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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결정적 하루'

"이제 무바라크는 끝났다. 새로운 중동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Written by. 趙甲濟   입력 : 2011-02-02 오후 4: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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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요사이 세계사적 사건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흥분을 느낀다. 오늘로 8일째 접어든 이집트의 민중봉기는 1979년의 이란혁명, 1989년의 東歐(동구) 공산권 붕괴처럼 세계 전체, 그리고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사건이다. 한국인의 삶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슬람과 石油로 상징되는 중동 지역의 戰略的(전략적) 중요성은 중국의 팽창과 北核으로 상징되는 東北亞의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21세기 人類(인류)가 直視(직시)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중동 最古, 最大 국가인 이집트는 중동의 정치적, 외교적, 사상적, 문화적 지도 국가였다. 이 나라가 불타고 있다. 나는 시위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9일간 이집트를 여행하였다. 내가 카이로를 떠나오는 날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집트 체험에서 얻은 현장감각을 바탕으로, CNN과 BBC의 현장중계를 지켜 보고, 카이로에 사는 교민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진행중인 대사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釜馬사태, 10·26 사건, 12·12 사건, 광주사태, 6·29 선언 등을 취재한 경험이 이집트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스라엘을 취재한 경험도 쓸모가 있다. 나는 1995년 11월 라빈 총리가 암살되기 하루 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고 20여 일 간 이스라엘의 군대와 정치를 취재하였다.
 
 오늘 최대규모의 평화적 시위가 카이로 해방광장에서 있었다.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질서 있게, 즐겁게 “무바라크 물러나라”를 외쳤다. 취재기자들은 이 광장의 분위기를 ‘카니발’이라고 표현하였다. 현지에서 여행업을 하고 있는 李鍾熙씨는 “30년간 억눌렸던 언론자유를 행사하는 이들의 표정이 밝고 축제 분위기이다”고 했다. 이집트는 철도, 은행, 학교, 인터넷이 기능정지되고, 主수입원인 관광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경제적으론 기절한 형편인데, 사람들은 열정과 희망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어제 이집트 군대는 평화적 시위는 국민들의 권리이므로 군대가 발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집트 군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무바라크와 시민 사이에서 심판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군대가 시민들의 무바라크 퇴진 요구를 합법적인 권리라고 선언한 것은, 시민들을 사실상 勝者(승자)로 만든 셈이다.
 
 오늘을 이집트 역사의 ‘결정적인 날’이라면서 ‘백만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과 논평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무바라크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종희씨는 “시민들이 무바라크의 인형을 만들어 교수형을 시키는 퍼포먼스를 했다”면서 “열흘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고 감탄하였다. 이슬람이나 아랍사람들에게 교수형은 가장 치욕적인 사형법이다. 독재자는 국민들 마음 속에 공포심을 심을 수 없으면 끝장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지난 8일간의 시위를 통하여 머리와 가슴 속의 독재자를 죽인 것이다. 
 
 오늘의 대시위와 때를 맞추어 소규모 시위가 계속되던 요르단의 國王도 총리를 해임하고 정치개혁을 약속하였다. 튀니지에서 출발한 中東의 激變(격변)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前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작금에 中東을 뒤흔드는 시위의 성격은 상투적인, 反美나 反이스라엘 성향이 아니라 反독재-反부패-反빈곤, 즉 민주화 운동이란 점에서 中東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이젠 무바라크가 물러날 것이냐가 쟁점이 아니라 무바라크가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가 해결되겠는가이다. 무바라크가 임명한 부통령과 총리, 장관이 무바라크 없이 사태수습을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견해가 강하다. 무바라크 통치와 직접 관련이 없는 40~50대 장교들이 주도권을 잡고 反정부 세력과 대화를 하면서 민주화 개혁을 하는 게 현실적이란 분석도 나온다. 모든 문제를 투표장에서 결정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자의 치명적 한계는 권력을 놓는 즉시, 도망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피살된다는 점이다. 그 현명한 李光耀(이광요)도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모든 독재자의 고민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가이다. 한국도 전·현직 대통령들이 客死(객사), 피살, 투옥, 자살을 기록하였다. 모든 권력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毒(독)이 묻어 있다. 민주국가에선 그 毒이 치명적이진 않다.
 
