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본 열린우리당의 북한인권법 저지 시도
북한인권법에 대한 무지 드러나
한국의 여당 국회의원 일부가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북한인권법안에 대한 항의와 저지를 표명하는 서명을 모은다고 한다.
그들은 북한인권법안을 주권 국가인 북한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 같다.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는 내정 간섭 배제라는 가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반박이 비판의 주를 이루는 것 같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논쟁과 정쟁을 보면서 북한인권법안 심의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입법 홍보 활동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 몇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

첫째는 북한인권법안 자체에 대한 무지를 들 수 있다.
북한인권법안에 적극적인 찬성과 반대를 표하는 인사들 중에서 법안 자체를 자세히 살펴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북한인권법안의 어떤 조항과 어떤 자귀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예측하고 평가하는 정치인이나 평론가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이나 지지하는 측이나 그들이 보기에 어떤 항목이 독소조항이며 한반도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조항은 어느 부분인지 연구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둘째로는 북한인권법안을 대하는 미국 정가의 분위기에 대한 무지이다.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 의회에서 대북 강경노선을 유지해 온 네오콘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호전적 시도라고 뭉뚱그려 시비하는 듯한 태도로 보인다. 한국의 동서 갈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미국 정가에서 상당한 예산이 포함되고 국내정치와 국제관계에까지 민감하게 연관된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미국의 한 정파의 강경노선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세째로는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되고 하원에서 통과되기까지의 토론 과정과 입법절차에 대한 무지이다.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되고 지지와 반대 세력이 형성되고 그 사이에서 지리하고 복잡한 줄다리기를 거쳐서 수정되고 조정되는 입법 절차는 전형적인 미국 의회주의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었다.
필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NGO 연합체인 인터액션에서 활동하면서 북한인권법안 입법과정에 다양한 방법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북한인권법안과 같이 조금이라도 시민단체들이 관여되는 법안이라면 미국 의회에서는 시민단체의 의사를 반드시 확인하게 된다.
이럴 경우 미국 행정부나 의회에서 가장 먼저 의견을 구하는 곳이 바로 인터액션이라는 연합체다.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160여개의 국제 구호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만드는 기관이 인터액션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KASM (Korean-American Sharing Movement)은 인터액션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는 유일한 한인단체이며 필자 자신이 인터액션의 이사로 활동하기 때문에 북한이나 한국에 관련되는 사안이 생기면 실무자 모임이나 對의회 로비활동에 앞장서게 된다.
처음 북한인권법안을 북한자유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상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때도 발의하는 측에서 인터액션을 통해서 NGO의 의견을 물어왔었다. 한달에 한번씩 인터액션에서 개최하는 북한 관련 실무자 회의는 북한자유법안을 주 의제로 삼아 수시로 모임을 갖고 수없이 많은 이메일과 전화 통화를 통해서 일치된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인터액션 회원들 중에서 인권에 무게를 두는 단체들은 전반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반면, 국제구호 단체들 쪽에서는 상당한 반대를 표명했다. 현장에서 탈북자들을 돕거나 북한 내부에 들어가 구호 지원 활동을 하던 단체들은 북한자유법안이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현실적으로 더 큰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국제적인 인권 단체들은 구 소련권을 대상으로 비슷한 유형의 법안을 만들었을 때 궁극적으로 더 큰 이익을 안겨 주게 되었다는 점을 들어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인터액션에서는 법안에 대한 포괄적인 지지나 반대를 정하는 대신에 문제가 있다고 의견이 모아진 조항들에 대해서 개별적인 로비를 하기로 결정하고 전담 로비스트를 지명하여 본격적인 로비에 들어갔다.
인터액션 회원들 중 북한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북한자유법안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핵심적인 쟁점 중의 하나는 북한자유법안이 노골적으로 북한 체제의 붕괴를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인터액션에서 제시한 대안은 법안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이 의도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과 탈북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위한다는 의도가 실린 법안이라면 이름부터 바꾸라는 설득을 시작했다. 나중에 북한인권법안으로 이름이 바뀌어 상정되고 통과 된 것은 북한주민들을 위한 인도적인 배려와 북한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압력의 문제를 예민하게 조정한 결과였던 것이다.
초안이 알려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 허용이었다. 이 문제는 9/11 이후 미국의 정치 상황에서 인도적인 관점 뿐 아니라 미국의 국가안보에까지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엄청난 분량의 토의와 줄다리기가 미국 의회 주변에서 진행되었다. 결국 국제관계위원회보다는 법사위에서 다루도록 일부 조항을 떼어내는 쪽으로 로비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이 얽힌 가운데 북한 정권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나, 당장 고통 받는 인민을 살려야 한다는 열정이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북한 정권을 무너뜨려야 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목소리들이 다 반영된 후에 조정과정을 거쳐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이 바로 북한 인권법안인 것이다.
