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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함께 한 형제..같은날 입대해 한 날 전사

대전국립묘지 안장된 고(故) 유석오ㆍ석환 일병
Written by. konas   입력 : 2007-06-25 오전 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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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날 입대.전사한 형제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유석오(왼쪽.형).유석환(동생) 일병은 형제로 1950년 12월31일 8사단에 입대, 1951년 4월6일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 투입됐다가 함께 전사했다. 형제의 유해는 2001년 5월21일 동시에 발굴돼 2002년 4월26일 현충원에 안장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같은 날 입대해 같은 부대에 배치된 뒤 한 날 같은 전투에서 전사한 형제의 비극적인 사연이 뒤늦게 공개돼 전쟁의 참상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다.

 현재 대전 국립현충원에 나란히 안장돼 있는 고(故) 유석오ㆍ석환 일병이 주인공이다.

 2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대전 국립현충원 등에 따르면 유 일병 형제는 1950년 12월31일 국군 8사단에 입대해 10연대에 함께 배치를 받았다. 형 석오(당시 19세) 일병과 동생 석환(당시 17세) 일병의 군번은 각각 '0181005', '0181014'로 군번을 받으려는 순간에도 헤어지지 않으려는 듯 바싹 붙어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형제가 같은 날 입대하게 된 이유와 관련, 당시 16세였던 이들의 여동생인 유석연(73.경기도 이천시)씨는 "내 기억으로는 19세와 17세인 오빠들에게 징집명령이 내려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형제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때 강원도 횡성지구 전투에 참전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같은 해 4월6일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도 나란히 참가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 형제는 같은 중대에 배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동생 석연씨의 한 가족은 "석환 일병은 당시 군에 갈 나이가 안됐지만 징집됐다"며 "같은 부대에 배치받은 것은 형을 의지하고 따라다니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가족의 말대로라면 유 일병 형제의 사연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 진태(장동건 분), 진석(원빈 분)의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만 18세로 징집 대상이었던 동생 진석은 군인들에 의해 강제로 군용열차에 오르게 되고 진석을 되찾아오기 위해 열차에 뛰어오른 진태 또한 징집되고 만다.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와 진석은 훈련받을 시간 조차 없이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전투에 함께 참가하지만 결국 진태는 동생을 구하려다가 죽고 만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유 일병 형제는 빨치산 토벌작전에 참가한 것을 마지막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만다. 빨치산과 전투에서 형제는 전사했고 유해는 전투가 벌어졌던 전남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지역에 매장된 것.

 육군 전사(戰史)에 따르면 대구에 주둔했던 육군 8사단 3대대 10중대원들은 전남 화순지역 화학산, 밀봉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을 토벌하려고 1951년 4월 화순읍 이십곡리 일대로 파견됐다.

 4월5일 화순에 도착한 이들은 이튿날 새벽 빨치산의 기습공격을 받고 백병전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26명이 전사했고 당시 주민들이 전사자 장례를 치르고 매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석오 일병이 군대 가던 해 부인은 딸을 임신 중이었지만 동생 석환 일병은 나이가 어려 결혼을 하지 않았다.

 여동생 석연씨는 "3남1녀 가운데 아들 2명을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어머니는 눈물로 한 세월을 살다가 10여년 전에 세상을 떴고 아버지는 어머니 보다 더 일찍 가셨다"면서 "어렵게 사시다가 가셨다"고 한숨을 쉬었다.

 공교롭게도 형제는 유해까지 같은 날 발굴돼 유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육군이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2001년 5월21일 실시한 유해발굴 작업에서 형제의 완전한 유해가 발굴됐던 것.

 형의 유해에서는 비옷(판쵸우의) 1점과 M1 소총실탄 7발, 군복 단추 22개가 나왔고 동생은 전투화 1족, 숟가락 1개, 단추 6개, 비옷 1점이 유해와 함께 발굴됐다.

 육군은 형제의 유해에서 유전자(DNA)를 채취해 전사자 유가족으로부터 미리 채혈한 DNA를 일일이 대조한 결과 신원을 최종 확인하고 2002년 4월26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형제의 묘비 뒷면에는 전사일이 '1951년 4월6일'이라고 또렷이 새겨져 있다.

 유석연씨의 아들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족연금이 끊겼다"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장성한 아들 2명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그 가족들은 한 평생을 가난과 싸웠다. 남은 가족 한 사람에게라도 국가의 혜택이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연합)

 konasnet@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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