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2009년의 한국(1):한국의 정치
2009년 정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2년을 맞는 해여서 기대가 컸다. 2008년의 대통령직 학습을 바탕으로 원숙해진 통치력 발휘를 기대했다. 1년전 왔다갔다 소신없이 흔들렸던 그의 지도력이 듬직스럽게 자리를 잡고 당차게 밀고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2년차 대통령직은 기대와는 달리 아쉬움으로 빗나갔다. 그는 여전히 소신없는 기회주의로 계속 흔들렸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다섯나라당”으로 갈려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며 갈팡질팡했다.
한편 민주당을 필두로 한 친북좌익 야당들은 2008년의 폭력난동과 반대를 위한 반대 투쟁을 벗어나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정치에 나서주기를 바랐다. 민생 정치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야당들은 ‘제 버릇 남 못준다’는 속담처럼 2009년 한 해도 전년과 같이 폭력난동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채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었다.
‘한나라’는 ‘다섯나라당’으로 갈리고 이대통령은 역시 기회주의자였다.
2009년 한국정치는 대통령과 한나라당이나 야당 모두 국민에게 실망만 안긴 한 해 였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부드러운 미소로 각종 행사에 참석하며 어두웠던 마음에 가벼운 미소를 짓게 하였다는게 한가닥 정치외적 위로가 되었다.
이대통령의 기회주의적인 처신은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 절차 결정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노 전 대통령이 올 5월 봉화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타계하자 그의 장례 예우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 전 대통령이 비리와 연루돼 조사받던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데서 ‘국민장’으로 예우하기는 어려웠다. 고인의 유족 측에서도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격(格)을 높여 주었다.
그의 국민장 결정은 적지않은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비리에 연루돼 자살한 사람을 국민장으로 승격시켰다는 지적이었다. 이 대통령이 그것을 모를리 없다. 그러면서도 그가 국민장으로 정한 것은 당시 거칠게 일고 있었던 친노세력의 반이명박 분노에 겁먹은 탓으로 보였다.
노 전 대통령 지지세력은 이명박 정부의 가혹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았다면서 반이명박 시위에 나섰다. 여기에 이 대통령은 반이명박 소동 무마를 위해 국민장으로 정해 주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역시 이 대통령은 원칙보다는 기회주의에 젖어 노 전 대통령의 장례 격을 높여 주었고 많은 국민들을 실망케 하였으며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노무현은 국민장, 김대중은 국장, 소신없는 처신
이 대툥령의 소신없는 처신은 그로부터 석달후 타계한 김대중 대통령 장례절차에서 또 다시 노정되었다. 이 대통령은 실무진의 난색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 장례의 격을 ‘국장’으로 올려 주었다. 많은 국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지리라 예상했다.
정부의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현직 대통령은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날 현직에서 물러난 대통령이 사망하였을 때는 모두 국민장으로 하였을 뿐, 국장으로 치른 적은 없다.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타계하자 노무현 정부는 그의 장례격을 국민장으로 결정하였다. 당시 노 정부는 “국민장은 일반적으로 전직 대통령, 국회의장, 대통령 영부인, 국무총리, 대법원장이 서거했을때 적용되는 것”이라며 관례를 제시하였다. 분명히 관례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이 아닌 국민장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국장으로 승격시켰다.
이명박의 왔다갔다 행적, 당선 전과 당선 후
이 대통령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김 전 대통령의 장지를 서울 국립 현충원으로 결정하였다. 현충원에는 충분치 못한 공간으로 인해 김 전 대통령의 묘자리를 확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3년전 타계한 최규하 전 대통령도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갔다. 정부의 관계기관은 “자리도 부족하지만 앞으로 다른 대통령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서울 현충원 장지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유족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라”며 서울 현충원을 지시하였다. 이 대통령의 김대중 국장과 서울 현충원 장지 결정은 분명히 관례와 상식을 벗어난 일탈이었다. 김대중 지기세력에 영합하기 위한 기회주의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의 국민장에 이은 김대중의 국장과 현충원 지적은 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땅에 묻고 말았다.