한국에서 입법활동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이나 정책 조언에 사력을 다하는 시민단체들이라면 통과된 후에 뒷북치듯 목소리를 높이는 이벤트성의 정치행위보다는 법안 자체와 입법과정에 대한 보다 사려 깊은 연구와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은 미국내 한인사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졌으면 한다.
북한인권법안은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무척이나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 정세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내용이 결의안 정도가 아니라 실제 예산 배정과 실무 규정까지 포함된 법안으로 상정되리라는 사실 자체가 한인사회에서는 무척 큰 사건이었다. 북한인권법안을 추진했던 미국의 조야 단체들로 구성된 법안 지지그룹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 한인사회의 지원을 확보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한인사회에서 지지세력을 조직하고 서명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처음 한인사회는 전반적으로 이 법안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점차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던 지지열기가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법안의 내용을 살펴본 목회자들과 시민단체장들을 필두로 한인사회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 한인사회도 이제 균형 잡힌 민주적인 사회로 성숙하여 미국 주류 정치에 진지하고 무게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제 1.5세와 2세들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 미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아무리 말단 실무자라고 해도 첫 번째 아이디어를 낸 사람과 초안을 작성하는 사람이 끝까지 중심인물이 되는 미국 사회에서 이 법안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은 한인 2세였다. 미국의 정가에서 상당한 무게가 실린 법안을 두고 찬성과 반대 측의 로비스트들이 한 젊은 한인 2세 정치보좌관에게 접촉해 보려고 이리 저리 줄을 대고 애를 쓰는 장면은 미국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북한인권법안과 관련되어 발제 의원들의 보좌관들이 자주 모여 간담회와 연구 모임을 갖고는 했다. 그 모임 중의 하나를 참석해보고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북한인권법안을 다루고 있던 상하원 의원들의 담당 보좌관들 중의 상당수가 한인계였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에 대규모로 이민 왔던 유대인 사회가 반세기가 되지 않아 경제, 문화, 정치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몇 세대씩 앞서 자리 잡은 아일랜드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이민 사회와 견줄만한 지위를 확보한 것처럼 70년대 초에 급속히 늘어난 한인사회도 이제부터 미국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제 몫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워싱턴에서 인류애와 민족애를 잃어버리지 않고 열정에 사로잡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뛰는 Korean American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실무자 한 사람의 노력으로 한민족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 워싱턴에서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의 정책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은 미국 한인사회의 역량을 새롭게 발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세규 (美 버지니아 '한빛지구촌교회' 담임목사)
연우포럼 제공 (www.younwooforum.com)
그들은 북한인권법안을 주권 국가인 북한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 같다.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는 내정 간섭 배제라는 가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반박이 비판의 주를 이루는 것 같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논쟁과 정쟁을 보면서 북한인권법안 심의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입법 홍보 활동에 참여한 한 사람으로 몇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

첫째는 북한인권법안 자체에 대한 무지를 들 수 있다.
북한인권법안에 적극적인 찬성과 반대를 표하는 인사들 중에서 법안 자체를 자세히 살펴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북한인권법안의 어떤 조항과 어떤 자귀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예측하고 평가하는 정치인이나 평론가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이나 지지하는 측이나 그들이 보기에 어떤 항목이 독소조항이며 한반도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조항은 어느 부분인지 연구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둘째로는 북한인권법안을 대하는 미국 정가의 분위기에 대한 무지이다.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 의회에서 대북 강경노선을 유지해 온 네오콘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호전적 시도라고 뭉뚱그려 시비하는 듯한 태도로 보인다. 한국의 동서 갈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첨예하게 대립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미국 정가에서 상당한 예산이 포함되고 국내정치와 국제관계에까지 민감하게 연관된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미국의 한 정파의 강경노선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세째로는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되고 하원에서 통과되기까지의 토론 과정과 입법절차에 대한 무지이다.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되고 지지와 반대 세력이 형성되고 그 사이에서 지리하고 복잡한 줄다리기를 거쳐서 수정되고 조정되는 입법 절차는 전형적인 미국 의회주의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었다.
필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NGO 연합체인 인터액션에서 활동하면서 북한인권법안 입법과정에 다양한 방법으로 관여하게 되었다. 북한인권법안과 같이 조금이라도 시민단체들이 관여되는 법안이라면 미국 의회에서는 시민단체의 의사를 반드시 확인하게 된다.
이럴 경우 미국 행정부나 의회에서 가장 먼저 의견을 구하는 곳이 바로 인터액션이라는 연합체다.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160여개의 국제 구호단체들과 인권단체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만드는 기관이 인터액션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KASM (Korean-American Sharing Movement)은 인터액션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는 유일한 한인단체이며 필자 자신이 인터액션의 이사로 활동하기 때문에 북한이나 한국에 관련되는 사안이 생기면 실무자 모임이나 對의회 로비활동에 앞장서게 된다.
