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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칼럼] 수어장대에 올라 소현세자와 아틸라를 생각하다

경술국치 100년, 국방을 위한 강한 군대의 필요성 절실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8-14 오후 12: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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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기 직전 남한산성에 오르니 수어장대에서 앳된 얼굴의 젊은이들이 조선시대 군복 차림으로 우리 전통무예인 십팔기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다소 생소하기는 했지만 무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겨루기 등을 화려하게 선보여 전통무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창과 칼, 활과 방패는 물론 맨손으로 적을 제압하고 격파하는 18가지 종류의 종합병장 무예인 십팔기는 신라 화랑들이 수련과정에 익혔던 본국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중국과 일본의 무예를 받아들여 조선 후기에 정립됐다.

 ‘수어장대’의 ‘장대’는 장수가 전투를 지휘하는 곳이다. 옛날 인조가 성내 병사를 진두지휘하며 청군과 항전한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수어청 군사들과 승군들이 익혔던 무예를 현대에 이어가는 것을 보노라니, 불현듯 병자호란에서의 패배로 청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로마에 볼모로 갔다가 후에 위대한 지도자가 된 훈족의 아틸라 왕이 생각났다.

 청은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볼모로 잡은 소현세자를 서구문명으로 세뇌시켜 인조의 뒤를 이으려 했다. 소현세자는 강력한 청과 허약한 조선의 현실을 인정하고 명나라 정벌전쟁에 참전함은 물론, 천주교와 서양과학을 받아들여 조선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성리학에 반대되는 서학과 천주교에 빠져든 세자를 인조와 조정은 용서치 않았다. 더욱이 삼전도에서의 굴욕으로 청을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는 인조에게 청과 조선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형성하고자 하는 소현세자가 탐탁할 리 없었다. 불행히도 9년 만에 귀국한 소현세자는 두 달 후에 사망하고 만다.

 반면 아틸라는 낯선 인물이다. 더구나 훈족은 정체성조차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 한나라에 쫓겨 서쪽으로 간 흉노족의 일부라는 설도 있고, 중앙 아시아와 몽고 지역의 유목민이 3세기에 기후 변화로 인해 서쪽으로 이주했다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독일TV ZDF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핑크스, 역사의 비밀’ 중 ‘잃어버린 고리 찾기’ 편은 375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해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아시아 유목민족 훈족을 집중적으로 추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 최동단, 즉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 신라 및 가야인과 훈족의 유물, 유적 등을 비교해 보면 편두(扁頭, 일명 납작머리)와 금관 머리장식 등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아틸라는 AD 395년 훈족의 왕자로 태어나 로마에 예속되기를 원하는 삼촌에 의해 로마 궁정에 볼모로 보내졌다.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호화로운 로마생활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외국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고국과 로마 정복에 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로마의 군대, 무기, 전술의 파악과 강약점을 분석하고, 로마를 찾는 각국의 대신들을 염탐해 황제의 정책결정 과정과 외교에 대해 배우며 장차 훈족의 왕으로서 펼칠 자질들을 키우는 데 힘썼다.

 그리고 왕이 되자 주변의 게르만 제부족을 복속시켜 흑해 북안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훈족은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유목민의 생활로 돌아갔으며 타 민족과 혼혈·동화되어 소멸됐다.

 불행히도 그의 죽음 이후 어떤 이도 아틸라와 같은 넓은 시각과 조국에 대한 헌신의 마음을 갖지 못했다. 권력에 눈이 어두웠던 왕자들과 지휘관들은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아틸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청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다 볼모로 잡히자 외국의 발전된 문물로 조선을 발전시키고자 했던 소현세자와, 로마에 예속되기를 원하는 삼촌에 의해 볼모가 됐지만 외국 문물을 배워 대제국을 건설했던 아틸라.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던 약한 국방력의 결과였지만, 아틸라는국가적인 목표와 희망을 제시해 다양한 종족을 통합하고 단결심으로 똘똘 뭉친 잘 훈련된 군대를 만들어 통일의 역사를 이끌어 냈다. 

 소현세자는 뜻을 펼치지 못했으나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고, 아틸라는 훈족의 자긍심을 높였지만 100년도 안 돼 역사의 나그네로 사라졌다.

 국방과 지도자의 넓은 시각이 국가의 존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역사의 교훈이자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다. 식민지배로 인해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피해와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되돌아 본다면, 국방을 위한 강한 군대의 필요성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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