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동해바다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나?
국가는 무엇인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조금은 진부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대부분 한 두번은 생각해볼 수 있는 이 질문에 어느 날 문득 작가 권비영씨가 최근 그녀가 저술한 소설 '조선조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서문에서 이렇게 서술(답)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라가 힘이 없어 망하게 되면 아무리 최고신분의 황제도, 공주도 그 신분을 박탈당하고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되며 하물며 일반 평민대중들이 겪게 되는 비참한 삶과 고충은 이루 말할 나위가 없다." 고. 아마 이게 앞선 물음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사람이 크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안다. 조선조 마지막 황녀(皇女) '덕혜옹주'.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독살'을 지켜봐야 했고,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끌려가 갖은 냉대와 왕따(이지메)를 당하면서도 조선 황녀로서의 의기를 잃지 않았지만 일본 남자와 정략적으로 결혼하고 딸 하나를 낳았음에도 유년기에 겪은 정신적 고통과 숱한 학대 등으로 정신분열증을 앓아 오랜 기간 정신병원에 감금 수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의 의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알고 그녀의 환국(還國)을 추진, 1962년 1월 고국을 떠난지 38년만에야 꿈에도 그리던 조국, 아버지 어머니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귀국해 국적을 되찾았으나 정신분열증으로 온전히 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토록 오래오래 살고 싶어 했던 낙선재(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고종도 이곳에서 기거. 특히 마지막 조선 황족들이 기거한 곳으로 유명)에서 1989년 77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녀의 삶은 어쩌면 힘이 약한 나라가 겪어야만 했던 이 땅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역사의 숨결을 온몸으로 떠 안고 있다 스러져간 한 왕조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니 조선왕조 마지막 황녀가 바로 덕혜옹주였다.
오늘 불현듯 덕혜옹주가 떠오른 것은 특별한 이유가 아니다. 지난 12월16일 오전 나는 강원도 동해바다를 상징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이율곡의 고장이자 그 어머니 신사임당의 애틋한 효심이 서려있는 강릉을 향하는 차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이 날 오후 열리게 되는 순수 민간포럼인 (사) 국제외교안보포럼이 주최하는 전국순회 외교안보전략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을 벗어나 동해바다를 향하는 서울-강릉간 국도는 한산했다. 이른 아침이어서 인지 오가는 차량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강원도. 잠시라도 창문을 열면 좌우 도로변을 연해 높다랗게 늘어선 산자락으로부터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결이 코끝을 간질이며 겨우내 쌓인 심장의 묵은 찌꺼기들을 단숨에 날려 버릴 정도로 청량감을 불어 넣어주기에 충분하고, 차창을 휘감고 돌아가는 바람들도 갈 길이 먼 듯 마냥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보였다.
1주 전인 지난 9일에도 나는 이 길을 달렸다. 그 날은 1968년 12월9일 울진-삼척지구로 침투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부대 무장공비 120명 중 일부 잔당들이 우리 국군의 추격을 피해 강원도 산간 오지(奧地) 두메산골로 들어서 북한 선전을 늘어놓다가 당시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 2학년인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자 잔인하게 학살해 숨진 지 만 41주년이 되는 날로 이 날 그의 묘소가 있는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 기념관에서 41주기 추모제가 거행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1주만에 그 길을 경유해 강릉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산야는 어느 곳을 보더라도 아름다운 산세로 다가오지만 특히 강원도의 산들은 거기에 더해 날카로움과 시원스러움을 더해준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봉우리와 능선들, 뼈대를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이 계절 보는 이로 하여금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쭉쭉 뻗어 올라가는 미끈미끈한 나무들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요염성과 미를 관찰케 하는 즐거움도 함께 누리게 해준다. 바로 우리산하의 아름다움이다.
함께 동행한 멋진 사람들과 더불어 쉴 틈 없이 재잘대다보니 어느새 강릉이다. 이제는 아스라한 안개비와 눈보라의 정취, 고즈넉한 향수가 담긴 옛 대관령 고갯길과는 다르게 뻥 뚫린 터널을 통해 순식간에 통과하기에 그 날의 향취를 맛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어서 빨리 동해바다부터 봐야한다는 갈망과 설렘은 예나 제나 시간이 가도 별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고전취향이 물씬 풍기는 전통 찻집에 잠시 몸을 풀고 따끈한 원두커피 한잔으로 피로를 삭힌 우리는 점심 무렵 경포대 바닷가에 안착했다.
그것은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자 신비였다. 바로 눈앞에서 바다가 요동친다. 오호라, 저 장엄하고도 장대함.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는 태산이라도 녹여버릴 듯한 성난 기세였다가도, 언제였느냐는 듯 한없이 부드러운 어머니의 아늑한 품속처럼 애잔한 미소로 감싸주는 잔잔한 물결. 온 세상을 다 껴안고도 남을 끝이 없어 보이는 웅장함. 밀리고 밀려왔다 다시 하얀 포말(泡沫)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 신은 어찌해서 저 동해바다를 파랗다 못해 검은 진주로 변색해 놓고 말았을까!
'금강산도 식후경'(金剛山食後景)이라 했다지만 이 날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세찬 바람이 외투 깃을 세우게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저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푸른빛과도 같이 장쾌한 검푸른 동해바다와 새콤달콤한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으랴! 카메라 앵글 앞에 포즈를 취함은 지극히 자연스런 순간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강릉시청 대강당.
과연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이고, 또 우리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이 날도 마치 한여름 밤 별빛으로 장식된 높다란 하늘 위에서 별똥별이 우리들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듯이 강릉시청 대강당 위로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은 '너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귀착되는 것이기도 했다.
즉,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힘을 다해 나라를 지키고자 안보를 튼튼히 유지해 나갈 때 국가 또한 나와 우리를 위해 거대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지 결코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내 부모님과 가족, 연인과 친구들, 존경하는 선생님과 어르신 등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고 누리며, 스스로가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도 나를 지켜주고 내 뜻을 펼칠 수 있게 하는 힘있는 국가, 위대한 조국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누군가로부터 지킬 수 있고 서로가 오래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를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이 그 자신에게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은 필연이다. 국가를 지키는 것도, 내가 속한 사회와 조직,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결국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그 날 나는 동해바다 검푸른 물결 위에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덕혜옹주의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서 점철되지 않아야 한다는 역사의 아픔을 되새겨 보면서......(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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