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소감⑥]"배는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A ship is safe in harbor, but that’s not what ships are for”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William Shedd (윌리엄 쉐드)
“전쟁”이란 단어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무척 생소할 수 있다. 그저 역사책에서만 읽을 수 있는 단어라고 쉽게 단정짓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오늘, 우리는 놀랍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속에 살아가고 있다.
6.25전쟁.
이 전쟁은 3년 동안 한반도를 피로 물들이고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국민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60년 전에 발생되었던 이 전쟁은 우리민족과 우리조국을 찢어놓았으며 현재까지도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2010년 오늘날 이 세계 속에 우뚝 서있다. 조국분단의 비극을 뒤로하고 다른 선진국에 뒤쳐지지 않으며 당당하게 세계화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발전과 뛰어난 인재양성으로 현재 우리국민들은 풍요롭게 살고 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걸맞지 않게 오늘날 많은 우리국민들은 올바른 안보의식을 잃어버리고 있다.
나 역시 7년 동안의 해외생활로 우리나라 안보를 잊어버리면서 살아왔다. 애국심이 강한 미국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대한민국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나라를 이 세계속에 더욱 더 알리기 위해선 내가 먼저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잊혀져가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기위해서, 그 배움으로 한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서 나는 파란만장한 6‧25 제 60주년 대학생 전적지 답사를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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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서울 올림픽 공원 → 수원
2010년 6월 25일 이른 아침. 출근시간 전인 지하철 안은 한적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올림픽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108명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연했지만 모두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조경기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육군, 해군, 공군, 미군, 그리고 그 참혹했던 전쟁을 몸소 기억하시는 참전용사들로 가득 채워졌다. 6·25 제 60주년 기념행사 중에서도 아직 나는 이 전쟁이 우리나라에 어떤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또한 국군과 UN군들에 대한 감사함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해외 참전 국가들에게 우리의 감사함을 전할 때에도 그저 국토대장정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만이 커져갔다. 행사가 끝나고 우리 대학생은 6·25전쟁을 추모하기위해서 그렇게 기다렸던 첫 발걸음을 떼었다.
바쁜 일정으로 우리는 서울 현충원에 서둘러 도착하였고 호국선열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 시절 견학학습으로 많이 방문했었던 현충원이였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이 모셔져 있다는 일반적인 내용만 알고 있던 나였다. 하지만 이번 현충원 방문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시다 돌아가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색다른 체험을 주어 나에게 좀 더 각별하게 인식되었다.
점심 후 우리들은 신속하게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에 도착했다. 지지대고개에 위치한 이 지역은 6·25전쟁 때 참전한 프랑스군을 기념하기위해 설립되었다. 치열했던 전투속에서 비록 겉모습은 우리와 달랐지만 마음만은 하나였을 거라 생각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더불어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공산주의의 침략에 맞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장렬하게 싸우시다 돌아가신 프랑스군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아파왔다.
참배를 마치고 우리가 하루밤을 지낼 공군 제 10전투비행단에 당도했다. 첫날이라 피곤했지만 처음 들어와 보는 한국군부대와 열렬한 환영인사로 피곤함은 금방 잊혀졌다. 하루를 마치면서 가슴속까지 감사함을 느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동안 감사함을 잊어버리면서 살아온 것 같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색했는지…. 오늘은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우리나라 모든 군인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Day 2 수원 → 평택
수원 공군 제 10전투비행단에서 나의 첫 영내생활을 마치고 간단한 전투기 견학을 끝으로 우리 대학생들은 죽미령에 위치한 UN군 초전기념비에 도착했다. 이 곳은 말 그대로 유엔군이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인 곳이다.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스미스부대는 치열하게 맞서 싸웠지만 약 6시간의 방어전투후 스미스부대는 철수하였다. 비록 북한군을 막지는 못했지만 이 전투는 북한군에게 미군의 참전을 지각시켜준 큰 계기가 되었다.
미군의 전투력은 북측에 큰 인명피해를 주었지만 미군의 도움으로 쉽게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착각은 아쉽게도 빗겨갔고 아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를 해야 하였다. 그때 그 참담했었을 전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오지만 그때의 후퇴가 후에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승리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If you want to succeed, double your failure rate.”
