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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 "대한민국 건국에 자부심 가져야"

KIDA 국방포럼 강연회서...... "소련, 북한에서 철저한 계획하에 군정 실시"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08-09-05 오후 1: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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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이 먼저냐, 건국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35년 일제치하에 있다 해방된 광복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디에 더 의미를 두어야 하느냐하면 광복에 의미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가장 성공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 5일 아침 7시30분 서울 프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린 제28회 KIDA 국방포럼. 이 날 포럼 초청강사로 나온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해 우리 국민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앞으로의 과제는 평화로운 방법에 의한 통일의 성취라고 강조했다. ⓒkonas.net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은 최근 남북한의 정통성과 관련한 시시비비에 대해 북한은 소련의 사전 철저한 준비와 계획 등 의도된 상황 하에서 이루어진 군정(위성국)이었지만 대한민국은 미국의 어떤 개입이나 트루만의 입김 없이 유엔의 뒷받침 아래 오직 한국민족의 힘과 두뇌에 의해 건국된 정통성 있는 국가라며 우리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회장은 5일 아침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한국국방연구원(KIDA, 원장 김구섭) 주최 제28회 국방포럼에서 '남북한 대립적 국가성립 배경과 현대적 의미'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시비를 거는 것은 좌파의 역사적 인식이라며 해방직후 미국과 소련의 대 포고문 내용 등을 언급하며 강연했다.

▲ 김학준 회장 ⓒkonas.net

 대표적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인 김 회장은 이 날 정통성 시비와 관련해 "결론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정당하고 대다수 국민이 바랐던데 비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건국은 거의 전적으로 소련의 계획과 구체적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은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이기도 한 김 회장의 이 날 강연에는 윤봉길 의사의 친손녀인 윤주경씨를 비롯해 이종구 성우회장, 박세환 재향군인회 부회장, 서종표 국회국방위원, 방효복 국방대학교 총장, 김충배 전 국방연구원장, 방형남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동준 안보경영연구원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 청중들이 경청하고 있는 가운데 김충배 전 KIDA 원장이 질문하고 있다. ⓒkonas.net

 다음은 이 날 김학준 회장이 강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글임. (Konas)

 우리나라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를 부인하거나 폄하하는 역사의 큰 흐름이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은 정통성이 없고 북한이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제시되어 왔습니다. 이런 해석을 이제 친북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기 이전에는 이러한 역사인식에 입각해서 지난날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예를 가끔 보아왔습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어떻게 건국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어떻게 건국되었나를 알고자 합니다.

 결론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정당하고 대다수 국민이 바랐던데 비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건국은 거의 전적으로 소련의 계획과 구체적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은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선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남북한에는 두 개의 국가가 성립되는데 이를 두고 남한의 좌파학자들이 인용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1945년 해방되었을 때 소련군대는 함경도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 소련의 점령군은 극동군 25군이고 이 부대가 많은 삐라를 뿌렸는데, 여기에 점령군 사령관인 치스챠코프의 포고문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아주 아름다운 말들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이여 기뻐하라, 모든 것은 다 조선인민의 것이다. 자유를 찾게되고 미래를 마음대로 건설하라" 등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좌파 학자들은, "소련군은 (북한을)점령할 때부터 모든 것을 조선인민에게 주겠다고 했다"고 이 포고문을 인용해서 말하면서 "위성국을 하겠다 거나 소련 지배하에 두겠다는 말이 없다" 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시점에서 미군의 태평양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포고문이 발표되고, 남한을 점령 통치하게 된 하지 장군의 포고문도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우리로서는 기분 나쁜 말로 되어 있고, 조선의 해방을 축하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엄격한 군사용어로 남한은 피 점령지고 본관이 통치하며, 모든 사람은 법에 철저히 따라야하고 어길시 사형까지도 처하게 한다는 처벌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좌파들이 이 둘을 비교하면서 "소련은 조선해방을 축하하고 조선에 넘긴다고 한 데 반해 미국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기에 미국이 점령통치 했다"고 말합니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시각과 소련의 시각이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김일성의 연설에서도 이 두 나라 대비가 가끔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두 문서만 보면 열 불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보지 않고 철저한 비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소련의 문서 발표 시기를 놓고 다른 해석이 있는데 그 문서(포고문)의 끝에 날짜가 안 적혀있습니다. 8월 24일쯤 발표한 포고문으로 해석도 합니다. 그러나 소련 국립 문서처에서 원본이 나왔는데 1945년 8월 15일입니다. 그 문서가 이렇게 뿌려질 시점이면 소련은 한반도가 38도선을 경계로 분할된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었습니다.

