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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패션인생 60년 디자이너 노라노

팔십 평생 담은 '노라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출간
Written by. konas   입력 : 2007-08-14 오전 9: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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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평생 일하면서 큰 뜻을 이루고자 했거나 어떤 대가를 바란 건 결코 아닙니다. 그저 모든 일을 도전으로 생각했어요. 한 번 해보는 거죠. 재미있잖아요."
 국내에 패션이라는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은 1956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개최한 디자이너.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7번가에서 동양 디자이너 최초로 자체 브랜드를 내걸고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을 날린 인물.

 국내 패션계의 대모로 불리는 노라노(본명 노명자.80, 사진)가 자신의 팔십 평생을 담은 책 '노라노, 열정을 디자인하다'(황금나침반)를 펴냈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은 "노라노가 걸어온 팔십 평생의 발자취이자 한국 패션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10년 동안 죽 메모 해왔던 거예요. 부끄럽지만 팔순이면 책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겪었던 일, 패션에 대한 열정과 철학을 담았습니다."
1928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노라노는 일제 말기인 1944년 군수공장과 정신대로 끌려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택했다.

 하지만 결혼 3년만인 1947년 파경에 이르러 스무 살의 나이에 이혼녀가 된 그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을 안고 혈혈단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극작가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여주인공 노라가 새 인생을 찾아 집을 뛰쳐나왔 듯 노명자에서 노라노로 이름을 바꾸고 미지의 인생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인간답게 살 수 없는 한 집안의 며느리로 남아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끝마치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패션 디자이너를 향한 첫 걸음이었지만 그 당시엔 60년 내내 그 길을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194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에 노라노 양장점을 개업하고 1956년 반도 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연다. 국내에는 '패션'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이탈리아 섬유 산업이 패션 덕분에 발전한 것을 본 그는 첫 쇼를 열 때부터 "반드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옷감을 쓰겠다"고 다짐했고 이를 실천해 왔다.

 "패션산업이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될 날이 오리라고 꼭 믿었어요. 그래서 첫 쇼에서는 고려모직과 함께 옷감으로 쓸 만한 모직물을 개발했고, 이후에도 면직물, 견직물 등 소재 개발을 병행하면서 옷을 만들었습니다."
 1966년 백화점에 기성복 코너를 오픈하면서 국내에 기성복 시대를 연 그는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펄시스터즈의 판탈롱 등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해 나갔다.

 1973년 국산 견직물 컬렉션으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진출하면서 한국산 실크로 세계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1979년에는 뉴욕 맨해튼 7번가의 패션 거리에 노라노라는 간판을 걸고 패션 중심가 뉴욕에 정식 진출한다. 홀로 미국으로 떠난지 30년만이었다.

 "디자이너로서는 맨해튼에서의 12년이 가장 힘들었어요.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일 년에 네번씩 컬렉션을 열면서 매번 히트작을 내야 하는데 초긴장의 연속이었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이혼 후 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 직업인으로서 첫 발을 디딜 때였다.

 그는 "어떤 혹평이든 마음에 두지 않고 소신대로 살 것, 그리고 호평보다 혹평이 나를 빨리 알리는 길이라는 아버지의 충고대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내년이면 만 여든이 되는 그는 지금도 청담동에서 노라노의 집을 운영하면서 일년에 두번씩 컬렉션을 열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쩐의 전쟁'에 의상을 협찬하기도 했다.

 그는 농담조로 "샤넬을 능가할 수는 없더라도 아흔 살, 백 살까지 계속 일한다면 역사상 최장수 디자이너로 기록될 것"이라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고 있다.

 "60년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야심이 아니라 도전 정신이었습니다.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할 줄 아는 건 이것 밖에 없는데 그만둔다는 게 겁나는 일이죠."
320쪽. 1만2천원.

 konasnet@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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