(“성공하는 비결은 실패율을 두배로 높이는 것이다.”)
– Thomas J. Watson (토마스 제이 왓슨)
공군방포여단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동안 그 참혹했을 전투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의 희생앞에 머리가 숙여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방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 같았고 발의 통증도 심해졌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무거운 장비들을 매고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행군했던 군인들의 고통을 몸소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숙소에 도착한후 생일을 맞이한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이때까지도 어색했던 우리팀원들이었지만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 12명은 그렇게 서로에게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
Day 3 평택 → 천안
차가운 체육관 바닥에서 일어난 뒤 국토대장정에서의 3번째 하루가 시작되었다. 장마라서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비에 대처하기위해 만만의 준비를 마치고 108명의 행군은 시작되었다. 조금씩 걷다보니 일기예보에서 예고했듯이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거세지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우리들은 더욱 웃으면서 서로를 응원했다. 노란색 우비를 입고 행군하면서 나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국가의 안전을 위해 수고하시는 모든 국군께 다시 번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의 행군을 마치고 장기자랑 시간이 왔다.
첫날부터 고민했던 장기자랑.
서로에게 말을 걸기도 어색했던 때가 어제 같았는데 어느새 12명 모두 한마음이 되어 장기자랑준비에 참가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중학교 때 마지막으로 했었던 장기자랑 이었기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깜깜했지만 우리 단원들의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모아나갔다. 단순히 일등을 하겠다는 욕심보다 서로에게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우리들은 대장정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짧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연기를 했고 믿겨지지 않았지만 1등을 할 수 있는 영광까지 얻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피곤함을 잊어갔고 소리없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 12명은 어려울 때 먼저 손을 내밀고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Day 4 천안 → 조치원
화려한 밤을 보내서인지 아침에 목소리가 잠겨버렸다. 하지만 어젯밤의 달콤했던 승리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신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출발이었지만 조치원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 발은 더욱 더 아파오기 시작했고 국도의 뜨거운 열기는 숨까지 막히게 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고 편하기 그지없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눈물을 머금고 계속 전진했다. 순간 역사책에서 보았던 6.25피난민 사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족들과 남쪽으로 피난을 가시던 한 어머니. 자식과 헤어질세라 손을 잡고 머리에는 짐을 이고, 어깨에는 어린 아이를 업고 계시던 어머니. 그분의 고통과 쓰라린 아픔을 생각하니 나의 육체적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불평하고 있는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알게 되어 부끄러워졌다.
차가운 물 한 모금에 행복을 느껴보는 것이 너무 낯설었고 10분의 달콤한 짧은 휴식에도 감사했다. 이런 행복과 감사함을 느끼면서 6.25전쟁의 쓰라린 아픔과 그 참혹했던 시간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겠다고 절실히 느꼈다.
Day 5 &6 조치원 → 계룡대
자신과 싸우며 걷고 또 걸어 계룡대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계룡대가 그저 우리가 하루밤 머물러야 하는 또 다른 부대일 뿐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너무 힘들어서인지 계룡대 가는 길은 더 험난하게 느껴졌다. 팔과 다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땀은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의 육체적 고통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Friendship (우정) 그리고 Patriotism (애국심)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같이 생활하면서 나는 마음으로 사람을 얻었고 미국의 펜다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육군, 해군, 공군 3군 통합본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6일차 아침에 계룡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나서 군인들은 단순히 나라만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 일을 하면서 더불어 국가안보시설과 주민의 안전을 위해 일을 하시는 따뜻하고 강인한 분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어 군인들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끝없는 훈련과 교육속에서 온몸으로 365일 우리나라의 평화를 지키시는 분들께 감사했다. 지금 내가 이런 평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그분들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군사력이 존재하기에 전쟁이 일어나고 평화가 파괴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군사력이 있을 때 에만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안뒤로 앞으로 우리나라의 군사력 강화에 힘을 더욱 더 써야하며 군사력에 대한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계룡대는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었다.
Day 6 계룡대 → 보은
천안함 사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기억되고 있다.
