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소감③]'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대장정 기간 동안 제목에 표시된 말을 가장 많이 곱씹었던 것 같다. 힘든 행군 중에는 이 말을 떠올리며 강한 자가 되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겨서 인지 괜스레 힘이 나곤 했다. 본인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잠시나마 안일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고,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대학생활의 반을 잠시 숨을 고르고 국토대장정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나를 시험해 보며, 남은 대학생활의 새로운 각오와 포부를 다질 때가 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토대장정에 도전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자극을 얻어 대장정 후 더욱 발전할 나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컸기 때문에 끝까지 완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대원도 그러했겠지만 이번 대장정 역시 토익 공부라든지 자격증, 계절학기 등 현실적인 문제와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었다.
무궁무진한 꿈이 가득해야할 대학시절. 발밑의 황금을 찾다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것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라는 생각에 나는 한 치 주저 없이 참가신청서를 작성했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고, 비록 나의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이 크긴 했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대장정에서 얻어 오면 된다 생각 했기에 국토대장전 전까지 부지런히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다졌던 것 같다.
드디어 국토대장정의 첫날, 처음, 그리고 시작이라는 말이 풍기는 온갖 느낌을 가득 안고 108명의 대원들은 울림픽 공원으로 씩씩한 발걸음으로 향했을 것이고 나또한 그랬다. 60년 전 6·25전쟁의 발발로 인해 이 땅 위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갖고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 회원국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자리에 감사의 마음을 더하며 국토대장정 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자리하였다. 모든 대원들을 포함하여 이곳에 자리한 사람들은 6.25의 노래를 제창하며 하나 되는 시간을 보냈다. 행사를 마치고 우리 대원들은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들이 안장 되어 있는 그곳에서 묵념을 드리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수원에 위치한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로 이동하였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프랑스군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비라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사한 프랑스 군 장병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묵념을 드리고 국토대장정의 본격적인 행군을 시작했다. 따가운 햇빛과 점점 아파오는 발 때문에 한발 한발 내딪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60년 전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을 참전 용사분 들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걸었다. 우리들은 공군부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개인시간을 가졌다. 나는 첫날부터 물집이 잡힌 탓에, 내일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고 자꾸만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약한 생각을 하는 나에게 실망스러워 일찍 일기를 쓰고 잠에 들었다.
2일차, 아침식시로 말로만 듣던 군대리아를 먹게 되었다. 예비역 오빠를 따라 햄버거를 만드니 정말 맛이 좋았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유엔군 초전 기념비로 떠났다. 한국전쟁 때의 유엔군 첫 전투를 기려 세웠다는 초전비는 당시의 치열했던 격전 상황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동상도 있었다. 유엔군의 크나큰 희생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는 묵념을 드렸다. 그 이후로 계속 행군을 하였고 나는 점점 커져가는 물집 때문에 크나큰 고생을 하였다. 이날은 우리나라와 우르과이의 경기가 있었던 날이였다. 새벽에 모든 조원이 모여 월드컵을 응원했으나 2:1의 패배.. 대원들 모두가 경기 후에도 식지 않은 열정과 패배의 아쉬움에 잠을 뒤척였다. 하지만 내일 있을 고된 행군을 생각하며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다.
3일차는 평택에서 천안까지 계속 행군만 있던 날 이였다. 서로 힘들고 피곤한 상태라 적막함이 흐르는 행군 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어보자 해서 게임을 시작하였고, 웃고 떠들다 보니 시간도 정말 빨리 가고 발도 덜 아픈 기분이었다. 그때 나는 대장정은 풍물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다. '악기를 친다. 판을 친다.' 라는 말은 풍물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데 혼자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닌, 함께 호흡하고 눈빛을 나누며 연주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나의 경험상으로도 혼자 장구를 치는 것보다 여럿이서 하나의 곡을 완성해 나가며 함께 연주를 할 때 더욱 힘이 나고 신명이 났던 기억이 났었다. 대장정 역시 풍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가 혼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완주 할 수 있겠는가? 국토대장정은 동료가 있기에 가능하고 든든한 동료의 존재를 감사히 여기고 서로 끌어주고 의지하는 데에서 차츰 차츰 완주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번 대원들 모두가 함께 호흡하고 눈빛을 나누며 연주가 아닌 행군을 즐기면서 대장정동안 멋진 호국3팀 풍물패를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행군을 했던 날 인 것 같다. 저녁에 있던 레크레이션과 장기자랑 시간에는 대장정 기간 동안 보지 못했던 대원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었다.
