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김상옥열사 순국 87주기 추모식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일경과 교전 중 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열단원으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경과 교전 중 순국한 「한지 김상옥열사 순국 87주기 추모식」이 22일 오전 11시, 열사의 출신학교인 효제초등학교 "순국선열 김상옥체육관"에서 (사)김상옥․나석주의사기념사업회(회장 이한동) 주관으로 열렸다.
이 날 추모식은 손용호 서울북부보훈지청장과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장의 식사(式辭)와 서울북부보훈지청장과 광복회장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가, 헌화 순으로 개최됐다.
김상옥 열사(1890∼1923)는 서울에서 태어나 20세에 동흥야학교(東興夜學校)를 설립해 사회계몽과 민족교육에 헌신했으며,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윤익중, 신화수, 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기관지인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해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軍政署員) 김동순과 만나 암살단을 조직, 적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혈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계획했다.
1920년 10월에는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상해로 망명, 김구․이시영․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조국독립을 위한 의혈투쟁 의지를 키웠다.
1922년 겨울, 폭탄과 권총·실탄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안홍한, 오복영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해 거사 기회를 노리다가 이듬해인 1923년 1월 12일 밤, 일제 식민통치의 근간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해 수명을 부상시켰으며, 1월 22일 일본 경찰과 교전 끝에 장렬히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열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이 날 추모식은 손용호 서울북부보훈지청장과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독립운동관련 단체 대표와 광복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장의 식사(式辭)와 서울북부보훈지청장과 광복회장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가, 헌화 순으로 개최됐다.
김상옥 열사(1890∼1923)는 서울에서 태어나 20세에 동흥야학교(東興夜學校)를 설립해 사회계몽과 민족교육에 헌신했으며,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윤익중, 신화수, 정설교 등 동지들과 함께 비밀결사조직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기관지인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해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1920년 봄에는 만주에서 들어온 군정서원(軍政署員) 김동순과 만나 암살단을 조직, 적 기관을 파괴하고 요인을 암살하는 등 의혈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계획했다.
1920년 10월에는 일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상해로 망명, 김구․이시영․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면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조국독립을 위한 의혈투쟁 의지를 키웠다.
1922년 겨울, 폭탄과 권총·실탄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안홍한, 오복영 등과 함께 서울에 잠입해 거사 기회를 노리다가 이듬해인 1923년 1월 12일 밤, 일제 식민통치의 근간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해 수명을 부상시켰으며, 1월 22일 일본 경찰과 교전 끝에 장렬히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열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img_data/article/110307/110307_377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