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독도영유권 논쟁의 진실과 우리의 대응방안
2008. 7. 14 일본 문부과학성은 한국정부의 미래지향적 관계개선 요청을 외면하고 일본중학교 사회교과서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내용을 명기 했음을 공식 발표하여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자료에서는 ‘독도영유권 논쟁의 진실과 우리의 대응방안’을 문답식으로 살펴보았다.
Q. 이번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였고, 시마네현 의회에서는 2005년 3월 16일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조례를 공포하는 등 한․일간에 갈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의 경과는 어떠한가?
A. 근래에 들어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야욕이 점점더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예전에는 주로 일본 정부관리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망언의 수준에 그쳤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그들의 주장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4년 5월초 “니혼사도카이”회원 4명이 독도에 상륙하려고 시도했던 것과 그동안 주일 한국대사관 앞에서 시위 수준에 머물렀던 일본우익단체들이 선박을 이용하여 독도인근 해상시위나 독도상륙을 기도했던 일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와중에 2005년 2월 23일 일본 시마네현의회는 독도에 대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조례안을 상정했으며, 같은날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일본 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고 강변하여 우리국민의 감정을 마구 자극하더니, 3월 16일에는 시마네현의회가 '다케시마 날'을 정하는 조례를 통과시켜 공포함으로써 우리나라 전국 각처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군중시위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바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악화되는데도 일본 정부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을 중앙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기는 곤란하다”라고 발뺌을 했으며, 한 수 더 떠서 일본의 한 신문사 경비행기가 독도 부근을 선회 비행하는가하면 며칠 후에는 일본 해양경찰 소속의 비행기와 항공자위대의 전술항공기 까지도 보란듯이 독도 상공 비행을 시도한바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근래에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한․미동맹의 이상기류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의 독도 관련움직임이 예전에 비해 훨씬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Q. 역사기록이나 문헌, 옛지도 등의 자료에는 독도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A. 사료나 고지도로 따져보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억지 주장 그 자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독도는 서기 512년인 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우리의 고유영토가 되었다(삼국사기 신라말기와 열전).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우산국)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세종실록 지리지」 (1432년 편찬), 「동국여지승람」(1481년), 「신 동국여지승람」(1531년), 「반기요람포정편」(1808년) 등 각종 고문헌과 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독도가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왔고 19세기 후반까지도 독도의 이름이 ‘우산도’ 였다는 사실도 독도가 ‘우산국’의 영토였음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의 명칭인 ‘독도’라는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906년 광무 10년에 울릉군수 심흥택의「울릉군수 보고서」에서 「본군 소속 독도」라는 기록과 한말 애국지사 황현선생님의 「매천야록」에서 처음 나왔다. 서기 1737년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J.B 당빌이 그린 「조선왕국전도」에도 독도가 조선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으며 일본실학자 하야시 시레이가 1785년에 편찬한 일본의 고지도인 「삼국접양지도」에도 녹색으로 공시된 일본과 구분하여 독도를 한국영토로 황색으로 정확하게 칠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옆에 「조선의 것」이라고 명료하게 써놓았다.
일본에서 독도를 1667년에 처음 기록한 당시 일본정부편찬 고문헌 「은주 시청합기」도 “울릉도와 독도는 고려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은기도 까지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조정은 임진왜란후 일본사람에 의한 주민 피살을 막으려고 울릉도와 독도를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폈는바 1693년 울릉도에 올라온 일본어부들과 안용복 등 조선 어부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양국간 외교분쟁이 일어나 수년간 계속되다가 1696년 1월 도꾸가와 막부의 관백 즉, 집정관은 울릉도 및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어부들의 고기잡이를 금지시키기도 했었다. 뿐만아니라 19세기 일본메이지 정부 공문서에도 독도를 한국영토로 확인시켜 놓았다. 일본 국립공문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공문서에는 1876년 내무성이 각 지방현에 현의 지도를 작성하라는 훈령을 내렸는데 시마네현에서 “독도를 포함시켜 작성해야 하는가”라고 질문서를 제출했다. 그때 내무성은 5개월간 조사결과를 토대로 일본과 관계없음을 확인한 후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의 최종확인 결정을 품의서로 질문했고 태정관의 “관계없음” 훈령을 받았으며 시마네현에 독도를 일본시마네현 지도에서 빼라고 훈령을 1877년 3월 17일자로 내려보낸 것이 뚜렷이 남아있으므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Q.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2005년 3월 11일 시마네현의회에서는 무슨 근거로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 이라고 조례를 제정했으며, 이번에 일본정부는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일본영토라고 명기했을까?