4일차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낀 걸로 보아 오늘은 무척 날이 더울 것 같았다. 출발하기 전부터 걱정이 컸지만 씩씩하게 행군을 시작했다. 발의 상태가 더욱 좋지 않아 절름발이 걸음으로 걷게 되었다. 절뚝거리는 걸음 때문에 결국 넘어지게 되었다. 의료팀의 도움으로 치료를 끝내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자꾸만 더욱 아파오는 다리에 오후에는 결국 눈물이 났지만 나약해 보이는 내 모습이 미워 더욱 힘차게 걸으려고 노력했었다. 드디어 숙소가 있는 군부대 앞에 도착하고, 군악대가 우리를 반겼다. 숙소까지 꽤나 긴 거리에도 불구하고 군인 분들께서 우리를 마중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동안 피곤이 앞서 정리하지 못했던 짐들을 정리하고 빨래도 깨끗하게 빨고 내일 있을 행군을 위해 발도 풀어주고 군의관분들의 꼼꼼한 치료도 받았었다.
5일차는 계곡평상에서 점심을 먹었었다. 수많은 취재진 분들이 우리를 촬영하기 위해 나와 계셨다. 더운 날씨에 고생하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우리들은 3군의 통합기지인 계룡대로 향하였다. 계룡산 기슭에 위치한 계룡대를 가기위해서 오르막길 언덕 때문에 대원들은 하나둘씩 지쳐갔고 나 역시 아픈 발로 내딪는 오르막길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군악대의 환영을 받으며 우리는 계롱대 안으로 들어갔고 육군, 해군, 공군 총장님과 악수를 나누는 영광스러운 자리도 가졌었다.
6일차, 오전행군이 없는 달콤한 날 이였다. 계룡대의 소개를 듣기위해 우리는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건물로 들어가 육, 해, 공군의 본부가 모여 있는 계룡대에 대한 소개와 각 군별 현황보고를 받고 육군 명예의 전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VTR 관람 후, 우리는 명예의 전당에서 전사하신 분들의 성명이 적힌 곳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계룡대를 떠나 대전 현충원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 묻혀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묵념을 드리고 최근 천안함 사건의 희생자 분들의 묘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묵념을 드렸다. 우리 또래들에게 일어난 일인지라 묵념을 드리는 내내 가슴이 아파왔다.
7일차도 역시 아침 일찍 행군을 시작했다. 화령장 지구 전적비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한 설명과 묵념을 드린 후 점심을 먹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6·25전쟁 유공자 회장님과의 만남을 위해 당시 격전지인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떠났다. 운동장에 앉아 회장님의 그 당시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6·25 전쟁이 아주 오래전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전쟁이라는 것이 약간이나마 실감이 났었다. 지금 앉아 있는 이곳에서도 전투가 벌어져 피로 물들고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고 생각하니 약간은 끔찍했다. 그때의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이렇게 아름다운 땅위에서 벌여졌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화령장 전투는 최소피해 최대전과인 군사작전 원칙의 모범적인 전례를 보여주는 전투라 한다. 알아보니 육군 2사단에서 6·25전쟁 60주년 행사로 선배 전우들을 기리기 위해 화령장 전투를 재현하였다고 한다. 북한군 전선 사령부에 치명타를 입힌 화령장 전투는 아군의 낙동강 방어를 위한 시간적 여유를 얻게 했던 의미 깊은 전투라 하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8일차, 자꾸만 고통이 더해지는 발 때문에 아침 일찍 압박붕대를 둘러매고 행군을 시작하였다. 오후에 비가 조금씩 내려 우비를 입고 행군을 하여 낙동강까지 이동하였다. 교과서로만 이름을 들어온 난생 처음 낙동강의 풍경에 감회가 새로웠다. 낙동강의 철교위에서 6·25전쟁 당시 이곳에서 일어났던 전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렇게 평화롭기 그지없는 낙동강이지만, 60년 전 이곳은 핏물로 강이 물들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희생되었다 하니 지금 흐르는 이 낙동강의 강물의 그 당시 희생자들의 눈물을 대신하는 듯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다. 다시는 이 평화로운 강이 핏물로 물드는 일이 없어야만 할 것이다. 낙동강 다리 밑에서 우리는 향군회에서 준비해 주신 맛있는 수박을 먹고 군수님의 응원을 듣고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에 가서 여러 동상과 기념비 그리고 내부의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묵념을 드린 후 숙소가 있는 부대로 이동하였다.