 이번 카이로 시위는 지도자나 主動(주동)조직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자연발생적이란 점에서 순수하게 보인다.
 
 그러나 밤이 되면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다. 경찰이 숨어버린 카이로에선 폭도들과 범죄자들이 밤을 틈타 살인, 강도, 약탈을 일삼는다. 이종희씨는 “일몰을 알리는 기도소리가 들리면 불안해진다”고 했다. 주택가에선 이때부터 주민들이 조직한 自警團(자경단)이 활동한다.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수상한 자동차를 수색하고, 죽창이나 부엌칼을 들고 순찰을 하면서 재산과 가족을 보호하려는 활동이 시작된다. 밤만 되면 총성이 울린다. 이종희씨는 “어제밤 우리 집 부근에서 두 명이 죽었다”고 했다. 밤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 언론은 어제, 오늘 이집트 사람들의 시위 방식을 칭찬한다. 파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시위를 하다가도 경건한 기도를 올리고, 쓰레기까지 치운다는 것이다. 勝者의 여유인가?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기자는 해방광장에서 만난 이집트 사람들이 "이번 민주화 시위는 튀니지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왜 미국은 우리의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지 않는가"라고 따졌다면서 "이집트가 미국에 민주주의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한 이스라엘 외교관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집트 사태는 군중이 주도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과 알자지라 방송이 선동한다. 무바라크를 대신할 지도력이 만들어질지 의심스럽다. 이집트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지금 이집트 사람들이 느끼는 희열은 언젠가는 실망이나 배신감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조차도 역사를 진전시키는 실망과 배신감이 될 것이다.
 
 카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다. 2300만 인구에 수백 만 대의 자동차가 車線(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메운다. 그럼에도 범죄율이 매우 낮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에서 소매치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슬람이 강한 나라의 공통점이지만 이집트처럼 가난한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오늘 해방광장에서 있었던 시위에 이런 좋은 점이 부각된 모양이다.
 
 요사이 이집트의 날씨는 한국의 늦가을 같다. 데모하기 매우 좋은 날씨이다. 섭씨 50도까지 오르는 여름이었다면 이런 시위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카이로의 연평균 강우량은 40밀리에 불과하다. 이런 기후가 피라미드를 거의 原型(원형)대로 보존시켰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는 이집트의 겨울날씨가 시위대를 돕고 있다. 이집트는 나일강이 준 선물이라고 한다. 이번 시위는 하늘이 준 선물인가?
 
 *일본에 이런 속담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젊은이, 바보, 외부에서 온 사람이다>
 
 1961년 4·19 학생혁명은 10대, 20대가, 그 1년 뒤 5·16 군사혁명은 30, 40대가 주도하였다.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세력도 이 연령층에서 나올 것이다.
 
 *이집트는 인구의 약 77%인 6300만 명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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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바라크가 가면 김정일도 간다?
 
 
  공동운명체 같은 이집트 정권과 김정일 정권의 기막힌 인연.
 趙甲濟
 
  <카이로 국제공항에서는 이집트를 빠져 나가기 위한 ‘엑소더스’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유층과 기업인을 태운 민간 항공기 19대가 29일 카이로를 떠나 두바이 등으로 떠났다.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중에는 이집트 통신업계 거물인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과 호텔 재벌인 후세인 살렘 일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동아닷컴)
 
  오라스콤 회장 사위리스는 지난 23일 訪北, 김정일을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중앙통신은 "통신 등 우리나라 여러 분야에서 오라스콤의 투자가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때 방문한 이사장(사위리스 회장)을 환영해 담화를 하신 뒤 선물을 받고 만찬도 마련하셨다"고 밝혔다.
 
  오라스콤은 2008년 12월 75%의 지분 투자로 '고려링크'를 설립, 평양에서 휴대전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후 서비스 지역이 북한 내 12개 주요 도시와 42개 소도시로 넓어졌고 가입자수도 작년 3분기 말 현재 30만1천199명으로 전년 同期보다 400% 이상 늘어났다고 동아닷컴은 전했다.
 
