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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09 화폐개혁 당시 상인들 집단시위" 첫 증언

김정일 화폐개혁에 반발해 무산시장에서 시장세 거부, 독창적 주민 저항수단 가능성 있어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1-01-03 오후 4: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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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말 북한의 화폐개혁 직후 함경북도 무산시장에서 상인들의 집단행동이 있었다고 열린북한통신이 3일 보도했다.

통신은 2010년 12월27일 함경북도 무산에서 탈북해 현재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강모씨가 “2009년 11월 30 화폐개혁 직후 일주일도 채 안돼 함경북도 무산군 무산시장에서 장사꾼들이 시장세 납부를 거부하는 집단행동이 있었다”는 증언을 했다고 밝혔다.

이 증언은 북한에서 발생한 주민 집단행동에 대한 첫 구체적 증언으로 주목된다. 당시 시장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탈북자 강모씨는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던 40대의 남자 최모씨가 당시 시장세 납부 거부를 주도했다고 한다.

최모씨는 자신과 친한 상인 몇 명에게 “안간힘을 써서 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워 놓았더니 김정일의 총알받이 밖에 된 게 없다”며 “우리가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며 시장세 거부를 부추겼다고 한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최씨의 의견에 동의하고 무산시장 장사꾼들을 설득해 수백 명의 상인들이 시장세 거부 움직임에 동참했다고 한다.

탈북자 강모씨에 의하면 당시 무산시장 상인들은 갑작스러운 화폐개혁 시행에 불안해했으며, 게다가 세대당 10만원에 한해서만 화폐를 교환해 준다는 정책발표가 나오자 흥분한 상인들 수백 명이 시장세 납부 반대 시위에 동참했다고 한다.

무산시장은 무산군 내에서는 가장 큰 시장으로 매대 수가 삼백여개에 이르며 한 매대 당 한두 명 정도 장사꾼이 있다고 강모씨는 전했다. 북한에서 시장세는 군행정위원회 산하의 시장관리소에 매일 내는 것으로 시장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구화폐로는 약 250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시는 화폐개혁 직후로 신화폐 가치의 시장세 가격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시장 문이 닫힐 무렵인 오후 4시 전후 쯤 시장관리소 관리원들이 시장세를 수납하기 위해 나오자 이들은 시장세를 끝까지 내지 않고 버텼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통제가 불가능해지자 입장이 곤란해진 인민보안부 소속 시장 전문 단속 규찰대들은 결국 시장세를 포기하고 평소보다 3~4시간 일찍 시장 문을 아예 닫아버리는 강제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는 정상적으로 가동되어 하루 동안의 소동으로 그쳤고, 이후 시위에 나섰던 상인들에 대한 처벌이나 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또 당시 거의 모든 상인들이 김정일 정권에 대한 격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을 감시 및 단속하는 규찰대마저도 화폐개혁으로 인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감시나 처벌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북한 전문가의 말을 빌어 “일제시대에 시장세 거부 운동이 있기는 했으나 북한에서 시장세 거부 집단행동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며 “단 하루 소동이기는 하지만 북한에서 상인들의 집단행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북한 역사상 아주 의미가 크다” 고 전했다.

특히 “북한에서 정치적 행위는 바로 처벌을 받는데 경제적 저항이 처벌을 받지 않았다면 시장세 거부와 같은 집단행동은 앞으로 북한 주민들의 새로운 저항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며, “민주주의가 극도로 억압되는 북한에서 아주 독창적인 주민 저항 행위가 창출된 것”이라고 전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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