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소감④]"나의 작은 걸음에 당신들의 혼이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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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선발되어 참가하게 된 국토대장정이었던 만큼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일단 국토대장정이 아닌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어서는 안 될 1950년의 역사와 또 그 역사의 발자취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국토대장정의 제일 큰 매력이 아니었을까. 그 매력 때문에 꼭가기 위해 노력했고, 신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갈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기뻤다. 정말 나와 같은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조상들,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정신과 격전지 한 곳 한 곳에 베여 있을 그 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출발 전부터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60년 전 6월 25일은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시작했지만, 2010년의 6월25일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108명의 활기찬 모습으로 대장정의 서막을 올렸다. 아직은 서로의 모습이 어색하게 멋쩍어 보이는지 서먹서먹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다들 과연 내가 완주 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자기 자신과의 물음에 대답을 못하는 듯 기대 반 불안 반 이었을 것이다. 12일 이후의 자신이 달라진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60주년 기념식이 끝나고 우리는 드디어 11박 12일의 대장정의 첫 걸음을 땠다. 다들 상기된 표정만으로도 대장정에 대한 각오와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첫 목적지는 서울 국립 현충원이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다 순국 하신 애국지사를 비롯한 선배 전우들이 잠들어 계신 곳이었다. 나는 현충원에서 참배를 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순국선열들께 우리의 출정을 알리고 허락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허락으로써 11박12일 간의 일정 동안 우리 108명을 지켜달라는 기도도 함께 말이다.
사실 나는 대장정을 시작할 때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께서 6·25 참전용사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의 참전 기록으로 이 곳 대장정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외가쪽에는 참전 용사분이 많으시다. 외할아버지의 형제들은 모두 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셨던 분들이었다. 큰 외할아버지와 작은 외할아버지 두 분께서 편히 잠들어 계신 곳도 바로 이 곳 현충원이다. 어릴 적 현충일이 되면 어머니 손을 잡고 이 곳에 오곤 했었는데, 그 작은 고사리 손으로 비석을 잡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이러한 아픔을 간직한 곳 인줄 모르고 그냥 풀밭을 뛰어 놀던 나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매여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만큼 아픔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나였기 때문이다. 가슴 속으로 나는 외쳤다. 할아버지의 그 정신 손자가 이어서 이 나라 작은 힘이지만 꼭 잘 지켜 내겠다고, 이 나라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1일차 국토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은 우리를 그렇게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60년 전 선배전우들이 북한에게 밀려 힘겹게 남으로, 남으로 눈물을 머금고 퇴각하는 길처럼 슬퍼 보이기도 했다. 첫 날 수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일명 ‘지지대 고개’ 라고 불리 우는 곳에 위치한 ‘프랑스군 전적지’를 참배하게 되었다. 과거 조선시대의 조선에 대한 약탈을 일삼았던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였지만, 60년 전 6월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연고 하나 없는 이국에 파병 하여 수호하고자 했던 그들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내 가슴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또한, 처음 이곳의 건립은 한국정부가 주도했지만, 이제는 프랑스정부가 나서서 직접 이 전적비를 관리하겠다고 하여 노후화된 상태로 보수공사를 아직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자신들의 조상들의 숨결이 모셔진 이 곳을 프랑스에서 공수한 것들로만 공사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에서 바다 건너 있는 모국이지만 머나먼 동쪽 나라 한국에서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의지가 느껴지는데 왠지 모르게 씁쓸해졌다. 과연 우리는 우리나라의 전쟁에 참전했던 그들에게 그 만큼 관심과 사회적 배려가 작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군의 흔적을 뒤로한 채 우리는 1일차의 숙영지로 향했다. 첫 숙영지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 숙영지의 도착할 때 처음으로 들었던 첫 날의 군악대의 경쾌한 멜로디 그거 하나에 우리는 1일차의 피곤했던 몸과 마음에 다시 여유가 찾아왔다.