  이집트를 뒤흔들고 있는 시위사태의 여러 요인중 하나가 오라스콤의 활발한 휴대전화 사업이다. 이집트엔 수천만 대의 휴대전화가 보급되었다. 젊은이들이 이 휴대전화를 이용, 시위대를 조직하였다. 오라스콤이 지금 보급하고 있는 휴대전화가 북한 청년들에 의하여 反김정일-反김정은 시위의 도구로 이용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이집트와 북한정권의 관계는 특이하다.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때는 북한 조종사가 미그기를 몰고 이스라엘 공군과 싸웠다. 그때 이집트 공군사령관이 무바라크였다. 카이로에 있는 10월전쟁 기념관을 지어준 이도 김일성이었다. 무바라크도 북한을 네 차례 방문, 김일성을 만났다. 이집트-북한은 거의 동맹국 수준으로 가까워졌다. 이집트는 4차 중동 전쟁 직후 북한에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주었는데, 북한은 이를 분해, 북한식 스커드를 개발, 중동에 수출하였다.
 
  뿐만 아니다. 무바라크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사람이 많이 달라졌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수년 전부터 아들 가말(48세)을 후계자로 세우는 준비를 해왔다. 가말은 이집트 집권당(국민민주당)의 정책위 의장인데, 시위 사태 이전엔 올해 있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추측도 불렀다. 무바라크가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세우는 과정을 연구한 것 같기도 하다.
 
  김일성을 만나고 와서 그를 본뜨려다가 나라를 망친 독재자로는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와 짐바브웨의 무가베가 있다. 무바라크도 이 科에 속하는 듯하다.
 
  무바라크와 북한정권은 공동운명체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무바라크가 가면 김정일도 갈 것인가? 이집트 사태가 휴대전화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중국을 거쳐 북한정권까지 뒤흔들 것인가? 중동이 흔들리면 한반도도 요동치는 경우가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과 석유파동, 그리고 1979년의 이란 혁명과 제2차 석유파동은 한국의 경제와 정치를 뒤흔들었다. 朴正熙 정권을 종식시킨 10.26 사건은, 이란 사태로 인한 석유파동과 物價高가 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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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의 강연중 발췌(2009년 NED)
 
  "북한의 탄도 미사일의 시작은 1965년에 김일성이 함흥군사학원에 개원연설을 한 것에 있습니다. 함흥군사학원은 특수 무기를 제작하는 엔지니어를 길러내는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입니다. 김일성은 개원 연설에서 "조선반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의 제국주의와 일제가 다시 개입할 것이다. 이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장을 겨눌 수 있는 로켓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한국 전쟁 경험에서 적화통일에 실패했던 가장 큰 원인을 부산 교두보(아시아 태평양상의 미군기지)를 빼앗긴 것으로 봅니다. 당시 미군기지에서 신속하게 병참이나 후원부대가 들어옴으로서 북한은 부산 교두보를 빼앗겼고 이것으로 적화 통일이 실패 했다고 봅니다. 군사 전략의 ABC입니다만, 후방기지를 공격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로켓 부대를 가지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특히 거기에 핵과 연계된 핵미사일 부대를 갖는 것이 김일성의 원대한 야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이 탄도 미사일 기술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70년대 초반, 소련으로부터 직수입한 프로그미사일(FROG-7: 자유낙하하며 포물선을 그림) 도입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개발하며 자체생산을 할 수 있었던 기회는 중동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중동전쟁 당시에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공군과의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었는데, 이때 북한 조종사들이 참전해서 이스라엘 공군과 싸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부터 이집트와 북한과는 혈맹의 관계가 되었고, 그러한 감사의 대가였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수개의 스커드 미사일을 이집트가 북한에게 제공하게 됩니다.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을 분해하여 역 엔지리어링을 통해 재설계를 하여 80년대 초반 복제품의 스커드 미사일을 개발해 냅니다. 스커드 미사일은 50년대 말 소련이 개발해낸 사정거리가 약 300km~350km 되는 미사일입니다.
 