9일차,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서인지 시작부터 지쳐있었다. 계속되는 행군에 결국 나는 신발 끈에 다리를 걸려 넘어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돌이 많은 길 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살이 패이고 피도 많이 났다. 많이 아팠지만 창피한 마음에 안 아픈 척 치료를 받았지만 정말 너무 아팠다. 더운 날에 자꾸 흐르는 진물 때문에 두 배로 고생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으로 이동했다. 대구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투의 요충지였던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전투에 참가한 2,165명 전우들의 명각비도 둘러보고 장갑차와 전차 그리고 직사포 등이 전시된 야외 전시 장비를 둘러보고 전승비까지 구경을 하였다. 묵념을 드리고 우리는 다부동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걱정을 하셨던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 편지를 전하고 제2작전사령부로 이동했다. 군악대의 우렁찬 팡파르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그곳에서 의장대의 멋진 시범까지 불 수 있었다. 늠름한 의장대의 모습에 넋을 놓고 시범을 지켜봤다. 2작전사령관님께 기념코인도 받고 기념촬영도 했다. 저녁 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며칠 남지 않은 대장정을 조원들이 모여 서로 아쉬워하며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조국의 운명을 건 갈림길에 적군의 무리들이 영천뻘을 넘나드니 인과 철이 용융하는 전쟁터로 너, 나 뛰처나가 둑을 막아 내 고장을 지켰다.
저-기룡산은 이-금호강은 너의 용자를 길이 간직하리
11일차 드디어 행군의 마지막 날이다! 有終의 美를 거두기 위해 행군 채비를 마치고 힘찬 걸음을 내딛었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뜨거운 날씨에 얼굴이 익고 발은 점점 뜨거워져 물집이 재발하기 시작했다. 11일차 우리가 들린 첫 번째 장소는 영천 국립 호국원이다. 산을 깎아 만든 탓에 가는 길이 험하고 힘들었지만 호국원에 도착하여 탁 트인 전경을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 시원했다. 산 하나를 깎아 만든 거대한 규모에 놀랐다. 호국원에서의 묵념을 마치고 우리는 마지막 행군을 장식하기 위해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욱 힘이 나서 걸었고 마침내 대장정에서의 공식적인 행군은 다 끝났다! 기쁨 반, 아쉬움 반에 기분이 묘했지만 마치 수능이라도 끝난 것 마냥 정말 기뻤다. 버스에 올라타 우리는 포항으로 이동하고,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 도착하였다. 우리를 위해 나와 주신 재향군인회 여러분들이 보였고, 더욱 반가운 수박이 보였다. 수박까지 먹고 우리는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의 설명을 듣고 묵념을 드렸다 .영화 '포화속으로' 소재지인 이곳은 6·25 전쟁당시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또래 어쩌면 나보다 어렸을 학생들이 펜을 던지고 총과 검을 잡으며 구국을 위해 자진참전하여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 한다. 충혼탑에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힘들다며 툴툴대었던 나를 잠시나마 반성하고 부끄러워지는 자리였다. 버스를 타고 우리는 포항 해병부대에서 저녁을 먹고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레크레이션과 전야제 시간을 가졌다. 술도 마시고 레크레이션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마지막이라는 여운과 아쉬움이 더욱 컸었던 것 같았다.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신 단장님, 그리고 재향군인회 분들, 의료팀분들, 스탭 분들 그리고 나와 11박 12일을 함께해준 대원들 모두가 감사하고 소중해 졌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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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차에는 부산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새벽 일찍 버스에 올라타고 마지막으로 재한 UN기념공원에 들러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참배도 드렸다. 나와 같은 나이에 이국의 땅에 피 흘리며 죽어간 참전용사의 비석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그분들의 몫까지 내가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6·25 참전용사분의 실감나는 말씀도 들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은 살아야 했고, 살기 위해서는 옆에 죽은 동료의 호주머니를 뒤져 건빵 한 조각이라도 더 먹어야만 했었다는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에 눈물이 흘렀다. 참전용사분도 그때 당시의 그 울분이 다시 떠오르시는지 쉽게 말씀을 마치지 못하셨다. 정말 참된 공부를 하고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해단식을 갖기 위해 해군부대로 이동하였고 그전에 대조영함에 올라타 해군부대와 대조영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인터뷰도 하였다. 