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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천 장군 57주기 추모식

3·1 운동 계기로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 교관, 한국독립군 총사령 등 항일무장투쟁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4-04-14 오후 2: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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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 57주기 추모식'이 14일 오전 서울 국립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에서 (사)한국광복군동지회 주관으로 거행됐다.

 지청천 장군은 1988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교동소학교(校洞小學敎)를 졸업하고 배재학당을 거쳐 1908년 한국무관학교에 입학했다.

 1908년 2월 정부 유학생으로 도쿄 육군중앙유년학교[東京陸軍中央幼年學校]에 입학, 1913년 소위로 임관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을 계기로 일본군을 탈출, 4월 하순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갔다. 이곳에서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전력했다.

 ▲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장군 57주기 추모식'이 14일 오전 서울 국립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에서 (사)한국광복군동지회 주관으로 거행됐다.ⓒkonas.net

 1921년에는 러시아령 자유시(自由市) 달네레첸스크 일대로 이동해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러시아 혁명정부 당국의 핍박으로 만주로 되돌아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0년 7월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창당에 참가해 그 산하 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의 재정비와 역량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1940년 9월 광복군(光復軍)이 조직되자 총사령관이 되어 1945년 귀국할 때까지 항일투쟁을 계속했다.

 귀국 후인 1947년 청년단체를 통합해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여 당장에 취임하고, 1948년 8·15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무임소관장 겸 국무위원으로 국정에 몸담았고, 제헌 국회의원과 제2대 민의원에 피선되었다.

 1957년 6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정부는 사회장으로 모시고 유해를 수유리에 안장하였다가 1994년 국립현충원으로 옮겼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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