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소감②] 愚公移山의 지혜를 터득하다.
愚公移山의 지혜
愚公移山. 우공이산이란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어쩌면 우리가 11박 12일 동안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완주하는 것은 산을 옮기는 노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국토대장정을 하겠다고 하면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愚公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국토대장정을 통해 얻은 결과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었던 도중 괴롭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힘든 과정을 거쳐 완주했을 때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고, 앞으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국토대장정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앞으로의 11박 12일이 너무나도 길고 가혹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완수한 지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시간과 가슴에 쌓인 추억들로 아쉬움만이 남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해볼만한 국토대장정! 나 역시 대학생이 된 후 졸업하기 전까지 꼭 한번 국토대장정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재향군인회에서 국토대장정 대원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는 바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원서를 작성하였다. 향군국토대장정은 필요한 물품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참가비도 들지 않기 때문에 지원자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지원서를 썼기 때문에 꼭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후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이 다가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갔지만 내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나의 박약한 의지를 다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6월의 어느 날, 낯선 번호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우리 학교에 결원이 생겨서 대신 참가할 수 있겠느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바로 참가하겠다고 응답하였고, 나도 드디어 국토대장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는 마음으로 오리엔테이션 날만을 기다렸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의 오리엔테이션
6월 6일, 학교가 청주에 있는 관계로 1차 오리엔테이션은 대전 지역에 참여하였다. 시험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과 무더운 날씨, 그리고 길치인 내가 낯선 곳에 제 발로 찾아가야 하는 두려움이 나를 옥죄었다. 겨우 제 시간에 재향군인회라는 곳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전국의 각 대학교에서 1명씩 선발했기 때문에 서로 안면이 없어 강당 내에는 어색함만이 감돌았다. 몇 분 후 안내자가 설명을 시작하였고 작년 국토대장정 활동 영상을 시청했다. 국토대장정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이 존재했을 뿐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동영상을 보니 앞으로 열릴 고생길이 훤히 보여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리고 하루에 6시간 이상 걸을 것이며, 물집이 많이 잡혀 걷기 고통스럽고,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얼굴이 까맣게 타고, 탈수로 쓰러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두려움이 더 커졌다. 또 준비해야 할 물품은 어찌나 많던지 벌써부터 허리가 휘는 것 같았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 나는 원래 집인 수원으로 돌아왔고 며칠 후 6월 19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2차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였다. 재향군인회 7층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가지 물품들과 팀 이름이 적힌 명찰을 부여받았다. 나는 '호국 3팀'에 속하였고 우리 팀원들 중 몇 명이 벌써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는데 팀원들이 말도 걸어주고 친근하게 대해줘서 조금씩 친해질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에 필요한 배낭, 티셔츠, 침낭 등 여러 가지 물품을 받고 팀끼리 동그랗게 둘러 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다들 인상도 좋고 친근해 보여서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더 친해지기 위해 뒤풀이로 회식을 한 후 늦은 저녁에 헤어졌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본 군부대(2010. 06. 25. 1일차)
국토대장정에 갈 준비를 하다 보니 금방 6월 25일이 되었고 당일 새벽 일찍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였다. 우선 커다란 가방과 튀는 복장 때문에 창피함이 앞섰고 집을 떠나 고생을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장에 도착하여 친구들과 즐겁게 떠들다보니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6·25 60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우리 대원 모두가 참석하였다. 6.25 참전국의 대표들과 다양한 제복의 군인들, 그리고 대통령까지 직접 자리에 오시고 오늘 행사가 공중파에도 방영이 되니 감회가 남달랐다. 마지막으로 국토대장정 발대식을 하였는데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우리는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이동하였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분들을 기리고자 묵념을 하니 마음마저 엄숙해졌다. 계속 기자들이 따라다니며 촬영과 인터뷰를 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지만 직접 인터뷰를 할 때는 손발이 오글거리기도 하였다.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수원으로 이동하여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에 도착하였다. 프랑스군은 쌍터널부근 전투, 지평리 전투 등 한국전에 참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기에 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프랑스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바로 수원에서부터 도보 행군을 시작하였다. 날씨가 더워서 갈증이 계속되었고 오랜 시간 걷는 것이 익숙지 않아 발이 점차 아파왔다. 행군 시간은 다른 날에 비해 짧은 편이었지만 처음 하는 행군이라 그런지 많이 힘들었다.
고생 끝에 부대에 도착했을 때는 이제 씻고 편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샤워를 하고 밥을 먹은 후 평소 하지 않던 빨래도 직접 하였다. 처음에는 매일 편리하고 깨끗한 곳에서만 먹고 자다가 남자들만 쓰는 군부대에서 생활하려니 아무리 재향군인회와 군부대 측에서 배려를 해주어도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샤워를 빠른 시간 내에 해야 하고, 지린내가 나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찝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은 점점 사라졌고 나중에는 군부대가 내 집인 것 마냥 편하고 좋았다.
