고 육군본부는 시흥으로 철수함으로 제6사단은 사단장의 판단에 따라 철수하면서 중앙선을 중심으로 중부전선에서 지연전을 전개하라.”는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비로소 인접 부대의 전투 상황을 알게 된 사단장은 홍천 방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결심하고, 춘천-홍천 사이의 원창고개에서 29일 정오 무렵까지 수 차례의 북한군 공격을 저지한 후 홍천으로 철수하였다.

춘천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을 때 홍천 북방에서도 국군 제2연대가 27일 아침부터 북한군 제12사단으로부터 강력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제6사단장은 인제-홍천 축선의 제2연대가 위기에 처하자 춘천으로 증원되었던 제19연대를 홍천으로 전환하여 말고개에서 북한군을 저지하도록 했다.  

제2연대와 제19연대 제3대대는 대전차 특공대를 조직해 10여 대의 자주포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북한군 제12사단 주력은 29일 아침부터 전면적인 공격에 나섰으나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 때 제2연대는 북한군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반격을 가하다가 후퇴하는 방법으로 적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로 인해 북한군은 6월 30일 18시에야 홍천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은 방어에 유리한 춘천의 소양강과 홍천의 말고개 일대에서 지형적인 이점을 최대로 이용하여 6일 동안 방어전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 2개 사단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북한군 제2군단은 춘천과 홍천 축선으로의 진출이 지연되었다. 

 ▲ 비문(좌), 약사문(우) ⓒkonas.net

 

북한군은 국군의 병력 증원과 퇴로를 차단함으로써 그들의 제1단계 작전에 기여한다는 당초의 작전계획 수행에 차질을 빚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국군이 한강방어선을 형성함으로써 미군이 투입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되었다. 이후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반격 작전으로 한국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전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요즘 스포츠 중계를 보다 보면 ‘졌잘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춘천지구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이 보여준 활약이 딱 이 말과 어울리지 않나 싶다. 

평화로운 의암호의 북한강 물이 한때는 적을 막아내는 방어의 한 축을 담당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한 빈약한 무기를 대신해 화염병과 폭약을 가지고 육탄으로 적 전차를 파괴하여 전진을 저지하였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도로에 커다란 덤프트럭만 지나가도 무서운데 몸으로 탱크에 맞서서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오늘도 자유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령분들을 잠시나마 생각해 보고 그분들의 희생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해본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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