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진보’ 앞에서 정신분열증(?)
조선일보는 10월 6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강연 관련 기사에서 박씨의 강연을 청취한 사람들이 ‘진보성향’ 야당 의원 모임인 진보개혁입법연대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진보성향’ 야당의원들이라고 묘사한 사람들은 권영길(민노당), 유원일(창조당), 이종걸(민주당), 조승수(진보신당) 의원을 공동대표로 한 23명의 야당의원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친 사회주의 내지 사회주의적 경향의 발언과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말하는 ‘진보성향’이란 ‘사회주의 및 친 사회주의 성향’을 의미한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유럽 좌파’ 관련 기사에서 “구동독 지역 유권자들은…사민당보다…극좌이념을 내세운 좌파당을 선택했다. 여성 표는 환경 이슈에 사민당보다 더 ‘진보적인’ 녹색당으로 몰렸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말하는 ‘진보적’이란 단어의 의미는 앞의 용례와 다르다.
위의 인용문에서 ‘극좌이념을 내세운 좌파정당’이란 ‘보다 강한 사회주의경향을 가진 사회주의정당’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독일정계에서 ‘좌’는 사회주의사상을 추종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의 기사가 박원순 관련 기사에서처럼 ‘진보성향’을 ‘사회주의 및 친 사회주의 성향’이란 의미로 사용했다면, 인용문은 구 동독의 유권자들이 사민당보다 ‘극좌이념을 내세운’ 좌파당을 선택했다고 기술할 것이 아니라, 사민당보다 ‘더 진보적인’ 좌파정당을 선택했다고 기술했어야 옳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렇게 기술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신문은 환경 이슈에서 녹색당이 사민당보다 진보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진보적’의 의미는 환경 문제와 관련한 어떤 입장이 ‘진보적’ 입장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진보적’인 입장과 그렇지 않은 입장을 가려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 기사에서 사용한 ‘진보적’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무리한 추정을 감행해야 한다. 녹색당은 사민당보다 환경의 보호와 정화를 과격하게 주장하는 정당이다. 따라서 그 기사에서 사용한 ‘환경 이슈에 보다 진보적인’이라는 표현은 ‘환경 보호와 정화에 과격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그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말하는 ‘진보적’이란 ‘사회주의적’이라는 의미가 아닌 ‘과격한’이란 의미를 갖는다.
같은 날에 보도된 기사들에서 조선일보는 ‘진보적’이란 용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태도는 조선일보가 ‘진보’라는 용어 앞에서 혼란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일보가 ‘진보’라는 용어 앞에서 혼란스런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은 그 신문이 보도한 다른 기사들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조선일보는 지난 9월 3일 박세일 선진화재단 이사장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통일 관련 주장을 보도하면서 박세일씨를 보수우파 진영의 대표적 논객으로, 백낙청씨를 ‘진보좌파 진영’인사로 소개했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난 10년간의 ‘진보정권’이라고 호칭했다. 이 기사를 보면 조선일보는 ‘진보’와 ‘좌’를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좌파(익)정권으로 규정할 수 없는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진보정권이라고 말하여 ‘진보’와 ‘좌’를 동일시하지 않는 혼란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월 2일에 보도한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관련 기사를 보도하면서는 “지지열이 식어가는 것은 든든한 우군이던 ‘진보성향’ 지지자도 마찬가지”라고 기술했다. 이 기사에서 ‘진보성향’이란 필시 ‘liberal’이란 영어 단어의 번역어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바마를 강력히 지지한 미국의 민주당계 시민들을 통상 liberals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liberals는 미국식 자유주의자들로서 사회주의자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사회민주주의자도 아니다. 그들은 사회복지 확대나 경제영역에 대한 정부의 개입확대를 주장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자유주의원리를 신봉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보면, 조선일보는 ‘진보’라는 용어를 무려 4 가지 의미로 사용하며, 같은 날자에 보도된 기사들에서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동일한 기사에서도 동일하지 않은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런 사실은 조선일보가 ‘진보’라는 용어 앞에서 정신분열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진보’와 관련된 조선일보의 정신분열적 증후는 그 신문의 ‘진보’라는 용어 사용이 ‘조선일보는 나쁜 신문’이라는 함의를 가진 쪽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의해 더욱 심각해진다.
정상적 언어생활에서 ‘진보’란 ‘보다 좋은 상태로 변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진보성향의 사람이나 진보적 집단은 사회상황을 보다 좋은 상태로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고, 사회적 쟁점을 보다 좋은 내용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위에서 인용한 4 개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진보성향 혹은 진보적이라고 묘사한 사람들이 정말로 사회상황을 보다 좋은 상태로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고 사회적 쟁점을 보다 좋은 내용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고 그들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인용된 기사들에서 ‘진보적’이라고 묘사된 사람들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좋은 사람들을 비판해온 나쁜 신문’이 된다. ‘진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조선일보가 ‘조선일보는 나쁜 신문’이라는 함의를 가지는 쪽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 신문이 ‘진보’ 앞에서 정신분열증을 나타내는 것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증후라 아니할 수 없다.(http://blog.daum.net/pre-agora)
양동안(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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