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국방관계를 되돌아본다
얼마 전 북한제 무기를 실은 화물기가 태국에 억류됐다. 화물기에는 미사일 20여 기, 대전차 로켓포 48기 등 35톤의 북한제 무기가 적재돼 있었다. 이것은 북한이 제3국을 이용해 무기를 팔다 적발된 것이다. 결국 북한이 테러 지원국이라는 것을 보며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9년도 국방관계를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 해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정리해 보면 첫째, 아프리카 동북부 아덴 만 입구에 있는 지부티에 청해부대를 파견한 일이다. 3월 16일에 문무대왕함, 9월에 대조영함 2진, 11월 20일에 충무공이순신함 3진을 파견했다. 여기에는 청해부대를 포함해 세계 20여 개국 해군함정 30여 척이 활동하고 있다.
청해부대 파견의 의미는 선진국가로서 국제안보에 대한 공헌을 했고 평화유지활동이 육군에서 해군으로 그 임무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연합작전의 기회를 활용해 한미 및 다국 간 해양안보작전의 실제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국위가 선양되고 우리가 해양강국이 됐다는 것을 확신하며 해군의 범지구적인 활동 여건이 강화됐다. 청해부대 파견은 아덴 만에 ‘한국해군’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총 9회에 걸쳐 선박을 구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둘째, 5월 4일 북한 다박솔(6399톤) 호에 ‘링스’ 헬기를 급파해 해적을 퇴치한 일이다. 유엔해양법에 의하면 피랍위기에 처한 선박은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하도록 돼 있다. 이 사례는 한국이 북한상선을 해적으로부터 보호해 준 첫 번째 사례가 됐다. 북한선박의 한 선원은 “정말 고맙고 우리 좀 잘 지켜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셋째, 5월 13일에 있었던 이집트 상선 아미라(74000톤) 호를 해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준 일이다. 해적 격퇴를 위해 미국 해군 게티스버그 함과 연합작전을 폈다. 해외에서 실제 상황으로 최초로 한미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넷째, 10월 29일에 있었던 17년간 암약한 대학강사 이병진 간첩 적발사건이다. 이 간첩사건은 해외 유학생 때 포섭된 ‘장기 우회침투 간첩’이면서 북한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공부한 ‘장학생형 간첩 사건’이었다. 북한이 유학생을 그 대상으로 해 포섭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사건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인도에서 유학하던 중 북한의 ‘35호실’ 대남 공작원에게 포섭돼 17년간 간첩활동을 했다. 힘들고 어려운 유학시절 북한 공작원이 접근해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포섭하자 그 정체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넘어간 것이다. 한편 북한 ‘35호실’은 과거 아웅산 폭파사건, KAL 858기 폭파사건 등을 맡았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11월 10일에 있었던 대청해전이다. 합동참모본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경비정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남하하자 5차례 경고방송을 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자 해군은 경고사격을 했다. 이에 대응해 북한선박은 직접사격을 가했으며 결국 직접적인 교전으로 이어졌다. 이후 북한선박은 반파돼 북상했다. 한편 해군은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서해에 충무공이순신함급(KDX-Ⅱ·4800톤급) 구축함 최영함을 추가로 배치해 같은 급 구축함인 강감찬함과 함께 작전을 하게 됐다. 이로써 대한민국 해군은 서해에 6척의 KDX-Ⅱ급 구축함 가운데 2척을 배치했다.
2009년 한 해는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사건들도 많았다. 특히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안보불감증은 아직도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새해에는 굳건한 안보의식과 한미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더욱 신뢰받는 국군 장병이 되기를 기대한다.(http://kookbang.dema.mil.kr/)
유영옥(경기대 국제대학장·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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