8시간의 행군, 그리고 우루과이전(2010. 06. 26. 2일차)
이틀 차인 다음날 아침에는 6시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군보급용 햅버거인 ‘군대리아’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행군 내내 그리워하게 될 정도였다. 그리고 오전에는 UN군 초전 기념비에 들렀다. UN군 초전 기념비는 비록 우리 측이 패전하기는 하였으나 한국전쟁 발발 후 UN군이 최초로 북한군과 접전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우리는 UN군 참전의 의미를 되새긴 후 곧장 행군을 시작했다. 이 날은 8시간 정도 걷기 때문에 국토대장정 기간 중 가장 힘든 날이라고 했다. 행군을 하면 할수록 발이 아파오고 어깨가 쑤셨다. 오후에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남자 팀원들이 내 침낭을 대신 들어주기도 하였다. 자기 짐도 무거웠을 텐데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간신히 평택에 있는 부대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이 땀에 젖은 상태였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힘든 몸을 풀기 위해 빨리 쉬어야했지만 이 날에는 우리나라와 우루과이의 월드컵 16강 경기가 있어 밤늦도록 자지 않고 팀원들과 경기를 관람했다. TV가 없어 핸드폰의 DMB로 힘들게 시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집중하여 우리 팀의 승리를 기원하느라 몸이 아프고 모기에 물려 가려운 것도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비록 승리하진 못했으나 팀원들과 다 같이 즐겁게 응원하며 봤기 때문에 가장 재밌었던 경기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노란 우비 입고 신나게(2010. 06. 27. 3일차)
행군 3일 차에는 비가 내려서 배낭을 메지 않고 우비를 입은 채로 행군하였다. 햇빛이 들지 않고 몸도 가벼워서 전날보다 행군하기 훨씬 수월하였다. 그리고 우리 팀은 행군을 더 즐겁게 하기 위해 재밌는 게임을 하면서 행군하였다. 자음 퀴즈, 3.6.9 게임, 시장에 가면 등 여러 가지 게임을 하고 벌칙으로 노래를 불러서 행군 내내 힘든 것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저녁에는 천안에 도착하였는데 레크레이션 시간이 있어 조별로 장기자랑을 준비했다. 다들 춤이나 노래를 준비할 줄 알았는데 콩트를 많이 해서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조는 남자 팀원들이 Abracadabra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회성이 오빠가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캐릭터를 성대모사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고 우리 조가 제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
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이 온다.(2010. 06. 28~30. 4~6일차)
4일 차에는 날씨가 개서 배낭을 메고 조치원까지 행군을 했다. 무더운 날씨와 더불어 오후에는 쉬지 않고 1시간 반을 연속으로 행군해서 둘째 날과 버금가도록 힘이 들었다. 하지만 힘든 것을 잊기 위해 계속 팀원들과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행군을 했다. 그리고 이 날은 우리 팀의 아영이 언니와 진솔한 대화를 하며 서로 마음의 문을 연 날이기도 하다. 서로의 고민이나 관심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언니와 나는 어느새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우리는 행군이 끝날 때까지 서로 손을 잡고 행군했고, 언니는 내가 힘들 때마다 응원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도 언니와의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다음 날에는 조치원에서 계룡대까지 걸어갔는데 전날 보단 행군하기에 쉬웠지만 중간에 고갯길을 넘어갈 때는 정말 고통스러웠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도 끝까지 의지를 잃지 않고 행군을 마쳐 계룡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계룡대는 육군, 해군, 공군의 3군 통합본부이자 군 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부대인 만큼 골프장, 주유소, 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군부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넓고 경치도 좋았다.
6일차에는 행군을 거의 하지 않고 오전부터 계룡대에서 6.25 전쟁과 국군에 관련된 강연을 들었다. 심신이 지쳐 나를 포함한 많은 대원들이 좋은 강연을 해주심에도 불구하고 강연 도중에 잠들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강연자 분께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아무튼 강연이 끝나고 전쟁과 관련된 여러 기념 장소를 관람한 후 버스를 타고 대전현충원에 도착하였다. 정부에서는 서울현충원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현충원 추가 건립을 추진하였고, 1976년에 대전현충원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수많은 호국영령들과 더불어 이번 천안함 사태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주검이 안치되어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국군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 하다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사태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현충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보은에 도착하여 1시간 정도 행군을 하였다. 이날은 매우 적은 시간 행군을 해서 몸이 가뿐하였다.
