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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북한 핵 역사

긴장과 대화의 반복이 아닌 예외적 상황 올수 도..정신 바싹 차리고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
Written by. 손현덕   입력 : 2009-06-03 오전 10: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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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의 역사는 3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영변에 핵시설 건설에 착수한다. 그 때가 1979년이다. 1986년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원자로에서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긴장했다. 북한과 비공식 접촉을 가졌다. 지금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리는데 이때 북미 접촉의 장소도 베이징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다.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1년 12월의 일이다. 그 대가로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고 뉴욕에서 북미 간 고위급 접촉이 이뤄진다.합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3년 3월 북한은 사찰을 거부하고 NPT를 탈퇴한다.

한미 양국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했다.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았다. 북한은 이 와중에 핵 연료봉을 추출한다. 다시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그 유명한 제네바 기본합의가 도출된다. 1994년 10월,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의 이름을 딴 페리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폐기를 약속했다. 한국과 미국은 그 대가로 중유를 제공하고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했다.

남북한 대화에 큰 획을 그은 제네바 합의의 약효는 제법 오래갔다. 8년 이상 한반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다시 한번 한반도에 위기가 찾아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180도 바뀌면서부터다. 네오콘이라는 강경파가 득세했다. 특히 9·11테러를 당한 부시 대통령은 테러국가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탔다. 북한도 그중 하나였다.

그 유명한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이 나온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북한도 벼랑 끝 전술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NPT를 탈퇴한다. 2003년 1월의 일이다. 늘 그렇듯 위기는 다시 대화로 이어졌다. 그래서 생겨난 게 6자회담이라는 틀이다. 미국은 북한과 1대1로 대화를 하기는 싫으니까 일본·중국·러시아에 남북한을 집어넣어 다자간 대화의 장을 만든 것이다.

솔직히 이런 다자회담이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드물었다. 아주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진행됐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다. 김정일 위원장의 돈줄을 죄기 시작한 것이다. 마카오 BDA 은행에 있는 북한의 계좌를 동결했다. 2400만 달러가 묶였다. 이게 2005년 9월의 일이다.

북한은 이후 반발의 강도를 높였다. 드디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강성대국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2009년 4월, 미사일(로켓)이 다시 쏘아지고 2차 핵실험을 했다. 성능이 좋아졌다. 이번에는 한국과 미국이 강경한 태도로 나간다.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경고하는 걸로 맞불을 놓는다. 다시 긴장고조 국면.역사가 반복된다면 조만간 대화의 장이 서고 새로운 합의가 도출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예외가 생긴다면 아마 이번 일일지 모른다. 정신 바싹 차리고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 둘 필요가 있다.(http://kookbang.dema.mil.kr/)

손현덕(매일경제신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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