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획/특집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1·4후퇴때 낳은 아들, 피란 열차에서 젖 동냥으로 살렸다

Written by. konas   입력 : 2010-03-15 오전 11:15:13
공유:
소셜댓글 : 0
facebook
  저는 글을 잘 쓸 줄 모릅니다. 중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신문에서 '6·25 수기' 받는다는 걸 읽자마자 무조건 펜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떨려 진정이 안되네요.

1951년 1월 3일 새벽 둘째를 낳았습니다. 1·4후퇴 하루 전날이지요. 아들이었어요. 애 받으러 와 있던 친정어머니가 한 솥 가득 미역국을 끓여 주셨어요. 다음날 남편이 허겁지겁 들어와 "마지막 기차를 타야 한다"고 해요. 두살짜리 큰딸은 어머니가 둘러업고, 갓 태어난 아기는 남편이 안고서…. 길은 피란민들로 꽉 차 있더군요.

수원역은 북새통이었습니다. 간신히 열차 지붕에 올라탄 것만도 행운이었지요. 열차는 그 다음날 아침에야 출발했어요. 어느 정거장엔가 열차가 섰는데, 김밥 장수들이 나와 있었어요. 김밥 두 줄을 샀는데 익지 않은 쌀로 대충 말았는데도 어찌나 맛있었는지…. 가끔씩 총소리가 났어요. 그때마다 사람들은 "또 누가 (지붕에서) 떨어졌나보다"고 수군댔어요.

▲ 김은숙씨.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2박3일 걸려 대전역에 도착했습니다. 군인들이 "남자들을 더 태워야 하니까 여자들은 다 내리라"고 했어요. 무서워서 대들지도 못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아기 둘 데리고 무작정 사람들 따라 걸었습니다. 빈집 하나가 있었어요. 쌀통에 먹다 남은 쌀이 있기에 어머니가 밥을 지어 먹었더니 잠이 쏟아졌어요. 그동안 한번도 울지 않던 아이가 피란 떠난 지 나흘 만에 울었습니다. 며칠 후 집주인이 돌아왔어요. 어디로 가야 하나….

대전역에 가보니 기차가 서 있었습니다. 무작정 타려는데 안내원이 "안된다"고 막아요. 쭈뼛거리고 있으니까 어떤 남자분이 그냥 타라고 손짓해요. 용기 내어 올라탔어요. 후….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얼마 안 가 또 "다 내리라"는 거예요. 모두들 우왕좌왕하는데 열차가 또 왔어요. 줄을 서서 타려니까 이번엔 증명서를 보여달래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앞의 아주머니가 "5명 표가 있는데 나 혼자니까 이걸로 타세요" 하는 거예요.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하늘이 저를 불쌍히 보았을까요. 죄를 많이 짓고 살았는데 이렇게 운이 좋으니 말입니다.

젖이 안 나와 아기가 계속 울어댔어요. 불쌍한 것. 세상에 나온 지 고작 일주일인데…. 객실을 돌아다니면서 젖 동냥을 했습니다. "젖 먹이는 분 있으면 조금만 먹여주세요. 우리 아기가 울어요." 여기저기서 젊은 여자들이 젖을 물려줬습니다.

드디어 부산. 열차는 초량이라는 곳에 멈춰 섰습니다. 어디로 가야 남편을 만나나. 퍼뜩 생각이 떠올랐어요. 남편이 공무원이니 경남도청에 가면 뭔가 알 수 있을 거야. 묻고 물어서 도청에 도착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문 앞에 고향 분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분이 지프차를 내줘서 그걸 타고 연락소에 가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제 행운은 거기까지였나 봅니다. 1·4후퇴 때 낳은 그 귀한 아들은 백일을 못 넘기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급성 폐렴이었지요. 주사 값이 너무 비싸 싼 걸 맞혔더니…. 어미 될 자격도 없는 몸이지요. 차가운 아기 시신을 포대기에 싸서 부산 어느 산에다 묻었습니다.

벌써 새벽 2시네요. 가슴 속 응어리를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영감도 재작년에 세상 떠나고, 저도 이제 갈 일만 남았습니다. 한 짐 덜고 가볍게 가겠습니다.(조선일보 '나와 6.25'에서 옮김)
konas.net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6.10.11 일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한미연합연습 축소에 따른 우리 군의 대책
1. 들어가기2026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습적인 지..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공소청·중수청 시대 오늘 개막…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으로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