재밌는 화령장 전투 이야기(2010. 07. 01. 7일차)
드디어 6월이 가고 7월이 다가와 행군 중반부가 되었다. 행군 중반부의 고비를 넘기면 행군하는 것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단장님의 말씀대로 이제는 행군하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물집도 거의 잡히지 않고 몸이 아픈 것도 훨씬 덜하였다. 또한 이 날에는 화령장지구 전적비에 도착하여 묵념을 한 후 화령장 전투에 참전했던 분으로부터 직접 그때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생생하게 듣는 시간을 가졌다. 할아버지께서는 79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정하신 모습이었고 강연도 재미있게 해주셔서 졸지 않고 말씀을 잘 들었다. 화령장 지역은 소백산맥을 통과하기 위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상곡리 전투와 동관리 전투에서 우리 국군은 크게 승리하여 중부전선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였다고 한다. 저녁에는 경북 김천에 도착하여 휴식 시간을 가졌다.
낙동강 전투, 동족상잔의 비극(2010. 07. 02. 8일차)
다음 날에는 장마철답게 장대비가 쏟아져 우비를 입고 행군을 했다. 시원하게 비를 맞으며 행군하니 몸과 마음이 더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칠곡에 있는 왜관전적기념관과 낙동철교에 도착하였다. 왜관전적기념관은 낙동강 방어선의 주요전투인 왜관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국군과 유엔군이 최후의 방어선인 워커라인을 구축하여 격전을 벌임으로써 필사적으로 전선을 지켜 전세를 역전시키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낙동철교에서는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의 전쟁 상황을 머리에 떠올리니 어릴 때 본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 속 장면이 함께 떠오르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같은 민족끼리 반목하고 질시하며 전쟁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시는 이러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일사분란한 의장대 공연(2010. 07. 03. 9일차)
9일차에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들렀는데 이곳은 6·25 당시 대구사수의 보루인 다부동 전투의 전승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념관이다. 특히 다부동 전투에서는 노무자들이 국군에게 탄약과 식량을 날라다 줌으로써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대구로 이동하였는데 우리나라의 극서지인 만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열기가 후끈하게 감돌았다. 대구에 있는 부대는 계룡대보다 훨씬 시설도 좋고 편리한 점이 많았다. 특히 멋진 의장대 공연을 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맞춰 동작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구사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 공연을 위해 얼마나 피땀 흘리며 연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령관님으로부터 제2작전사령부를 상징하는 코인을 수여받고 기념 촬영도 했는데 높으신 분을 직접 대면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하였다.
여군에게 반하다, 그리고 추억의 롤링페이퍼(2010. 07. 04. 10일차)
10일차에는 영천지구 전투전승비에 갔다. 영천지구전투는 인민군의 대구 진출에 대비한 전투로서 인민군의 보급과 병력 보충이 뒤따르지 못하여 우리 군이 인민군을 섬멸하고 최초의 방어선을 회복한 전투라고 한다. 이날은 육군3사관학교에서 머물렀는데 학교 홍보용 동영상을 보니 혜택도 많고 졸업 후 진로도 명확하여 좋은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남자 못지않게 씩씩한 여군들이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는 조원이 모두 모여 롤링페이퍼를 썼다. 우리 조는 롤링페이퍼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 종이 대신 티셔츠 위에 편지를 남겼다. 평소 하지 못했던 말을 진심을 담아 전하니 조원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고 이제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였다.
드디어 완주!!(2010. 07. 05. 11일차)
다음날은 오전부터 행군을 하여 영천 국립 호국원에 방문했다. 힘들게 도착을 했는데 또 오르막길이 눈앞에 펼쳐져있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씩씩하게 올라가 호국영령들에게 묵념을 하고 단체사진도 많이 찍었다. 이날은 단장님의 생신이라서 오랜만에 피자를 먹었는데 국토대장정 중 처음 먹는 음식이라 평소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행군 마지막 날인만큼 계속 열심히 걸었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해서 덥고 힘들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그 어떤 날보다도 기쁘고 뿌듯했다. 이제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해방감이 들면서도 너무 빨리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쉽고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행군을 모두 마친 후 버스를 타고 포항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 기념관으로 갔다. 이 기념관은 포항일대의 전투에서 학도병들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해병대 부대로 가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밤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야제를 시작했다. 전에 만났던 레크레이션 강사가 또 와서 진행을 하였는데 춤추고 게임하는 활동이 많아서 저번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고기와 술을 먹으며 조원들끼리 돌아가며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만 안타까워졌다.
