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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은 윤봉길 의사 순국 75주기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주관 추모식 ... 의거시 사용 폭탄은 물통 폭탄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7-12-18 오후 3: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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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홍커우 공원(虹口公園)에서 일본군 전승축하 기념식장을 폭파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매헌 윤봉길의사 순국 75주기 추모식'이 19일 오전 11시 효창공원 윤 의사 묘전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이명박)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황의선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하여 독립운동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명박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장의 식사, 국가보훈처장, 광복회장의 추모사,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된다.

윤봉길 의사(1908. 6.21∼1932.12.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서당인 '오치서숙'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927년 구매조합을 조직하여 농민의 경제자립을 추구하였고 '독서회' 를 통해서 문맹퇴치에 힘썼다.

윤 의사는 1928년 '부흥야학원'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1929년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였으나, 일제의 압박으로 농촌운동이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30년 3월 6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31년 5월 8일 상해에 도착하여 한인 동포 실업인 박진(朴震)이 경영하는 중국채품공사에 취직 근무하며 '한인공우친목회'를 조직해서 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봄에 상해 홍커우(虹口) 일대에서 야채장사를 하며 일본군 관계의 정보를 탐지하던 중 박진의 소개로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한인교포단장인 백범 김구선생을 만나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략을 토론하며 의열투쟁의 기회를 열망하게 되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 상해 점령 전승경축식을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거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살신 구국의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1932년 4월 26일 김구 단장 앞에서 한인애국단의 단원으로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屠戮)하기로 맹세하나이다”라는 비장한 선서를 하고 최후의 준비를 서둘렀다.

1932년 4월 29일 11시 40분경 윤 의사는 김구단장으로부터 받은 수통으로 위장된 폭탄 1개와 도시락으로 위장된 폭탄 1개를 투척하여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한국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한국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피체된 윤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25일 상해 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같은 해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한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하였다.

25세의 나이로 이국 땅에서 순국한 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선생의 요청에 의해 일본에 있던 박열, 이강훈 선생 등의 주선으로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6월 30일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하였다.

한편 윤봉길의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회 18일 윤 의사 순국일을 맞아 윤 의사에 관해 일반에 잘못 알려지거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몇몇 역사적 사실을 공개했다.

먼저 '도시락 폭탄'으로 유명한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 의거 때 윤 의사가 실제 사용한 폭탄은 도시락 모양의 폭탄이 아닌 물통 모양의 폭탄이라고 기념사업회는 밝혔다.
윤 의사가 의거 당시 훙커우 공원에 가져간 2개의 폭탄 중 물통 폭탄이 저격용, 도시락 폭탄이 자결용이었으나 거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 의사의 조카인 윤 주 기념사업회 부회장은 "윤봉길 의사를 이야기하면 다들 도시락 폭탄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지만 물통 폭탄을 던진 게 맞다" 고 말했다.
하지만 미처 터뜨리지 못한 도시락 폭탄의 사진은 이미 공개된 반면 사고 당시 폭발해버린 물통 폭탄은 목격한 사람이 없어 정확한 모양을 아는 사람이 없다.

윤 의사에 대한 취조 내용 등을 바탕으로 1932년 7월 일본 내무성이 작성한 '상하이 윤봉길 폭탄사건 전말' 자료에 따르면 물통 폭탄은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한 크기로 타원형에 가죽끈이 달려있어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돼 있다.

기념사업회는 일본군이 윤 의사를 당초 폭탄 투척 현장인 훙커우 공원에서 공개 처형하려다가 여론을 의식해 포기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Konas)

이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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