 한반도 분할은 갑자기 이뤄지는데 미국이 결정해서 스탈린에 알리고 스탈린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배포 게시된 시점에서 38선이 그어지고 (분할 통치가)오래 갈 것이라는 인식을 갖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련 점령군 사령관은 북한을 점령하면서 주민을 선무하는 차원에서 좋은 말을 썼을 것이라고 나는 해석합니다.

 그러나 맥아더나 하지의 발표 시점은 이미 9월 9, 10, 11일 이때입니다. 이미 (한반도를)분할점령 한다는 것을 미군이 확실히 알게된 시점이고 남한은 미국이 점령 통치하는 확실한 상황이기에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통치 방침을 밝힌 것이고 그래서 시차가 있고, 시차에 따라 내용의 차이가 있었다고 나는 해석합니다.

 소련의 문서를 정확히 알려면 9월 10, 11일 이때 소련의 포고문은 어떤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때는 점령 통치 '금지조항'을 발표합니다. 김일성이 얘기하거나 남쪽의 학자들 해석(소련의 8월 포고문과 미군의 9월 포고문)처럼 서로 비교하면서 점령정책이 전부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9월 11일 되면 미·소가 공히 남북을 피 점령지역으로 보고 금지조치들을 똑같이 발표합니다.

 그렇다고 맥아더나 하지가 쓴 용어가 적절했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민족의 상태를 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군 포고문이)사려 깊지 못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두 문서 비교만으로 '소련은 베풀고 미국은 아니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남한은 미군의 군정통치를 받았고 북한은 인민이 만든 통치라고 소련 스스로 자랑하고 김일성도 남쪽은 미군이 통치하지만 우리는 인민이 통치한다고 말하고 우리 학자의 일부도 그렇게 대비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미국이 군정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북에서도 소련이 군정을 했다고 봅니다. 지난날에는 북한의 점령통치 시기에 소련 문서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문서들이 공개되고 우리 학자들에 의해 서도 발굴되고 있습니다.

 그 문서에 입각해서 말하면 소련의 북한 통치는 군정입니다. 군정 계통이 미국의 태평양 지역 최고사령부가 동경에 본부를 두고 남한을 통치했듯이 소련의 경우 하바로프스크의 극동군관구가 있었으며 여기에 본부를 두고 극동군관구 사령관은 5성 장군인 원수가 지휘를 했고 그 아래는 군사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소련군에는 군 단위마다 군사위원회가 존재하고 정치장교들이 있고 이들 정치장교들은 사단장보다 힘이 있고 당의 명령을 군에 전달하면서  군사령관보다도 군사위원의 발언권이 훨씬 강했습니다.