모두 안녕히 가세요.(2010. 07. 06. 12일차)
다음날에는 부산으로 이동하여 재한 UN 기념공원에 도착하였다. UN 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목숨을 바쳐 싸운 유엔군 장병들이 묻혀 있는 장소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되새긴 후 해군 함대인 대조영함을 보러 갔다. 대조영함은 우리나라가 자체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한 4500톤 급 다목적 구축함으로 기관포, 유도탄, 레이더 등 근접방어무기체계를 갖춘 군함이다. 대조영함은 크기가 웅장하고 멋있는 함대였다. 대조영함을 둘러본 후 우리는 해단식을 하기 위해 다른 건물로 이동하였다. 해단식을 할 때에는 한사람씩 위로 올라가 국토대장정을 완주했음을 증명하는 수료증을 받았다. 회장님과 악수를 하고 짧은 인사를 나누니 이젠 정말로 모두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회장님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UN 기념공원으로 이동하여 단장님의 마지막 조언을 듣고 헤어졌다. 매일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단장님의 부드럽고 친근한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플 따름이었다. 우리 조는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국토대장정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송정으로 MT를 가서 1박 2일 동안 물놀이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국토대장정이 나에게 준 의미
나는 위와 같은 행군 과정을 거치며 행군 자체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그 이외에 6·25 전쟁에 대한 의미, 친구나 선후배와의 관계, 내 자신에 대한 반성 등 행군 내내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선 행군 기간 중 씻는 것과 잠자리 등에 있어서 평소보다 좋지 않은 환경을 감수하면서 조금 불편한 것이 있더라도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자 대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더러운 것, 불편한 것을 잘 참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 부대에 갔을 때는 화장실이나 내무반 이불, 목욕탕 등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것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세탁기 없이 손빨래를 하는 것, 공중화장실을 몇 분씩 기다려야 하는 것, 마르지도 않은 속옷을 입고 다니는 것, 샤워를 10분 안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 벌레에 물리는 것, 땀에 젖은 채로 행군하는 것, 남이 먹던 식판을 맨손으로 씻어 다시 사용하는 것 등 많은 일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불편함에 익숙해졌고 오히려 재향군인회 측에서 우리를 먼저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조금 더럽고 불편한 것이 있어도 까다롭게 굴지 않고 참고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또한 행군 내내 군대 내부에서 생활을 하고 단체 행동을 함으로써 개인보다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평소 어른들로부터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인간이 된다.'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예전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느낀 점은 군대와 같은 집단에 소속되어 생활을 하면 자신의 이익만 앞세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나보다 남을, 특히 선배나 어른 등 윗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질서와 규칙을 지켜 행동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여자를 약자로 인정하고 우선적으로 배려해주는 점이 고마웠다. 나는 교대를 다니기 때문에 같은 과에 남자 학우가 별로 없어서 힘쓰는 일이나 어려운 일을 여자끼리 도맡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남자 팀원들이 힘든 일을 알아서 해주고 행군할 때 여자 대원이 힘들어하면 배낭을 대신 들어주는 등 남자들이 여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여자들이 하는 일이 너무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평소 군대에 대해 조금은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군대에서 직접 생활하며 군대 생활을 직접 들여다보고 군대의 좋은 점도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국내의 수많은 전적지를 답사하고 군대와 전쟁에 대한 강연을 보고 들으며 6·25 전쟁과 북측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원래 진보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침략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 그리고 미국을 무조건 우호적인 국가로 생각한다는 것에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평소 북한과의 전쟁에 대비해 안보를 강화하기 보다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북한과 협력하고 공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의 이러한 신념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러 군부대를 거치면서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이렇게 힘쓰고 있다는 것을 보았고 '안보는 공기와 같은 것으로써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라는 말을 들으며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이 안보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도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려고 아등바등 하는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견원지간으로 여기고 전쟁을 하며 쫓고 죽이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국가 안보를 잘 지키면서도 북한과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 더욱 노력했으면 좋겠다.
또한 나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더 큰 의지와 용기를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겠다는 원래의 목표를 조금이나마 달성한 것 같아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처음 행군을 시작할 때는 내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만이 앞섰다. 실제로 행군을 할 때도 많이 걸어서 발에 물집이 생기고, 배낭이 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아플 때에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졌고, 동료들과 서로를 이끌어주고 힘을 주면서 결국 서울에서 부산까지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이번 국토대장정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이 눈앞에 닥칠 것이다. 또한 성공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실패하고 좌절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갈 기세면 뭐든지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노력하면 반드시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것은 국토대장정을 하며 얻은 나의 소중한 동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멋진 추억들이다. 우리는 행군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고 힘든 여정을 함께 극복했기에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11박 12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먹고 자고 행군하면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었고 헤어질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같이 열띤 월드컵 응원전을 펼치고, 행군하다 힘이 들면 노래를 부르고 게임도 하고, 수박과 아이스크림 먹는 시간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복불복으로 설거지 내기를 하며 점점 군대 생활에 익숙해지는 우리의 모습에 감탄했던 추억들이 영원히 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함께 했던 시간이 담긴 사진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그 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이렇게 특별한 인연과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향군국토대장정, 앞으로도 내 대학생활 중 최고의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konas)
권혜정(한국교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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