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에세이의 제목을 「‘진짜’ 평화와 ‘가짜’ 평화」라고 하지 않고 「‘진정한’ 평화와 가짜 평화」라고 부친 데는 이유가 있다. 국가와 국가들 사이의 관계, 즉 국제 관계에서 진짜 평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짜 평화는 국제정치사의 이곳저곳에 그리고 과거와 현재에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났던 실재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국제정치에서 진짜 평화는 왜 불가능 할까?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치의 본질적 구조를 알아야 한다. 국제정치 체제의 핵심적 구성 요소는 국가다. 국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권력을 대외적으로는 독립적이며 대내적으로는 최고의 권력이라고 인식한다. 그런 권력을 가진 국가들을 학자들은 주권국가(主權國家 sovereign power) 라고 부른다. 주권국가들은 자신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국가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국가들 보다 더 높은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미래의 국제사회에 국가보다 더 상위에 있는 조직이 존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면 그때는 진짜 평화가 가능할 것이며, 국가들이 가진 권력은 더 이상 주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조직이 없다보니 국가들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국가안보, 경제발전, 명예 등을 추구해야 하고 국가들의 이익이 충돌하게 될 경우, 국가들이 마지막으로 의존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전쟁이다. 그래서 국제정치에서 전쟁이란 상수로 취급되는 것이며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되는 것이다. 나라들은 언제라도 전쟁에 대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현재 국제정치체제의 발전 수준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영어권에서 국가들을 지칭할 때 power 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강대국은 Great Power 라고 하고 약소국은 Weak Power 라고 말한다. power 라는 단어는 국가들은 언제라도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잠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사실 국제정치의 주역인 국민국가라는 정치 조직은 인간 역사에 나타난 여러 가지 다양한 정치 조직들 중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탁월한 조직이며, 그 결과 오늘날 지구 전체를 평정한 조직이 되었다. 애초 전쟁을 가장 잘 하기 위한 조직으로 만들어진 국가들 사이에서 ‘진정한’ 평화는 있을지 몰라도 ‘진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전략가라면 반드시 고려해야만 할 사안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적의 의도(intention) 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의 능력(capability)에 관한 것이다. 두 가지 중에서 전략가들이 결정적으로 중요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적의 능력 부분이다. 적이 평화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전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전쟁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보유한 적국과의 평화 선언, 평화 협정 등은 가짜 평화일 수밖에 없다.(2차 대전 직전의 뮌헨 협정과 독소 불가침 조약, 월남전 당시의 파리 평화협정 등) 그래서 평화협정이란 전쟁 직후, 한편이 패망했을 때, 그래서 당장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 주로 체결 되는 것이다.

 의도는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능력이 없는 경우 상대방은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터이니 말이다. 적의 능력을 제한(制限) 혹은 약화 시키는 조건이 포함되는 경우에만 평화 조약이나 선언은 그나마 최소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대한민국 국가 안보에 결정적인 위협인 북한 핵의 폐기에 관해 아무런 논의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있을 2차 평양회담에서의 남북 간 평화선언은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라고 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konas)

 이춘근 / 자유기업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