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아르헨티나 한인 최초 앵커 황진이씨
아르헨티나 앵커 전문학교(ISER) 수석 입학ㆍ졸업, 아르헨티나 국영TV 최연소 앵커, CNN 스패니시(Spanish) 아시아 문제 분석가, 국제 변호사….
8살 때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황진이(30, 사진)씨가 그곳에서 20여 년 만에 이뤄낸 것들이다. 조선시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던 여성 황진이가 21세기를 산다면 이와 비슷할까.
제7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참가차 서울을 찾은 그는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참되게(眞) 살라는 뜻"이라면서 "영화 '황진이'가 개봉했다고 들었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황진이와 저의 닮은 점이요? 사회의 벽을 넘기 전에 먼저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던 점인 것 같아요. 언어도 완벽하지 않고 아르헨티나 미인 기준에도 맞지 않은 이민자로서 앵커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자신을 먼저 설득해야 했거든요."
이민자 자녀 대부분이 변호사나 의사, 사업의 길을 택하는 것에 반해 황씨는 앵커 전문학교를 수석 졸업한 뒤 한국인 최초로 텔레페(TELEFE) TV의 뉴스 진행을 맡았다. 당시 나이는 22살로 방송국 최연소 앵커였다.
"졸업 후 데모 테이프를 들고 여러 방송국을 다녔는데 텔레페 TV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어요.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더니 바로 출근하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담당 국장이 '뉴스 메인 앵커야'라고 하셨죠. 정말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어요."
방송국은 황씨를 위해 뉴스 프로그램의 메인 앵커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릴 정도로 '파격 대우'를 했다. 하지만 그만큼 동료의 질투도 만만치 않았다. 완벽하지 않은 스페인어도 넘어야 할 벽이었다.
"리포트 작성에 남보다 3-4배는 정성을 쏟아야 했어요. 뉴스가 끝난 뒤에도 불 꺼진 스튜디오에 남아 연습을 했고요. 화장실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제 말 한마디에 많은 한국 교민들이 힘을 얻는다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죠."
2년 간의 메인 앵커 생활과 국제뉴스팀장을 거친 그는 방송 생활을 잠시 접고 대학에서 공부한 국제법학 전공을 살려 현재 법률회사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상류층을 위한 교양 잡지 'RSVP'의 국제뉴스 에디터, CNN 스패니시에서 아시아문제 분석가로도 활약하고 있는 그는 "방송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국제변호사로도 성공하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제 뿌리가 있는 한국에서도 방송 쪽 일을 해보고 싶네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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