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침을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가?"
“당시의 사회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신문지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북한 신문만을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신문을 선전 도구로 획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김일성은 당시 종군기자들에게 계급을 부여하는 등 대우를 잘 해줬다고 합니다. (당대) 유명한 문인들 중 김일성에게 굴종해 살아남은 사람과 처형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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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문화일보 홀에서 열린 제 121회 ‘조갑제 기자의 현대사 강좌’에서, 정진석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는 ‘6·25 전쟁기의 남북한 신문 전쟁’제하 강연에서 이 같이 정리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진석 교수는 당시 남북한 신문을 연구하면서 놀란 것은 ‘김사량’이라는 작가가 ‘전시 르포기사들을 작성하며 당시 미군과 국군의 양민학살만 골라 엮은 책’이 나와 팔리고 있다는 것이며, 기사는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신문지면을 살펴보면 “북한이 남침을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가를 알게 된다”며, 1950년 6월에 발행된 ‘로동신문’에 나타난 기사들(▶1950. 6. 5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평화통일을 기본방침으로 채택했다 ▶1950. 6. 10 조국통일문주주의전선 대표 3명을 남한에 파견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8.15 5주년 기념으로 증산을 독려했다)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전쟁 전 ‘로동신문’에 동원된 문화인들의 위장 평화 선전글들”로 당시 언론들도 속아 무방비 상태였다며, ▶1950년 6월 26일자 조선일보-‘북한괴뢰 불법남침’, 동아일보-‘시내민심 지극평안 동요·망동하지 마라’ ▶1950년 6월 27일자 동아일보-‘국군주력 총 반격하고 있다’ ▶1950년 6월 28일자 ‘제공권 장악’ 등 당시 발행됐던 신문지면상의 제목을 준비된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한 해 전에 송악산에서 13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전쟁이 있었고, 거의 이런 상황이 만성이 되어 (언론에서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이해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1950년 6월 29일자 노동신문에는 ‘서울은 해방되었다’, ‘대구·광주 대폭동’ 등 미점령 지역에서 서울 함락 이튿날 사방에서 폭동이 있었다고 보도됐다”며 “이런 게 그 당시 북한의 선전술”이라고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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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 교수는 같은 해 7월 28일자 조선인민보와 해방일보에는 “서울 중앙청에 김일성과 스탈린의 사진이 나란히 걸린 사진이 실려있다”며 당시 신문들을 제시했다. 그는 “북한은 서울 점령 후 스탈린과 김일성 사진이 언제나 공식행사에는 두 사람 사진이 걸려있었고, 언제나 스탈린이 상위에 있다”며, “아마도 스탈린과 김일성이 적화했다면 한반도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로동신문’, ‘조선인민보’, ‘해방일보’ 3개 신문이 똑같았고, 이런 속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길 없는 전쟁기간 3개월의 서울은 암흑천지였다”고 말했다. 즉 그는 “8월 16일 로동신문에 탑기사는 ‘스탈린 대원수에게 드리는 메시지’와 ‘김일성 보고’가 나오는 이런 세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언론인 피살·납북자가 285명이며, 당시 KBS는 라디오 채널이 있었는데 28명이 납북됐다. KBS가 방북했을 때 자기 선배들 어떻게 됐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다”며 분개하면서,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피살·납북 종교인이 총 370명 등 수많은 지식인들이 납북돼고 피살됐다는 통계를 제시하면서 “이것이 6.25전쟁 중 3개월 동안 있었던 비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 교수는 3개월 동안 암흑세계를 거쳐 ‘9.28서울수복’ 후 서울신문이 가장 먼저 복간했고 동아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의 복간으로 “1950년 10월 31일자 신문, ‘이승만 대통령 평양방문’제하의 기사들은 그 때 감격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전시에도 보장해 정부를 비판하고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언론의 기능이 유지되고 있었다”며, 1952년 1월 화폐개혁, 52년 6월 부산정치파동 기사를 제시하고 입증하면서 특히, "거제도 포로수용소 소장 체포 사건은 세계적 웃음거리로 북한 신문으로는 상상조차 못할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정진석 교수는 ‘6.25전쟁’ 당시 남북한 신문을 비교하면서 북한이 언론을 선전전(宣傳戰)의 도구로 이용한 행태를 밝혀내는 한편, “우리는 6.25전쟁으로 인해 북한에 납치·피살된 11만명의 인적 손실을 잊고 살았다”며 거듭 ‘6.25전쟁’ 참상을 강조했다. (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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