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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英雄, 匹夫>은 가도 이름은 남는데!

이 고지 저 능선 휘달리며 조국 전선을 지켰던 백전노장도 가는 세월 붙잡을 수 없어... 책임 있는 사람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 다해야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5-12-31 오전 10: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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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 여러분, 이제 우리들은 밖에 다닐 때는 말할 나위 없고, 집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할 때도 조심스럽게 뭘 붙잡고 일어서든가 해야 해요. 세월은 어쩔 수 없잖아요. 통일이 우리시대에 이뤄질지 어떨지 모르지만 마지막 남은 여력 ‘통일’ 위해 작더라도 일익을 담당했으면 합니다.”

 ‘항우장사도 가는 세월은 붙잡을 수 없다’는 말처럼 한 시절 이 땅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총포탄이 우박 쏟아지듯 퍼부어 대던 이 고지 저 능선 이 골짝 저 계곡 전 산야 전장(戰場)을 주름잡으며 수없이 사선(死線)을 넘나들었던 용사들이었지만 가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육신은 쇠약해 양 무릎에 힘은 빠져도 형형한 눈빛과 정신만은 60여 년 전 홍안(紅顔)의 나이로 전선을 지배하며 선두에서서 ‘나를 따르라’ 부하들을 독려해 ‘돌격 앞으로’ 명령을 발하며 공격하던 기상은 변함없었다.

 6·25 참전 영웅, 그분들이 계셨기에 자유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있었고, 그분들의 처절한 사투(死鬪)와 피와 땀이 이 땅을 적셨기에 오늘의 흥함이 실존하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우리는 또 얘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40여 신생독립국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신화를 창조하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 은혜를 갚는 나라, 세계평화를 위해 이바지 하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그 중심에 바로 6·25참전 국가유공자분들이 계신다. 그런데도 우리사회는 아직도 채 이 분들의 지난한 업적을 애써 모르는 척 간과(看過)하고 있다. 2015년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세모(歲暮)인 12월28일 서울 용산 육군회관에서는 한 노병(老兵)들의 작은 모임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12명.

 ▲ 12월28일 육군회관에서 열린 2015년 '50동우회' 정기총회. 왼쪽으로부터 다섯번째가 서갑성(예, 육군대령), 네번째가 전쟁문학회장을 역임한 최갑석(예비역 육군 소장)장군. ⓒkonas.net

 1950년 6월 북한 김일성 집단은 소련군의 사주와 중공군의 전폭지원 아래 불법 기습남침을 단행해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일로 남으로 진격, 낙동강 전선이 소용돌이에 빠지며 대한민국을 초토화 절체절명의 위기에 이르게 했다. ‘바람 앞에 등불’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전선으로 급파됐다. 최 일선에서 부하를 지휘할 초급장교인 중·소위는 ‘소모 장교’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태부족이었다.

 그리고 그해 7월부터 12월 사이 전후방 전투현장에서 용맹성과 지휘력을 인정받은 청년 부사관 급 현역들이 사단장 이상 지휘관 추천을 받아 현지에서 장교로 임관해 전투에 돌입했다. 바로 ‘50동우회’ 장교들이다. 당시 현지 임관한 ‘50동우회’ 장교는 모두 합해 2625명. 현재 생존 전우는 약 40여명이다.

 6·25전쟁 중 416명 전사와 123명 실종 등 전체 임관자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817명이 전투손실을 입었으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40여 명에 불과한 전우 회원들만 남았지만 이 날도 노병의 기상은 일당백을 치고도 남아 보였다. 아직도 마음으로는, 눈에서는 고지를 탈환하던 당시의 기백이 용솟음쳐 보인다.

 지난 12월9일 기자가 강원도 평창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숨져간 故 이승복 47주기 추모제(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 주관)에 동행취재를 할 때에도 현장에 참석한 ‘50동우회’ 서갑성 회장의 “우리들이 통일염원을 안고 6·25전쟁에 임했듯이 살아있는 동안 통일이 되면 좋겠습니다”는 열망처럼 이 날 회원들의 남은 소원도 자신들이 목숨 바쳐 이 땅을 지켜온 것처럼 통일에 대한 염원과 하나의 작은 밀알 역할이었다.

 우리는 사회 지도층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말하곤 한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의 시대적 구분을 가림 없이 사회적 신분에 걸 맞는 행동과 처신을 요구하는 사회적 함의이자 불문율이기도 하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은 살아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른 후세의 평가 선택지 일수도 되겠지만 그에 앞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도덕적 가치 기준을 표방하는 의미도 될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 왕자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해 언론을 장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6·25전쟁 시에는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한 ‘한국 육군의 아버지’로 존경 받는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후손도 있지만 6·25한국전쟁에 조종사로 참전한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실권자 마오쩌둥은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이토록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고 책무를 수행한 지도층은 의무에도 충실했으며, 자신은 물론 그 자식과 관련해서도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자기직분에 부합하지 못한 사회 지도층들이 있어 국민의 원성을 사곤 한다. 국가전복혐의를 받고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채 철창에 갇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나 여의도를 난장판으로 만든 동일 부류의 일부 정치인들, 국가 기관의 수장을 역임하며 재임 중 체득한 국가기밀을 공공연히 발설한 고위 공직자나 상상을 초월한 거액의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탈루(脫漏)한 일부 기업인, 직무와 연관해 청탁성 뇌물을 받은 군 장성 등 누구보다 사회적 책임의식과 청렴성, 도덕성을 겸비해야 할 인사들이 이름값은커녕 일범부(凡夫)보다 못한 일탈로 사회적 이반행위를 일삼음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날 국가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직면하자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채 살신성인하며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온 ‘50동우회’ 참전노병들이 인생의 하향 곡선 와중에도 안보를 염려하고 혼탁한 사회분위기를 바로 잡고자 마음을 모으며 분단극복과 통일을 위해 주머니를 털어 통일성금을 기탁하는 모습에서 이 시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주역이 따로 있지 않고 바로 이분들이 않나 생각게 된다.

가장 험난한 우리 현대사와 함께해온 90줄 연세 열두분 '50동우회' 참전 국가유공자들. 그 분들의 정기총회 모습과 마음이 일치된 행동을 대하면서 우리시대 진정한 영웅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믿음과 한 인물의 빛나는 이름은 그가 어떤 신분을 유지해 출세가도를 달려왔느냐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신분에 맞는 역할과 소임을 어떻게 해왔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자세가 돼 있는가의 유무에 있다는 것, 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가고 난 다음 훗날 어떻게 이름이 남느냐와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 아닐까?(konas)

이현오(코나스 편집장. 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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