  이것이 초기형 미사일이기 때문에 탄두 직경이 큽니다. 그 의미는 쉽게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미사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미사일(스커드)을 가지고 복제 미사일을 만들었는데, 북한에게 중요한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이란-이라크 전쟁 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라크가 이란에 대해서 무차별 탄도 미사일 공격을 가하게 됩니다. 이란은 이러한 이라크의 공격에 무방비한 상태였는데, 자신도 똑같은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결국 북한을 수입처로 삼게 됩니다. 북한이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수백 개의 스커드 미사일을 이란에 수출하게 되고, 그 수출의 결과 많은 돈을 축적하게 됨으로써 또 한 번 북한은 미사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즉 중동과의 연계관계가 그때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북한의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스커드 미사일을 개량해서 화성5호, 6호라고 하는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550km 까지 연장시킵니다. 그 의미는 북한에서 제주도까지 공격 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한 것이고, 80년대 말부터 이 미사일들을 실전에 배치해서 현재 800기에 달하는 스커드 계열의 미사일이 한반도 전역을 공격할 수 있게 배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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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는 이란과 다르다!
 
 
  한국식이나 터키식으로 민주화해갈 듯.
 趙甲濟
 
  이집트 사태가 무바라크 퇴진으로 이어지면 이 나라가 제2의 이란으로 변하여 反美-테러路線이 중동을 장악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두 나라는 인구가 많고 찬란한 古代 문화와 전통을 共有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
 
  1. 이집트의 군대가 親美的이고, 이슬람원리주의의 영향이 약하며,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다. 터키의 군대를 닮았다. 팔레비 왕 시절의 이란 군부는 독재의 도구라고 국민들의 경멸을 받았고 호메이니 세력에 의하여 간단하게 無力化되었다. 어제 이집트 軍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표현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된 것이므로 정당한 요구에 대한 발포는 없을 것이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며칠 전 부통령으로 임명된 슐레이만의 친구인 예비역 장성 마흐무드 쇼크리는 "이집트 군대는 무바라크를 포함한 어느 누구의 꼭두각시도 아니다"고 했다. 이는 이집트 군대의 성격을 잘 표현한 말이다.
 
  2. 이집트 사회가 개방적이고 다양하다. 이슬람이 90%이지만 기독교도 10%나 된다. 언론의 자유가 부분적으로 허용된 나라이다.
 
  3. 과격 이슬람 세력으로 알려진 무슬림 형제단이 이집트에서 생긴 단체이나 영향력은 약하다. 이번 시위에도 수동적으로 참여하였다. 무슬림 형제단도 시위 초기엔 과격한 이미지를 걱정하여 前面에 나서지 않으려고 조심하였다.
 
  4. 시위의 성격이 종교적이지 않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식이다. 경제난, 취직난, 권력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가 먼저이고,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두 번째이며, 이슬람 원리주의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5. 이집트의 향후 진로는 한국식(全斗煥-盧泰愚式)이거나 터키식이 아닐까 예상한다. 1987년 6월 대시위에 직면한 全斗煥 정권이 6.29 선언을 통하여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 상황의 주도권을 잡고 민주적 방법으로 盧泰愚 정권을 만들어낸 예가 있다. 터키의 名將 아타 투르크(케말 파샤)는 이슬람과 정치를 분리하는 근대화 개혁을 하고 이 개혁 노선의 유지를 군대에 맡겼다. 그 후 터키 군부는 사회혼란기나 이슬람원리주의 득세기에 개입, 상황을 정리한 적이 있다. 터키 사회와 이슬람 정당도 세속화되어 극단적 원리주의 세력이 정권을 專橫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6.한국, 터키, 이집트의 공통점은 '신뢰 받는 군대'가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軍의 신성한 의무로 外敵에 대한 국방뿐 아니라 內敵에 대한 국가안보를 명시하였다. 군대는 북한군의 침략을 막을 의무뿐 아니라 從北세력의 준동을 제거할 의무를 갖고 있다. 빨갱이들이 집요하게 反軍선동을 하는 것도 국가의 초석이요 간성인 軍의 신뢰도를 약화시켜 赤化공작의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음모이다. 
  
 http://www.chogabje.com/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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