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주의 포기는 올바른 남북관계 정립을 포기하는 것
북한은 20일 폐막한 베이징 6자회담에서 끝내 ‘연내 핵불능화’ 시간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번 6자회담의 목적은 ‘2.13 북핵합의서상’의 초기이행조치, 곧 영변 핵시설 폐쇄가 당초 시한(4.13)보다 3개월 가량 늦게 지난 14일 완료됨에 따라 2단계 ‘핵불능화’ 이행방안을 협의하는 것이었다.
당초 ‘빨리 없애고 빨리 받자’는 김계관 북측 수석대표의 비핵화 이행 의지 발언으로 회담은 대체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무언가 나올 것이란 외교가의 기대 섞인 관측이 한 때 지배적이었지만, 결과는 8월 중 실무그룹회의와 9월 차기 6자회담 개최, 빠른 시일 내 6자외교장관 회동 등의 일정 합의에 그쳤다. 다시 한 번 북핵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실감케 한 회담이었다.
그런데 국내에선 국제협상의 대원칙인 상호주의가 부당하게 두드려맞는(?) 일이 발생했다. 19일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구조의 경제적 비전으로 ‘남북공조를 통한 북방경제시대’를 제시하면서,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은 위기상황의 반복과 대결구도만을 초래할 뿐이라고 발언한 것이다. 그는 또 상호주의는 냉전시대의 사고이자 접근법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남북관계에선 상호주의로는 안 되고, 포용과 인내, 관용과 신뢰 구축의 원칙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칙없는 관용과 인내만으로 평화번영을 추구한 결과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장이란 초유의 안보위기를 초래한 점에 대해 노 대통령은 침묵했다. 포용과 신뢰 우선으로 포장된 유화정책은 남남갈등과 한․미갈등을 증폭시킴은 물론, 대북 협상력과 북한변화 역량을 위축․약화시켰다. ‘조건 없는 물질적․제도적 지원’은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무리가 있고,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출혈이 너무 큰 정책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간 퍼주기식의 지원 카드를 남발함에 따라 북한측에 고자세를 키우는 우를 범한 측면도 있었다.
노 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상호주의는 결코 냉전적 사고나 접근법이 아니다. 국가간의 관계를 비롯해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타당한 기본원칙이다. 탈냉전시대에 들어와서도 대부분의 나라들은 상호주의에 입각해 국제관계를 형성, 유지․발전시켜 나간다. 남북관계가 ‘민족(분단국) 내부의 특수관계’라고 하지만, 관계 형성의 보편적 진리마저도 부정되는 유별한 관계는 아니라고 하겠다. 반면 기본을 무시할 경우, 변칙과 비정상이 터 잡게 된다는 점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6자회담에서 합의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란 것도 기실 상호주의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혹여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이것마저 뒤집는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16일 서울에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 양자협의를 한 뒤, “북한이 비핵화한 수준만큼 정치·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적어도 북한의 불능화 수준에 맞춘 북미관계 정상화 조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통령 말 다르고 실무자 말 달라 가지고 어떻게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상호주의에 기반해 한·미·일·중 간의 국제공조를 강력히 추진해도 북핵문제를 풀기 어려운 판에, 상호주의를 폄하, 비난한다면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나 홀로’식 대북정책을 펴나가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다간 결국에 외교적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더욱이 연내 핵불능화를 낙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인다. 북한이 언제 경수로 문제를 들고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 경수로 제공을 불능화와 연계한다면, 핵시설 불능화를 마치고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복귀한 뒤에야 경수로 제공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한·미의 입장과 맞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8.15 이전에 평화체제 전환에 관한 파격적인 제안을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8월설, 9월설, 10월설 등 개최 시기도 다양하다. 북풍 아이디어들과 노 대통령의 발언과 매치시켜 볼 때 경제 퍼주기에 이어 안보 퍼주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일부에선 벌써부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남북관계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로 접근해선 안 된다. 경험과 현실에 기초한 냉철한 접근이 문제 해결의 첩경이라고 하겠다. 그 점에서 상호주의의 포기나 이에 대한 부당한 공격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정부가 그동안 상호주의를 무시한 결과 남북관계에서 무리수가 발생한 일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남북협상에 의해 비전향장기수 63명은 유유히 귀환한 반면, 송환된 국군포로․납북자는 한 명도 없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태극기가 폄하되는 등 나라 정체성이 훼손되는 교류가 난무한 것도 상호주의를 외면한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6.15 7주년 남북공동행사에서 한나라당 대표단이 수모를 당하는 일마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경직적인 상호주의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을 갖고 대처하되, 비정치․군사문제에 대해서는 탄력성과 유연성을 가미한 상호주의에 따라 남북관계를 안정적이고 질서있게 운영해 나가자는 것이다. 합리적인 대북 접근을 자기중심의 일방적 사고로 매도하는 것은 남남통합에 역행하는 것으로 반통일적 자세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첨언할 것은 북핵 해결에 있어 다소의 진전 조짐이 보이자, 느닷없이 포용정책으로 북핵 위기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는 억지주장이라고 하겠다. 우리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의 무조건 퍼주기식 포용정책, 곧 평화번영정책이 북핵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요컨대, 상호주의 포기는 올바른 남북관계, 평화와 상생의 안정적인 남북관계 정립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konas)
제성호(중앙대 법대 교수)
** 이 글의 출처는 '프리존'(http://www.freezone.co.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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