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의 HEU 정보 입수하고도 南과 공유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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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 당국은 2002년 6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 개발에 착수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4개월 동안이나 이를 한국에 알리지 않았다."
이것은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 초기 대북특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 '실패한 외교(Failed Diplomacy, 부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비극적 이야기)'에서 폭로한 내용중 하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미공조가 심각하게 훼손 되어 미국과 고급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보수층들의 우려가 또 한번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그동안 미 행정부 일각에서 한국을 신뢰할 만한 동맹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민감한 전략정보의 공유를 꺼리고 있다는 얘기는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차관이 일본 역시 한국과 정보공유가 힘들다는 이유로 언급한 바 있고 한나라당 박진 의원 등 미국 사정에 밝은 인사들을 통해서도, 계속 전해져 왔다.
주한미군 일각에서는, "남측에 미국이 정보를 주면 바로 다음날 북한 당국자의 책상에 보고서가 올라간다." 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한미간의 정보공유체계는 훼손 된 상태이다.
프리처드 소장은 이번의 회고록을 통해 국무부와 백악관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보고 들은 한반도 관련 비화를 상세히 소개하며, 지금의 한미 공조 와해를 초래한 당시 부시 행정부와 김대중 정부 사이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그의 회고록 내용을 살펴보자.
한국 정부, “서해교전 무시해 달라”=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이 발생한 직후 김대중 정부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에 “(그 파장을) 무시하고(ignore), 7월 10일로 예정된 미국 협상단의 평양 방문을 예정대로 추진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프리처드 소장은 밝혔다.
그는 “독자들에게 2002년 당시 한미 관계가 얼마나 기괴했는지(bizarre) 이해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비화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증언은 북한 경비정이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불법으로 넘어와 무력도발을 하는 바람에 한국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하는 비극이 발생했음에도 김대중 정부가 북-미 관계 개선에만 주력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동시에 김대중 정권이 자행한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직무 유기행각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를 대표로 하는 협상단을 7월 10일 평양에 보내기로 북한과 합의한 상태로 이른바 ‘대담한 조치(Bold Approach)’로 불리는 북-미 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프리처드 소장은 미국이 방북을 연기하기로 결정하고 7월 1일 이를 평양에 통보했다.
서해교전에 따른 한국 내 여론 악화 및 그해 여름 미국이 파악한 북한의 비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부시 행정부에 서해교전을 무시하고 방북 협상을 예정대로 진행해 달라고 촉구한 것은 서울(한국 정부)이었으며, 오히려 부시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주의를 당부했다(cautioned)”고 납득하기 어려운 그 무렵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는 한국 정부의 카운터파트에 ‘ 한국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북한을 상대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해 줬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한일 월드컵 결승전 및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했고, 프리처드 소장은 “예상대로 여론이 나빠졌다”며 “미국 정부의 방북 연기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과 북한의 HEU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상태였다.
북, HEU 정보 뒤늦게 한국에 통보= 프리처드 소장은 "대북특사를 맡고 있던 2002년 6월 말께 여러 정보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확신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미국 정보기관들도 북한이 장비와 전문 기술을 확보하고 새로운 핵 개발 프로그램에 착수했으며 이를 방치할 경우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해 6월 말 발생한 서해교전 직후나 8월 북한 신포에서 있었던 대북 경수로 사업 콘크리트 타설식 때도 이 같은 정보를 한국에 알리지 않고 있다 10월 켈리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기 직전에야 통보했다"고 밝혔다.
강석주의 HEU 시인=그는 3개월 뒤인 10월 3일 켈리 차관보 등과 함께 미 군용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외교 실세인 강석주 제1부상을 만났다.
켈리 차관보는 3일 HEU 의혹을 제기했으나 4일 오전까지도 김 부상은 “미국의 조작”이라며 부인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나타난 강 제1부상은 달랐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그는 “강 제1부상은 (전날) 보고받은 뒤 인민군 지휘부 및 군수책임자와 이튿날 새벽까지 논의했다고 우리에게 말했다.…그는 HEU 존재를 시인했으나 구체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제1부상은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2002년 1월 국정연설에서 발언한 대로) 악의 축(axis of evil)이고, 미국은 신사다. 이게 북-미 관계다. 우리는 신사처럼 대화할 수 없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무장을 해제한다면 유고슬라비아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처럼 맞아 죽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미국이 HEU 정보를 공론화한 뒤 압력을 가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고 프리처드 소장은 회고했다.
당시 방북 협상단 8명 가운데 3명은 한국어가 유창했다.(부인이 한국인인 데이비드 스트로브 국무부 한국과장, 한국계로 당시 6년차 외교관이던 줄리 정, 미 정부의 한국어 통역을 맡아 온 김동현 씨가 이들이다)
프리처드는 “세 사람은 북한 측 영어통역에게 들은 말 대신 자신들이 들은 한국어를 복기해 강 제1부상의 발언을 보고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들이 강석주 발언이 진실임을 뒷받침하는 증인들인 것이다.
부시와 DJ의 첫 통화 ‘이 사람 누구냐. 이렇게 뭘 모르다니 믿을 수 없군'= 프리처드는 2001년 1월 취임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나눈 첫 전화 통화 일화도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2001년 1월 전화통화는 북한 문제로 어긋나 버린 한미 관계의 앞날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2001년 1월 21일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 몇몇 정상과 전화외교를 시작했다.
당시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던 그는 부시 대통령을 위해 자료를 준비했고 통화할 때도 배석했다.
그런데 통화가 시작된 뒤 김 대통령이 대북 포용 정책의 필요성을 길게 설명하자 부시 대통령은 불편한 듯 수화기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막고 "이 사람 누구냐. 이렇게 뭘 모르다니 믿을 수 없군(Who is this guy? I can't believe how naive he is)."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날 부로 프리처드는 상급자로부터 ‘김대중은 누구인가’라는 보고서를 써서 이튿날 출근 전까지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오후 11시에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김 대통령의 민주화운동 경력, 대통령 당선 과정, 햇볕정책, 노벨상 수상 이력 등을 담은 자료를 만들어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달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프리처드 소장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부시 대통령의 (북한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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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프리처드는 누구?=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다뤄 온 한반도 전문가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국장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를 지냈고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과 함께 방북해 김정일과 면담했지만 민주당원은 아니다.
또한 부시 행정부 시절엔 국무부 대사직까지 지냈으나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도 거리가 멀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그를 대표적인 대북 포용론자라고 부르기도 한다.(konas)
김영림 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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