북한의 일방적인 돌발행동.
그 행동은 참혹한 결말을 맺게 하였다. 천안함은 바다속으로 사라졌고 그 군함과 함께 우리나라의 해군 46장병들도 전사하셨다. 우리나라의 바다를 수호하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기위해서 우리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당도했다. 그 분들 묘지 앞에 서자 목이 메어오고 눈물이 흘렀다. 그분들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셨는데 나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에 수없이 올라오는 사실 확인 불가능한 이야기들… 이런 글들이 유가족들의 가슴을 찢어놓을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우리나라를 먼저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을. 그러기에 더욱 더 천안함 침몰을 잊지 말고 미래에는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온 국민이 관심을 갖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배 후 동광 초등학교로 걸어가는 보은의 거리는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아름다운 정경을 감상해 가면서 짝궁과 담소도 나누어 가면서 우리는 초등학교 체육관에 도착하였다. 휴식시간 때마다 길에 누워 자는 버릇까지 생길정도로 피곤했지만 자유시간에는 모두의 눈이 다시 밝아졌다. 야식을 즐기면서 게임도 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힘든 하루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았다.
Day 7 보은 → 김천
보은을 뒤로하고 우리는 김천으로 향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밀려오는 육체적 피곤함으로 온몸이 힘들었지만 부대에 들어가기 전에 6‧25 참전용사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편하게 앉아있는 이 자리가 60년전 피바람이 불고 지나갔던 곳이라고 상상할 수 가 없었다. 또한 화령장지구 전투가 한국군에 의한 최초의 승전지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전투의 성과로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용맹한 우리 국군이 자랑스러웠다.
Day 8 김천 → 칠곡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렸다. 행군을 하면서 비가 내린 적은 있었지만 눈 시야가 어두워질 정도로 내린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우의를 입었지만 신발과 양말은 급속히 젖어왔고 체력도 급속도로 저하되었다. 몸이 젖어서 불쾌했지만 낙동강 철교를 방문했을 때에는 다시 한번 6·25참전 국가에 대한 감사함과 비참했던 그때의 비극이 나의 편한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낙동강 철교를 지나 왜관 전적기념관에서 6·25전쟁 때 쓰였던 무기들과 사진들을 본 뒤로 국가안보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낙동강 전투가 실패되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하지만 나는 아군의 뛰어난 전투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후의 결전장이었던 낙동강전투.
낙동강이 적군과 아군의 피로 물들어 가면서도 우리는 이 지역을 지켜냈다. 이제는 그때의 그 슬픔과 비극을 낙동강만 기억하고 잊게 해서는 안될 것 이다. 우리나라 미래를 이끌어갈 후손들이 그때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그 슬픔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Day 9 칠곡 → 대구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마지막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제는 한 시간 한 시간 지날수록 아쉬움이 밀려왔다. 서로 배려하면서 힘들어도 웃어주었기에 더욱 각별해진 사이가 된 건 아니었을까?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도착하여 피비린내 나는 다부동 전투설명을 듣고 대구에 위치한 제2작전 사령부에 다달았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군악대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무더운 날씨에도 우리를 위해 준비한 의장대 시범을 보기위해 연병장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에 기념사진을 찍고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목숨을 다하면서 대구를 사수하기위한 방어전투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때 꽃잎이 아직 피지도 못한 채 나라를 위해 마지막 숨을 거두신 모든 병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사회속에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구에서 나는 지난 23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Day 10 대구 → 영천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알람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고 10분만의 짧은 샤워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젯밤에 비가 심하게 내렸지만 하느님의 도움으로 하늘은 비구름만 가득할 뿐 비는 그쳤다. 이제는 발도 적응되어 심하게 고통도 느끼지 못했고 행군속도도 빨라졌다.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그렇게 걸어서 영천 지구 전투 전승비에 도착했다. 철수와 공격을 반복하면서 수많은 전사자, 부상자, 포로들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전투였지만 뛰어난 아군의 전황분석으로 우리는 북한군에 대한 반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 묵념을 끝으로 영천에 위치한 제 3사관학교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나라 육군 인재양성에 힘쓰는 교육기관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이곳에서 꿈을 키워나가는 분들께 존경심이 생겼다. 나도 우리나라를 위해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발전해가고 싶다.
