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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기념] (62) 함준호 장군 전사지

Written by. 인턴기자 김민   입력 : 2026-10-20 오후 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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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외할머니 댁 근처에는 작은 오솔길이 조성되어 있다. 필자는 이전에 여러 차례 이곳에서 산책을 한 바 있으나, 오솔길 옆 공원에 위치한 위령비를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위령비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강북구 출신 참전용사 88명과, 6.25 전쟁에서 첫 번째로 전사한 국군 연대장 함준호 대령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 함준호 장군이 전사한 위치에 세워진 전사지 명비. 원래 다른 위치에 있었으나 해당 지역이 사유지가 된 관계로 최근 이곳으로 이전했다. ⓒkonas.net

 

흔히 함준호 대령은 첫 번째 연대장 전사자로만 기억되지만 실제로 그는 훨씬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그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국방경비대로 임관하자마자 여순 사건 진압에 투입되었다. 그는 당시 사건의 거점지나 다름없었던 여수와 순천을 탈환했고, 사건의 주모자들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반대로 먼저 자수한 공비들에게는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여순 사건은 끝이 났지만 직후 6.25 전쟁이 발발했다. 함준호 대령은 북한군에 맞서 서울 북부의 동두천과 의정부 일대에서 방어전을 전개했지만 압도적인 전력차로 성북구 일대로 후퇴하여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전열을 재정비하려던 찰나, 북한군의 공작으로 통신이 끊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통신이 끊기자 전방 부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여기서 함준호 대령은 직접 전선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함준호 대령은 통신이 복구될 때까지 안전한 후방에서 지휘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전방과의 연락이 어려워 아군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지체없이 전방으로 갔다.

그러나 전선에 이르렀을 무렵, 미리 길가에 매복한 북한군이 대령이 탑승한 차량에 총격을 가했고, 결국 함준호 대령은 오늘날 우이동 근교에서 전사했다. 그는 사후 1계급 추서되어 준위로 진급했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인장되었고 1년 뒤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흔히 사람은 궁지에 몰리게 되면 두려움이 몰려와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안전한 선택지를 고른다고 한다.

아마 1950년 6월 27일의 함준호 대령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연락망도 없는 상태에서 연대장이 직접 전방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연대장으로서 위험을 감수하고 전방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는 쪽을 택했다.

 ▲ 강북구 출신 6.25 참전용사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위령비. ⓒkonas.net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임무 수행과 휘하 부대를 우선시하는 쪽을 고른 함준호 대령의 행적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리더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다시 깨닫게 해 준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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