 군사위원은 그 부대의 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군사위원회 쪽 상관에게만 보고하는데 모스크바에는 국방부가 있고 정치총국이 있고 여기서 모든 것을 지휘하였으며, 극동군 관구 사령관은 원수계급이었지만 군사위원인 스티코프 육군중장이 평양의 24군을 지휘했습니다. 후르시초프 회고록에 따르면 스티코프는 총 한번 잡아본 적 없는 군인이었지만 당의 주요간부였고 북한에 관한 통치도 스티코프가 하라는 데로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많은 문서들이 개방되고 있는데 이 내용을 보면 놀랍습니다. 소련이 북에 군정청을 두지는 않고 김일성을 앞세운 조선인민위원회를 두었는데 여기에 대한 감독 지시를 소련군이 했으며 민정사령부를 두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 특성상 이름을 잘도 붙이는데  점령군 사령부가 있고 민정사령부를 두었으며, 이것이 인민위원회를 지휘했습니다. 이는 군정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 민정사령부 아래에 각 국이 있고 소련점령군과 함께 인민위원회를 감시하고 민정사령관이 또 통제를 합니다.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실권이란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통제를 했느냐하면 철저하게 했습니다. 도와 시 군에 이르기까지 소련군 위수사령부를 두고 군 단위 위수사령관은 소련군 대위나 소령이 했고 주요 시 에는 소령 또는 중령과 아주 중요한 곳에는 대령이 맡도록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도·시·군에 위수사령부를 두고 치안을 담당하거나 완전히 군사통치를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황해도 해주에서 집회가 열린다하면 집회 계획서를 소련군 위수사령부에 제출하게되어 있고 위수사령부에서는 이 내용을 세심하게 확인하고 조사해서 승인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는 지방 시·군에서조차 검열하고 동의하고 토론의 결과와 반응까지 보고하게 하고 보고문서를 소련 군인이 검토하게되어 있습니다. 훗날 북한을 점령했던 소련군 장교들의 회고록을 보면 "우리가 북한을 점령하는 동안 우리 뜻에 어긋나는 일은 (북한당국이나 인민들이)하나도 하지 못했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군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스티코프는 북한을 철저히 살피고 있었는데 그는 바쁜 와중에도 일기를 썼습니다. 좋게 말하면 대단한 애국자며 자기직무에 충실해 감탄하게 됩니다. 하바로프스크의 군관구 본부에 앉아서도 북한을 일일이 챙깁니다. 예를 들어 북에서 흑백선거를 하는데도 어떤 구호를 내세워라하거나 어떤 삐라를 만들어서 배포하라고 지시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북으로 가서 현장을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통제했습니다.

 그는 또 김일성이 하는 연설문도 다 고쳐준 사실이 그의 일기장에 다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소련 점령 3년 동안 김일성 연설문이 지금 거의 다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에는 군에 역사부대가 있습니다. 미군이 개입하는 전쟁터에는 반드시 이 역사부대가 따라 가며, 이게 자료다 싶으면 무조건 수거해서 본국에 보내게 됩니다. 6. 25전쟁시에도 역사부대가 따라와서 자료다 싶으면 수거해서 보냈는데 LST 수송선으로 보냈습니다. 지난날 우리 국립도서관 2개를 가득 채울만한 정도로 자료를 수거해 갔습니다.

 그 상당한 자료가 남북한을 연구하고 김일성 연설문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연설문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이유는 소련이 써주었기 때문이며 그만큼 소련 군정이 철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소련은 그들이 북한 헌법까지 검토하고 장·차관 이나 부상까지 소련이 최종검토하고 면접해서 뽑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성국입니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정통성을 갖는 나라가 되겠습니까? 철저하게 소련공산당과 스탈린의 의도와 계획대로 만들어져 소련 위성국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조선 인민공화국은 일부학자들의 얘기처럼 민족의 자주성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며 대한민국은 출생과정에서 문제도 있지만 헌법을 만들고 조각을 하게 되는 모든 과정은 한국인의 의지와 두뇌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미군정의 개입이나 트루만의 입김은  전혀 없었습니다. 미군정에 보고도 없었으며 오직 한인들의 토론에 의해 결정된 것입니다.

 북한의 정권은 소련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졌고 대한민국은 건국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엔의 뒷받침아래 이루어진 것입니다. 건국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불행한 일이 잘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독립을 얻은 나라 중 평화롭게 된 나라는 없었다는 점이다. 근대국가 성립과정에서 평화롭게 된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와 비교됩니다.

 그것은 일제통치에서 벗어나서 우리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이 있었고, 소련이 인정하지 않았기에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 유엔의 이름아래 남한만의 총선거가 이루어졌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으며, 그래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민족통일의 과제'이며 이를 위해 역대 정부는 좋은 안,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등을 내놓았습니다. 훌륭한 안이라고 봅니다. 민족통일의 이념은 민족이름, 평화롭게 민주주의 원칙으로 하겠다는 이념제시는 이 방향으로 통일이 성취되어야 합니다.

 남북을 비교하고 건국을 비교할 때 정통성 있는 건국은 대한민국이며 앞으로 민족통일 성취는 대한민국의 적극적 영향력 발휘아래 되어야 합니다.

 식민통치 35년을 겪고 해방을 맞은 한민족은 분단 상태에서도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관심 받는 큰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열정을 높이 평가하고 자부심을 갖고 흔들림 없이 우리 주도하래 민주적 평화통일을 성취하도록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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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9-05 오후 4: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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