Day 11 영천 → 포항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전적지답사. 하지만 어느새 마지막 행군날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부터 구령을 붙이며 아침운동을 하는 국군을 보니 이분들이 있는 한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이라 그랬을까? 급격한 체력소모에 웃음을 잃어갔고 화상으로 빨갛게 달아올라가는 팔의 통증은 더욱더 심해졌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한계를 극복했을 때의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자신과의 싸움을 해가면서 영천 국립 호국원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호국원과 현충원의 다른점을 알지 못했다. 이번기회에 다른점을 확실하게 배울 수 있어서 뿌듯했다.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하신 분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실 수 있다. 하지만 현충원과 호국원의 주요 다른점은 전쟁에서 순국하신 분들이나 전쟁중에 공을 쌓으신 분들은 주로 현충원에 안장된다는 것이다. 호국원 역시 전쟁에 참가하셨던 분들이 안장되는 장소지만 군에서 20년이상 복무를 하지 않았거나 훈장이 없으신 분들이 대다수라고 들었다.
호국원 입구에 당도하기 위해서 언덕을 오를 때 숨이 찼지만 도착했을 때 아래로 펼쳐지는 전경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끝없이 나열된 묘비들을 돌아보면서 그분들을 추모했다.
마지막으로 학도의용군 전승 기념관을 방문했다. 목이 타들어갈 정도로 심한 갈증을 느꼈지만 재향군인회에서 나온 여성회분들이 준비해주신 달고 시원했던 수박은 수분보충하기에 충분했다. 이 곳은 부모님께 투정이나 부릴 나이에 위험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학생들을 위해서 건설되었다고 한다. 부족한 무기들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장렬하게 싸웠을 학도병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리는 마지막 숙소인 포항 해병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밤을 장식하기위해 전야제를 할 때에도 화상을 입어 심해진 팔의 통증은 나를 아프게 했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파왔다. 미국에서 온 나를 위해서 좀 더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 주기위해 고생한 나의 팀원들에게 감사한마음을 좀 더 전하고 싶었는데 볼을 타고 쉴세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속에 말을 이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꺼지지 않길 원했던 전야제의 캠프파이어는 그렇게 조용히 식어갔다.
Day 12 포항 → 부산
부산에서 있을 해단식을 위해 아침 일찍 버스에 올랐다. 제일 먼저 재한 UN 기념공원에 도착했고 공원을 돌아다니며 다른 나라의 전쟁에 참전하시고 소중한 목숨을 잃으신 분들의 묘비를 손수 만져보았다. 최연소 전사자의 나이가 17살이란 소리를 듣고 났을 땐 ‘그 어린나이에 무엇을 알고 무엇을 위하여 대한민국에 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그런 값진 희생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으로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해단식을 하기위해 해군부대로 향했고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대조영함을 보았다. 항상 새하얀 제복을 입은 해군들의 겉모습에 매료되었지만 전투함 안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창설 영상을 본 뒤로 부족한 환경속에서도 큰 기상과 애국심이 우리나라 해군을 진정으로 빛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단식에서 우리나라의 태극기를 들고 서있었을 때 그 뿌듯함과 가슴 벅찬 성취감은 지금 생각해도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있었지만 11박 12일의 국토대장정을 끝으로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
나를 진심으로 감싸주고 응원해준 나의 팀원들을 만났고
단순한 책속의 지식을 뛰어넘어 마음으로 역사공부를 했으며
힘든 일상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었고
나의 평범한 일생에서 감사함을 일깨워주었다.
11박 12일의 대장정을 뒤로하고…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길고도 짧았던 나의 모험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던 전적지답사였다.
항상 숨돌릴 틈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에게 이번 기회는 우리나라가 오늘날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역사공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이상 소홀히 다루어야하는 종목이 아니다. 1분 1초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안에서 더욱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할 것이다. 60년전 피흘리며 대한민국을 지켜내신 분들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무한한 발전을 추구하는 나라로 성장해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대한민국의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konas)
이화선(University of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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