처음 북한인권법안을 북한자유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상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때도 발의하는 측에서 인터액션을 통해서 NGO의 의견을 물어왔었다. 한달에 한번씩 인터액션에서 개최하는 북한 관련 실무자 회의는 북한자유법안을 주 의제로 삼아 수시로 모임을 갖고 수없이 많은 이메일과 전화 통화를 통해서 일치된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인터액션 회원들 중에서 인권에 무게를 두는 단체들은 전반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반면, 국제구호 단체들 쪽에서는 상당한 반대를 표명했다. 현장에서 탈북자들을 돕거나 북한 내부에 들어가 구호 지원 활동을 하던 단체들은 북한자유법안이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현실적으로 더 큰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국제적인 인권 단체들은 구 소련권을 대상으로 비슷한 유형의 법안을 만들었을 때 궁극적으로 더 큰 이익을 안겨 주게 되었다는 점을 들어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인터액션에서는 법안에 대한 포괄적인 지지나 반대를 정하는 대신에 문제가 있다고 의견이 모아진 조항들에 대해서 개별적인 로비를 하기로 결정하고 전담 로비스트를 지명하여 본격적인 로비에 들어갔다.
인터액션 회원들 중 북한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들이 북한자유법안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핵심적인 쟁점 중의 하나는 북한자유법안이 노골적으로 북한 체제의 붕괴를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인터액션에서 제시한 대안은 법안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정치적인 공격이 의도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과 탈북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위한다는 의도가 실린 법안이라면 이름부터 바꾸라는 설득을 시작했다. 나중에 북한인권법안으로 이름이 바뀌어 상정되고 통과 된 것은 북한주민들을 위한 인도적인 배려와 북한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압력의 문제를 예민하게 조정한 결과였던 것이다.
초안이 알려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이 탈북자들의 미국 망명 허용이었다. 이 문제는 9/11 이후 미국의 정치 상황에서 인도적인 관점 뿐 아니라 미국의 국가안보에까지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엄청난 분량의 토의와 줄다리기가 미국 의회 주변에서 진행되었다. 결국 국제관계위원회보다는 법사위에서 다루도록 일부 조항을 떼어내는 쪽으로 로비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이 얽힌 가운데 북한 정권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나, 당장 고통 받는 인민을 살려야 한다는 열정이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북한 정권을 무너뜨려야 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목소리들이 다 반영된 후에 조정과정을 거쳐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이 바로 북한 인권법안인 것이다.
한국에서 입법활동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이나 정책 조언에 사력을 다하는 시민단체들이라면 통과된 후에 뒷북치듯 목소리를 높이는 이벤트성의 정치행위보다는 법안 자체와 입법과정에 대한 보다 사려 깊은 연구와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은 미국내 한인사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졌으면 한다.
북한인권법안은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무척이나 중차대한 사안이었다.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 정세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내용이 결의안 정도가 아니라 실제 예산 배정과 실무 규정까지 포함된 법안으로 상정되리라는 사실 자체가 한인사회에서는 무척 큰 사건이었다. 북한인권법안을 추진했던 미국의 조야 단체들로 구성된 법안 지지그룹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 한인사회의 지원을 확보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한인사회에서 지지세력을 조직하고 서명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처음 한인사회는 전반적으로 이 법안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점차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던 지지열기가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법안의 내용을 살펴본 목회자들과 시민단체장들을 필두로 한인사회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 한인사회도 이제 균형 잡힌 민주적인 사회로 성숙하여 미국 주류 정치에 진지하고 무게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제 1.5세와 2세들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 미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아무리 말단 실무자라고 해도 첫 번째 아이디어를 낸 사람과 초안을 작성하는 사람이 끝까지 중심인물이 되는 미국 사회에서 이 법안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은 한인 2세였다. 미국의 정가에서 상당한 무게가 실린 법안을 두고 찬성과 반대 측의 로비스트들이 한 젊은 한인 2세 정치보좌관에게 접촉해 보려고 이리 저리 줄을 대고 애를 쓰는 장면은 미국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북한인권법안과 관련되어 발제 의원들의 보좌관들이 자주 모여 간담회와 연구 모임을 갖고는 했다. 그 모임 중의 하나를 참석해보고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북한인권법안을 다루고 있던 상하원 의원들의 담당 보좌관들 중의 상당수가 한인계였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에 대규모로 이민 왔던 유대인 사회가 반세기가 되지 않아 경제, 문화, 정치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몇 세대씩 앞서 자리 잡은 아일랜드계, 독일계, 이탈리아계 이민 사회와 견줄만한 지위를 확보한 것처럼 70년대 초에 급속히 늘어난 한인사회도 이제부터 미국 사회의 요소요소에서 제 몫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워싱턴에서 인류애와 민족애를 잃어버리지 않고 열정에 사로잡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뛰는 Korean American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실무자 한 사람의 노력으로 한민족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 워싱턴에서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의 정책입안자들과 정치인들은 미국 한인사회의 역량을 새롭게 발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장세규 (美 버지니아 '한빛지구촌교회' 담임목사)
연우포럼 제공 (www.younwoofor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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