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정상회담의 평가
2007년 4월 2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근교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아베신조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베 수상과 부시 대통령의 회담은 200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 이어 2번째다. 이번 회담은 약 1시간 반 동안 이루어졌다. 회담의 많은 시간이 북한문제에 관한 의견교환이었다고 한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6자회담 2.13 합의에 따라 핵시설의 폐쇄 및 봉인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차 제재조치를 행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미국의 인내력에 한계가 있다고 하면서 북한의 행동을 촉구했다. 아베 수상은 납치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얻었다고 했다.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하여 아베 수상은 동정과 사죄의 의사를 표시했고, 부시 대통령은 고노담화와 아베 수상의 미국 방문 중 발언이 마음으로부터의 솔직한 것이고 사죄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미일동맹에 대해서는 공통의 가치관과 이익에 기초해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동맹관계가 이만큼 강했던 적이 없고 긴밀하게 연대하는 것이 국민의 이익이라고 했다. 아베 수상도 이번 방미의 최대 목적은 부시 대통령과의 사이에 둘도 없이 소중한 미일동맹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베 내각의 사명으로 전후체제로부터의 탈각을 추구한다고 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연구하는 간담회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베 수상은 이라크 부흥과 안정을 위한 부시 대통령의 결의와 자세를 지지한다고 하고, 일본에서 이라크부흥지원특별조치법의 연장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전했다. 항공자위대의 파견기간을 2년간 연장하는 법안이다. 아베 수상은 미사일방위 시스템의 배치를 착실히 추진하고, 미 해병대의 후텐마 비행장 이설 등 주일미군 재편에 적극적으로 착수한다고 했다. 미일 양국은 회담 후, 경제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문서를 발표했다. 지적 재산권 보호의 국제적 강화, 세계무역기구(WTO)의 신다각적 무역교섭(도하 라운드)의 촉진,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권(FTAAP) 구상의 착수,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정보교환, 에너지 안전보장과 지구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한 클린에너지 개발 등을 포함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둘도 없이 소중한 미일동맹을 구축하고자 하지만 미국입장에서는 미일동맹이 동맹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미일동맹의 심화에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대북정책에서 양국의 입장차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 불확산을 중요시하는 반면 일본은 북한의 핵보유 저지가 제1의 목표다. 핵문제의 진전을 위해 대화노선으로 바꾼 미국과 납치문제가 진척되지 않으면 지원에 응하지 않겠다는 일본 간에 입장차가 있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따라 동결자금을 해제하는 등 대북융화책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 일본은 염려한다. 일본만이 대북 강경책을 취해서 고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검토에 대해서는 일본의 입장에 따라 납치문제를 고려한다고 했다.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조건으로 북핵문제의 진전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일본은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해제는 용인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베 수상의 방미 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 종군위안부문제에 관한 대일본결의안이 제출되었다. 이 안건에 대한 표결이 5월 중에 있을 가능성이 있어, 이를 대비하여 아베 수상은 4월 26일 미 하원에서 펠로시 의장 및 지도부와 1시간 정도 회담하고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미 민주당 이노우에 상원의원은 이제까지 일본 총리 7명이 사죄했는데 이런 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의문을 표시했다고 한다.
아베 수상의 사죄에 대해서는, 수상이 왜 부시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대통령은 사죄를 받아들이는가 하는 비판이 있다. 사죄는 위안부들에게 하고 그들에게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다. 일본 국내와 아시아의 비판은 무시하다가 미국의 비판에만 신경 쓴다는 비난이다. 미국의 반응 중에는 아베 수상의 사죄가 모호하다는 평가도 있다. 2007년 4월 27일 일본 국내에서는 최고재판소가 전후보상재판에서 청구권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전시 종군위안부와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을 당한 중국인들이 일본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으로 상고심인 최고재판소에서 강제사실은 인정했으나 보상책임은 부정했다.
고이즈미 수상 시기의 미일정상회담과 비교해 볼 때, 이번 회담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한 국제적 위상의 변화, 한미 FTA의 체결, 북핵문제의 전개, 미국 내의 요인 등으로 인한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미중, 미일, 한미관계가 동시에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해준 정상회담이었다고 할 수 있다. (konas)
김성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oung@sejong.org)
출처: 세종연구소 세종논평 84호(200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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