그렇게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다음 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우리가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 수 있게 도와준 UN군의 초전비가 세워진 오산이었다.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그들 일명 ‘스미스 특수임무대대’ 그들은 작은 수였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가장 먼저 달려와 준 그들이었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정말 UN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서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그러한 마음이 깊어졌다. 정말 그 누가 자기네 나라도 아닌 작고 이름도 잘 모르는 나라에 와서 그러한 희생을 감수 할 수 있을까. 과연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그 곳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씁쓸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역만리에 와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또 얼마나 그리웠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마다 무엇인가가 내 가슴이 뭉클해지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하루, 그리고 또 하루씩 우리의 대장정에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함께 하고 있었다. 대장정의 나날이 더해가고 있을 무렵 우리는 하나 둘씩 힘들어 배낭을 버리고 싶을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 마다 저기 뒤편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정겨운 외침 ‘파이팅, 파이팅.’ 이 세 글자에 우리는 힘겨운 한발 한발을 더 내 딛고 있었다. 그리고 ‘다왔다, 다왔다.’ 라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말이 우리의 귀에 들릴 때면 너도나도 따로 없이 힘을 내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갔다. 이런 것이 바로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국토대장정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요, 모습이 아닐까. 힘든 이가 있으면 서로 가서 앞에서는 끌어주고 옆에서는 힘을 북돋아 주고 뒤에서는 밀어주고 밖에서 볼 수 있는 전우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휴식에는 서로를 챙기고 자신의 발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발 보다 팀원의 발을 먼저 바라보며 걱정해줬고, 자신의 수통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나눠 마셨던 훈훈한 모습이 생각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힘든 행군의 나날을 보내면서 우리는 동기애와 전우애로 똘똘 뭉쳐지고 있었다. 한국의 펜타곤인 계룡대에서 육군 참모총장님의 환영도 받아보고 어딜 가던지 우리가 도착할 때쯤이면 울려 퍼지던 군악대의 소리가 들려오던 그 소리가 너무나 그립기도 하다.
이후 또 다시 우리는 전쟁이라는 참상과 또, 현재 우리의 안보 상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전에 위치한 국립 현충원에서의 ‘천안함 46용사’ 들의 참배였다. 불과 3개월 전의 일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안보의 중요성과 현재의 우리 대한민국의 휴전상태를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지금 이 곳에 있으며,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천안함 용사들의 희생과 후배전우를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 던지신 고 한주호 준위의 모습 앞에 우리는 너무나도 슬픈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곳에서는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또 국민으로서 그 들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46용사들의 숨결을 느끼고 우리는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정말 우리 세대에 보고 느낄 수 있는 한반도 안보의 현실 앞에서 우리 108명은 모두가 엄숙하고 숙연해져 있었다.
우리가 행군을 하면서 각 지역을 지나 갈 때 마다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분들이 계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는 것에 상관없이 지역 재향군인회 어머님 아버님들께서는 자식과 같은 우리를 위해 물과 간식을 준비해 주셨고, 격려와 당부도 잊지 않으시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나중에 나도 국토대장정을 하는 애들을 보게 된다면 꼭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어느덧 국토대장정을 시작한 지도 절반을 넘어 후반부로 가고 있었다. 60년 전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지역으로 우리는 가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으로 가는 우리를 보고 하늘도 감동하셨는지 오랜만의 단 비를 내려 우리의 땀을 식혀 주었다. 낮과 밤의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다부동 전적지와 흐르는 낙동강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는 왜관 낙동강전투, 최후의 보루였던 대구 사수를 위해 미친 듯이 싸워 지킨 영천지구까지 전쟁이 있었던 지역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고요한 곳이었다. 그 것이 오히려 너무나 가슴 아팠다. 영천 지구 전투는 큰 역사적 의의가 있어 이승만 대통령께서 직접 내려오셔서 전적비를 건립하라고 지시하셨을 만큼 중요했지만, 이제는 쉽게 찾아 볼 수도 없는 문화원의 뒷쪽 풀이 자란 구석진 자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들이 목숨과 맞바꾼 이 곳에 서있는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존재인지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부터라도 부끄럽지 않는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인원이 여기에서 눈을 감았을까 한 많은 이 곳에서 쉽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영천을 지나 우리는 이제 대장정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영천에서의 숙영지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육군3사관학교였다. 항상 정복을 입고 열 맞춰 걷던 그 곳에 대장정의 일원으로 들어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더욱이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내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신념이 확고해지는 시기였기에 학교 방문은 더욱 뜻 깊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한다. 교내에서 교수님과의 잠깐 동안의 만남이 나에게는 더욱 더 큰 힘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선택한 나에게 ‘너는 결코 뒤쳐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잠깐 너의 동기들 보다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뿐이다. 그 여유를 너는 다른 생도들은 느끼지 못하는 많은 것을 느끼는 것을 보니 좋다.’ 고 하신 교수님의 말을 듣고 나는 지금까지의 혼자만 늦는다는 가슴앓이를 조금은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을 하는 명분과 이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내가 이번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생각했던 것이 학도의용군기념관이었다. 아쉽게도 휴무일과 겹쳐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추모탑에서 그 아쉬움을 달랬다. 지금의 우리, 아니 우리보다도 어린 나이에 계급과 직책도 없이 오직 우리나라의 공산화를 막아보겠다던 그들을 생각하니 내가 한 없이 부끄러워졌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자신에게 득이 없으면 하지 않는 이기적인 우리의 모습과 또 안보불감증으로 친북세력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몇몇 단체들을 생각하면서도 너무나도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그 학도병들이 지하에서 과연 편히 누워계실까. 당신들이 지켜낸 이 땅 이제는 우리 젊은이 에게 맡기시고 편히 잠드시길 기도했다.