식당으로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해단식 리허설을 위해 우리는 강당에 자리하였고, 우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여주신 재향군인회 회장단과 그리고 군악대등이 함께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드디어 해단식 단상위에 올라가 수료증을 받은 순간의 짜릿함은 아직도 나를 벅차게 만든다. 드디어 해냈다는 뿌듯함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 평생 연락하자는 약속을 하고 각자 집으로 떠났다. 버스 안에서 상처 난 다리 그리고 물집 잡힌 발을 보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내 인생 다시 없을 기회,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 준 재향군인회와 스스로 도전하여 결실을 맺은 나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까지 얻어 온 것 같다. 행군하다 힘들면 지금의 나보다 몇배 더 힘들었을 부모님을 떠올리며 떳떳한 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 아픔을 참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행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토대장정.. 이 땅에 하고 싶어도 신체가 온전하지 못해서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의 몫까지 대신하여 걸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건강하게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던 내 인생 잊지 못할 순간 이었던 것 같다.
'不入虎穴 不得虎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다. 즉 모험을 하지 않고서는 큰일을 해낼 수 없다는 뜻인데, 이번 대장정의 모험은 앞으로 내 미래의 큰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 그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여 앞으로 있을 고난과 역경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넘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전쟁 [戰爭, war]은 국가 대 국가의 교전이라는 사전적의미가 아니라
이번 대장정 과정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6.25 전쟁이 아닐까? 위는 전쟁의 사전적 의미를 뜻한다. 그러나 이번 6.25전쟁 60주년 대학생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을 수료한 대원이라면 누구든지 전쟁이라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로 함축될 수 없는, 그 이외에도 더 많은 비극적인 모든 것을 내포하는 것임을 두 눈과 두 귀 그리고 두 발로 보고, 듣고, 느꼈을 것임이 분명하다. 물론 나도 이번 대장정을 통해 역사 교과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밑줄을 그어가며 글자 그대로 외워온 그저 시험범위로만 여겨온 6.25 전쟁에 대해 쌓아온 그동안의 생각과 느낌을 모조리 떨쳐 버리고 온 기회였던 것 같다. 그동안 알고 있던 것 그 이상으로 잔인하고, 비극적이며,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6·25 전쟁의 참혹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가슴으로 감사의 말을 수십번 되새겼던 것 같다. 또한 얼마 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의 아픔이 다시금 아름다운 우리 땅에 찾아올지도 모른 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였다. 항상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지금의 이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되었고, 훗날 교단에서 내가 가르치게 될 아이들에게 6·25 전쟁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참된 경험을 하고 돌아 온 것 같다.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의 잊혀 질 수 없는 아픈 역사이고 장차 자라나는 세대가 꼭 알아야 만하는 역사라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매년 맞이하게 될 6월 25일을 기념하고 역사에 대한 지식을 넓혀나가 우리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한창 꿈을 펼쳐야 할 나이에 6·25 전쟁에 참가하여 꽃피우지 못한 젊음과 생명을 기꺼이 받친 호국 영령들과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름 모를 나라에 자유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UN군 참전 용사 분들께 소감문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아 뜻 깊다. 국토대장정의 대원으로 나를 선발해주시고, 많은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11박 12일 동안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젊음하나로 끝까지 도전한 대원들, 스탭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올린다.(konas)
한송이(공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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