A.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회의에서 독도는 주인없는 무주지이므로 일본영토에 편입시키고 ‘다케시마’라 이름붙여 시마네현 관리하에 둔다고 결정했습니다. 당시 국제공법상 영토편입 요건은 ① 무주지 일 것 ② 주변국가에 조회확인하고 세계각국에 고시할 것 등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일본의 ‘독도침탈’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기에 일본정부는 잔꾀를 낸 결과 시마네현에서 관내에 고시하는데(지방신문에 1단 광고기사) 그쳤다. 그날이 꼭 100년전인 1905년 2월 22일이기에 ‘2월 22일’은 ‘다케시마의 날’ 이라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독도는 한국이라는 주인이 있는 유주지었고, 일본은 우리에게 조회조차 하지 않았으며 국제고시도 하지 않았으므로 1905년의 일본내각 결정내용은 원칙적 무효다.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 41호로 울릉도와 독도를 강원 울진군에서 분리시켜 ‘울도군’으로 독립시키고 이 사실을 ‘관보’에 게재 해 세계에 알렸으며 군수를 파견하기도 했는데 (국제 외교무대에서는 ‘힘의 논리’가 통하는 것이 일반적 현실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 일본이 힘으로 밀어부친 결과 1905년에는 ‘을사보호조약’ 즉, ‘을사늑약’으로까지 연결되었고 독도를 자기 땅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Q.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논거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거론되고 있는데 무슨 내용인가?
A. 일본측은 역사자료나 지도 등 지난 일은 모두 지난간 옛날 얘기이며 1951년 9월 8일 조인된 연합국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제2조 일본의 영토조항에서 독도 반환이 빠져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조약은 독도에 관한 언급이 한․일 모두에 빠져있는 ‘불충분한 규정’이므로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될 수가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
이에 반해서 우리측은 1946년 1월 29일 SCAPIN 즉, 연합국최고 사령부 훈령 제 677호에 한반도와 주변의 모든 섬을 일본주권에서 제외하고 한국에 반환시킨 후 일본 어부들이 독도와 그 12해리의 수역에 접근하는 것을 엄금토록 한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협상시 원래 토의서류에는 독도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일본 로비스트인 미국인 윌리엄 시벌드의 로비결과 독도에 관한 내용이 조약체결 때 빠졌다. 그런데 1950년 연합국들이 작성한 「연합국의 구 일본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 제 3항에 한국에 반환할 영토는 한반도 본토와 그 주변의 모든 섬(all offshore Korean islands)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명확하게 기록했다는 점이 바로 핵심포인트다.
Q. 일본이 불충분한 내용으로 억지주장을 하면서까지 독도침탈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독도는 사통팔달하는 동북아의 관문이기에 군사전략적 가치가 엄청나게 크다. 뿐만아니라 국제해상교통로의 요충지이며, 해양세력들에게는 대륙진출의 전진기지로 안성맞춤인 곳에 있지 않은가? 또한 독도 바닷속 대륙붕에는 ‘불타는 얼음’이라 불리우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등의 천연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어업이라는 측면에서도 대단한 매력을 갖고 있으므로 일본이 군침을 흘리는 것이지요. 시중의 유머에는 다케시마를 거꾸로 읽어보면 ‘마시케다’ 즉 ‘맛있겠다’ 라는 우수개 소리까지 있다.
Q. 독도논쟁의 향후 전망과 우리의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A. 일본은 경제․군사 강국이다. 만만한 상대가 결코 아니다. 거기에 치밀함과 간교함까지 갖추고 있으므로 우리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앞으로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시키면서 한․미동맹이 이완될 때를 노려서 더욱 강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은 1954년부터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 따져보자고 주장했는데 차후에는 더욱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언젠가는 독도점령 등 군사적 수단까지 동원해서 ‘독도논쟁’이 아닌 ‘독도분쟁’을 현재화시키고 이것을 UN총회나 안보리에 끌고가고자 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첫째로 독도를 ‘실효적 지배’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명백한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인점 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범국민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역사와 독도 논쟁의 핵심을 확실히 파악하여 이론적으로 무장하고 안보의식을 높여 나아가야 한다.
셋째로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과의 연대를 잘 유지 확대시키고 정부차원에서 우리의 독도영유권을 인정하도록 외교적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일본과 선린우호 관계를 버려서는 우리에게도 손해이기 때문에 이를 잘 지켜나가는 한편 강력한 국력이 외교에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명심하고, 그렇게 되도록 국민 각자 각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국력신장의 한 부분을 맡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강대국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소니 등 일본의 10대 전자회사들의 총 수익은 우리나라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한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해도 TV, 냉장고 등 백색 가전제품을 팔던 변방의 삼성이 이제는 소니로부터 “삼성을 배우자”라고 대우받고 있다. 일본은 우리가 넘지못할 산이 결코 아니다. 은근과 끈기의 우리민족, 도전과 승전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의 저력, 머리좋고 손재주가 놀랍다는 세계 여러나라의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 이제는 정말로 우리국민들의 합심단결된 자세가 그 어느때보다도 요구되는 때 선진강국으로 도약하여 후손들에게 복되고 아름다운 조국을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konas)
재향군인회 안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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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자료 감사 드립니다.강국의 틈바구니에서 버티고 살아 남을려면 지혜와 용기,그리고 국력 즉 힘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內憂外患의 3중고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에게 다윗의 용기와 솔로몬의 지혜가 주어지길 기원해 봅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7-22 오전 1: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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