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在美 북한인권운동가 故 남재중 박사 3주기 추모

서울 가락동 캘리포니아호텔서 ... 시민단체 관계자 등 경건하게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8-06-12 오후 4:17:20
공유:
소셜댓글 : 1
facebook
 생사를 가르는 고통과 죽음에의 공포, 북한으로의 재 북송 두려움을 안고 중국 등 제3국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빛과 소금 역을 다해오다 불의에 타계한 탈북자들의 대부 격이었던 故 남재중 박사의 3주기 추모행사가 평소 그를 존경하고 뜻을 함께 했던 지인과 탈북자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시민단체에 의해 조촐하면서도 경건한 가운데 거행돼 그의 뜻을 기리고 숭고한 인간애를 되새겼다.

 ▲ 12일 아침 고 남재중 북한인권운동가의 3주기 추모식이 열린 서울 캘리포니아호텔 연회장. 이 날 추모 기도회에서는 생전 고인의 탈북자와 북한인권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문희성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다. ⓒkonas.net

 김현욱 국제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을 비롯, 류기남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부의장, 김유혁 전 금강대 총장, 탈북인사인 김태산 전 북한 경제정책 담당자, 문희성 세계 여성목회 총회장, 최용호 자유청년연대 대표, 황인철 피랍 탈북인권연대 편집장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김현욱 이사장은 생전의 남 박사를 떠올리며 "남 박사는 늘 저를 형님이라 하면서 따랐다"며 "존경받는 의사로 2천년 대 초반부터 미국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접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탈북자들의 어려움을 듣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는 일을 거리낌 없이 수행하고 나섰다" 고 회상했다.

 ▲ 김현욱 이사장과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konas.net

 김 이사장은 이어 "당시 남 박사와는 격의 없이 앞으로 한국에서의 북한 인권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특히 남 박사는 어려운 탈북자들이 미국에서 증언을 하는데도 아낌없이 지원하고 미 사회에 사례들을 전파했으며, 미 의회가 북한 인권법을 제정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고 '북한 자유화의 날'을 선포하게끔 했다"고 남 박사의 행적을 설명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북한에서의 생체실험을 증언한 김 00 탈북자의 예를 소개하면서 "김 00을 미 의회에 출석시켜 북한의 생체실험 사실을 증언케 하기 위해 남 박사와 함께 지원하며 그를 호텔에 투숙시키고 다음 날 저와 같이 미국으로 가기로 하고 비행장에서 기다렸으나 국가정보원의 방해에 의해 결국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며 "아직도 비극적 상황을 피해 탈출을 감행하는 탈북자와 내부에서 굶주림으로 아우성 치는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시대에 남 박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 하나님 품안에서 편한히 쉬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의사로서의 역할보다도 여러 방면에서 탈북자와 북한인권문제에 매달린 그의 생전의 모습을 크게 기렸다.

 탈북인 김태산씨의 회고도 이어졌다. 김태산씨는 2003년 탈북 해 2004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승이자 동지인 남재중 선생님을 만났다며 "처음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의사를 만난 적도, 부른 적도 없는데 만나게 되었다"면서 "선생님께서 지금은 김 선생이 미국에 있을 때가 아니라 남한에서 많은 일을 해야할 때다. 친북파들을 없애고 하는데 탈북자들이 앞장서야 된다고 말씀을 하셔서 6개월만에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고 그와의 인연을 돌이켰다.

 이어 "남 박사님도 곧이어 한국으로 오셔서 여러 분들에게 저를 소개시켜 주셨고 함께 투쟁한 스승이자 생활의 동지셨다. 박사님과 한 기간은 많지 않지만 북한 인민을 구원하려는 생각과 고귀한 정신은 우리들에게 귀중한 투쟁심이자 북한 인민구원에 큰 역할 하게 될 것"이라고 숙연하게 말했다.

 여성 목회자인 문희성 목사는 "인권에 말살 당하고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지도자 때문에 살 수없어 힘든 삶을 영위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밝은 날을 주시라"며 "故 남재중 박사님의 고귀한 뜻이 북한 땅에 울려 퍼져 하루속히 인권이 찾아오고 지구상 마지막 남은 비극이 없어지기를 기드 드린다"고 추모기도를 올렸다.

 ▲ 사진속의 고 남재중 박사 ⓒkonas.net

 故 남재중(당시 60세) 박사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시민권을 얻어 미 버지니아주에서 개업한 이비인후과 의사로 본업인 의료활동보다‘이지스 재단’을 만들어 북한 인권 운동에 전념한 인권운동가다. 그는 수시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탈북자와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을 만나고, 이들의 사례를 미국에 전달하는 데 힘쓰고 북한인권법 제정과 '북한 자유화의 날'을 선포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다 지난 2005년 6월 6일 미 자택에서 갑작스런 죽음으로 탈북자는 물론 탈북인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안타까움을 샀다.(Konas)

 ▲ 추모 기도식 후 참석자들의 기념촬영 ⓒkonas.net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한마음    수정

    벌써 3주년이네요. 늘 바쁘게 움직이던 님의 모습이 새롭습니다. 평안히 쉬시옵소서</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6-12 오후 5:18:58
    찬성0반대0
1
    2026.10.1 목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강한 국군이 곧 평화의 조건이다
매년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다. 우리는 이 날을 맞을 때마다 ..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베트남에 북한군 참전 기념물 설치…北국방성, 제막식 참석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북한 인민군 참전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