이 대통령은 2006년 9월6일 “우파에서 좌파로 간 정권을 다시 찾으려면 생명을 걸어야 한다.”며 좌익 세력 쳑결을 위해서는 생명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2007년 8월29일에도 “이번 선거는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결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 날엔 “형식을 타파하고 진보, 보수를 뛰어넘어 실용적으로 국민의 요구를 하나씩 수용해 가겠다.”고 딴말하였다. 생명을 걸고 밀어낸 좌익을 다시 존중한다는 말로써 그의 이념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였다.
이 대통령은 왔다갔다 하더니 당선되자 첫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엔 “실용”을 토해냈다. 그는 “국민들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선택”했다고 선언하였다. 우파이념의 국민들이 “우파에서 좌파로 간 정권을 다시” 찾기 위해 “생명을 걸어”가며 자신을 당선시켜 주자, 그는 “국민들이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선택”하였다고 뒤집었다.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을 경악케 하였고 배신감을 금할 수 없게 하였다.
그러더니 올 6월22일에는 갑자기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며 “중도강화”론을 내걸고 나섰다. 그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좌우 진보 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을 하는것 아니냐‘며 “사회적 통합이라는 것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기업에서 친서민으로
이 대통령의 “중도 강화”로의 변신도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기간에 드러난 그들 지지세력에 영합하기 위한 제스쳐로 보였다. 전국의 분향소에 몰려드는 노무현 추앙세력에 가위가 눌려 그쪽으로 영합하기 위한 말로 해석된다. 대부분의 노무현 지지세력은 보수 우익 노선을 거부한다는데서 보수를 포기하고 “중도”를 내세워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대툥령은 지난 6월25일엔 “경제운용의 초점을 서민생활에 둬 우선으로 배려하라”고 지시하였다. 7월16일에는 친서민 정책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공언하였다. 이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기간에 드러난 반보수적 “서민” 지지세력에 영합하기 위한 소신없는 기회주의적 처사가 아닌가 싶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유세 기간에는 “친기업”정책을 펴겠다고 되풀이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친기업도 얼마 못가 “친서민”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친기업에서 친서민으로의 변신도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친서민을 표방하는 야당과 야당 대선 후보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영합하기 위한 소신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의 가벼운 입장바꾸기는 세종시 백지화를 통해서 또 다시 드러났다. 그는 9월17일 세종시 건설 백지화의 불가피성을 간접적으로 공론화하였다. 그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권에는 도움이 안될지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청와대 측은 “국가 백년대계”란 세종시 계획을 뜻한다며 세종시에 대한 반대 의중을 피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양심상 세종시는 그대로 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총리 임명해 놓고 총알받이로 이용 소신없는 비굴한 행위
하지만 이 대통령은 대선에서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밀고 가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집권한지 1년 반이 지나고 난 뒤에서야 뒤늦게 언제 그랬더냐는 식으로 그 약속을 뒤집었다. 그의 세종시 원안 뒤집기는 그가 대선 기간중엔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지 않았고 오직 당선만 생각했으며 양심을 버리고 국민을 속였다고 자인하는 행위이다. 이것도 기회주의적 사고체계의 소산이 아니가 한다.
그밖에도 이 대통령의 소신없는 지도력은 세종시 백지화를 위해 접근하는 양태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세종시 백지화를 추구하면서도 자신이 앞장서지 않고 새로 임명한 정운찬 국무총리를 내세운다.
이 대통령은 정 총리를 앞세워 국민의 반응을 떠볼게 아니라 본인이 전면에 나서 백지화의 당위성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 총리에게 총리 감투를 씌워주고 총알받이로 앞장서라는 것은 소신없고 비굴한 일이다. 세종시를 백지화하고 충청 인심을 잃게 되면 2012년 대선에서도 1997년과 2002년 대선때 그랬던 것처럼 한나라당은 패할 수 밖에 없다.
그의 소신없이 흔들리는 통치력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음으로써 “사회통합” 대신 사회분열을 자초하고 말았다. 사회분열로 그치지 않고 한나라당내의 내분으로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4대강 사업, 외국어고등학교 존폐, 세종시 등의 문제와 관련해 구심점없이 콩가루처럼 흩어져 있다, 이 대통령의 소신 결여와 신뢰 상실이 빚어낸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조폭 연상케 하는 야당 대여국민 불신에 무임승차
대통령으로서의 신뢰 상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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