벌써 출발한 지 12일차, 마지막 포항 해병 1사단에서의 숙영을 마치고 우리는 이 머나먼 기차의 종착역인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과는 다른 우리들의 모습 아마도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더워서 짜증나고 힘들기만 했던 대장정에서 이제는 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긍지를 느껴서가 아닐까.
2010년 7월6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거행된 ‘6.25전쟁 제60주년 기념 대학생 전적지 답사단’ 의 해단식이 거행되었다. 단장님의 완주 신고를 듣고 아 이제는 정말 끝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올림픽공원에서 출발할 때의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정말 변했을까. 서로 힘들어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이제는 무엇이든 도전할 것이며 또 해내겠다는 의지를 우리는 다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 25일 출발하여 서울에서부터 부산 까지 우리는 한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완주를 하였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희망 젊은 대학생들이라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징징 되던 동기도, 못 걷겠다던 동기도 이제는 모든 게 웃으면서 기억 될 추억이 되어버린 국토대장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나는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나 현재는 사관생도로서 장차 장교가 될 나에게 이번 국토대장정은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내가 참 군인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 같다. 또한, 생도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오늘과 일반 대학생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알게 된 것 같아 또 다른 세상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내가 한 단계 더 올라 선 느낌이었다. 그들의 생각을 잊지 않고 접목 시켜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래를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몸소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한 우리는 다른 이들 보다 조금 더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꼭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국방력의 힘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인연의 중요성도 생각했다. 다들 우리는 국토대장정이라는 매개체로 이어진 인연들이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했지만 짧지만 길었던 12일 간의 희노애락을 같이하면서 우리는 아는 사람에서 이제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다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말 혼자라면 포기하고 당장 그만 두고 집에 가버렸겠지만, 내 주위에는 항상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내 손을 잡아 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대장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닌 우리 함께한 모든 인원들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대장정을 하면서 발바닥에 물집이 하나하나 잡힐 때마다 그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걸었던 우리, 그 물집 잡힌 발바닥이 굳은살로 다시 자리 잡을 때쯤 우리의 마음 속 한 구석에도 단단한 굳은 살 같은 대한민국에 대한 굳은 의지가 샘솟지는 않았을까.
팀원들과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지금 이 느낌, 우리가 했던 11박12일 동안 했던 경험은 어디 가서도 느끼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학교를 다니면서 또 훗날 밖에 나가서도 이 경험을 잊지 말라고 이 말을 했는데 다들 기억을 할까.
옆에서 힘내라고 외쳐주던 파이팅 소리도, 함께 부르던 노래도, 힘들 때 발 맞춰 걸어가 주는 친구도 이제는 없지만, 그 추억 속에서 한동안 살 것 같다.
'추억은 잊는 게 아니라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2010년의 6월의 여름, 어쩌면 몸은 너무나도 힘들고 지친 나날이었지만, 우리의 가슴과 마음에는 열정으로 뜨거웠던 2010년 6월의 모습을 기억하길 기도해본다.(konas)
박재영(육군 3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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