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이 곧 '명분'이다
현재 이라크 파병과 관련한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명분'을 들먹이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주로 '국익'을 내세운다. 이번 이라크 파병이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국제 정치에 있어서는 명분이 곧 국익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목적은, 자유 이라크 작전이란 작전명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지만, 사담 후세인의 군사 독재 정권을 제거하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는 것이다. 현대 자유 사회의 기본 원칙은 모든 사람의 인격이 동등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남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독재 정권의 정통성은 인정할 수 없다. 독재 정권은 독재자의 개인적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 주권이라는 보호막을 악용하여 다수의 권리를 짓밟는 악의 정권이다. 따라서 독재자를 제거하고 다수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은 자유 사회 시민의 의무다.
독재자는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 긴장을 잘 이용한다. 외부의위협을 가장하여 내부적 독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재자는 국제 평화를 해치는 암적 존재다. 국제 평화를 위해서도 독재자는 제거되어 마땅하다.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여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부차적인 명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량 살상 무기와 관련해서는 후세인도 책임이 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기 사찰을 거부하였고 지난 십 여 년을 무기 사찰단과 불필요한 게임을 하여 의혹을 부풀렸다.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의 무모한 대결 정책이 자초한 측면도 강하다.
더구나 이번 이라크 추가 파병은 전쟁을 치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 국민이 진정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 이라크 국민을 도와주는 것으로서 이라크 국민도 후에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국가가 추구하는 것은 국익이다. 국가간 거래에 있어 각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익의 증진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익과 명분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국가간 거래에 있어서 각 국가는 냉혹하리만큼 냉정하게 국익을 계산해서 행동한다. 우리나라가 냉정하게 계산해서 국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것이 전혀 나쁠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안보는 한미 동맹에 전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군사적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안보 등 우리나라의 총체적 안보가 미국과의 건전한 동맹관계를 축으로 해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돈독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절대로 필요하다. 단순히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국익의 전부가 아니다. 그보다도 더 큰 국익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는 것이다.
육군 정훈감을 지낸 한 군사평론가의 "빛바랜 맹방" 주장(10월 6일자 『한국일보』 시론)은 동맹의 의미도 국익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견일 뿐이다. 그는 5.18민주화 운동 당시 미국이 독재정권의 탄생을 묵인하였기 때문에 미국과의 맹방의 명분은 이미 오래 전에 빛 이 바랬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어떻든 한국의 정부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의 역할을 미국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일로 인해 한미동맹관계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 편견일 뿐이다.
그는 또한 국익을 마치 "가난하여 끼니도 때우지 못하던 시절에나 통하던 '경제적 혜택'"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으나 국익은 그 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야 말로 "당장의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진정한 국익"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피터 드러커를 인용하여 "경영의 본질은 고객의 가치창출"에 있다고 비유하여 이라크 파병이 마치 세계의 비난을 받게 되어 있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존재이유는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 경영에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국익의 계산에는 세계의 여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강대국 미국에 반대하여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자존심과 도덕적 용기가 더 큰 국익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으나, 이 또한 국익의 의미조차 모르는 무모한 만용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마치 개구리가 황소를 놀래게 하려고 배를 부풀리다가 배가 터져 죽는 것을 용기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라크 파병은 단순히 기분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국익에 대한 철저한 계산에 따라 주권 국가로서 우리가 결정할 문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목적은, 자유 이라크 작전이란 작전명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지만, 사담 후세인의 군사 독재 정권을 제거하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는 것이다. 현대 자유 사회의 기본 원칙은 모든 사람의 인격이 동등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남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독재 정권의 정통성은 인정할 수 없다. 독재 정권은 독재자의 개인적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 주권이라는 보호막을 악용하여 다수의 권리를 짓밟는 악의 정권이다. 따라서 독재자를 제거하고 다수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은 자유 사회 시민의 의무다.
독재자는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 긴장을 잘 이용한다. 외부의위협을 가장하여 내부적 독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재자는 국제 평화를 해치는 암적 존재다. 국제 평화를 위해서도 독재자는 제거되어 마땅하다.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여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부차적인 명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량 살상 무기와 관련해서는 후세인도 책임이 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기 사찰을 거부하였고 지난 십 여 년을 무기 사찰단과 불필요한 게임을 하여 의혹을 부풀렸다.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의 무모한 대결 정책이 자초한 측면도 강하다.
더구나 이번 이라크 추가 파병은 전쟁을 치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 국민이 진정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 이라크 국민을 도와주는 것으로서 이라크 국민도 후에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국가가 추구하는 것은 국익이다. 국가간 거래에 있어 각 국가의 궁극적 목표는 국익의 증진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익과 명분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국가간 거래에 있어서 각 국가는 냉혹하리만큼 냉정하게 국익을 계산해서 행동한다. 우리나라가 냉정하게 계산해서 국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것이 전혀 나쁠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안보는 한미 동맹에 전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군사적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안보 등 우리나라의 총체적 안보가 미국과의 건전한 동맹관계를 축으로 해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돈독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절대로 필요하다. 단순히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국익의 전부가 아니다. 그보다도 더 큰 국익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는 것이다.
육군 정훈감을 지낸 한 군사평론가의 "빛바랜 맹방" 주장(10월 6일자 『한국일보』 시론)은 동맹의 의미도 국익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편견일 뿐이다. 그는 5.18민주화 운동 당시 미국이 독재정권의 탄생을 묵인하였기 때문에 미국과의 맹방의 명분은 이미 오래 전에 빛 이 바랬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어떻든 한국의 정부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의 역할을 미국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 일로 인해 한미동맹관계가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 편견일 뿐이다.
그는 또한 국익을 마치 "가난하여 끼니도 때우지 못하던 시절에나 통하던 '경제적 혜택'"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으나 국익은 그 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야 말로 "당장의 눈앞의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진정한 국익"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피터 드러커를 인용하여 "경영의 본질은 고객의 가치창출"에 있다고 비유하여 이라크 파병이 마치 세계의 비난을 받게 되어 있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존재이유는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 경영에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국익의 계산에는 세계의 여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강대국 미국에 반대하여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자존심과 도덕적 용기가 더 큰 국익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으나, 이 또한 국익의 의미조차 모르는 무모한 만용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마치 개구리가 황소를 놀래게 하려고 배를 부풀리다가 배가 터져 죽는 것을 용기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이라크 파병은 단순히 기분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국익에 대한 철저한 계산에 따라 주권 국가로서 우리가 결정할 문제다.









![[안보칼럼] 11월 11일 11시, 우리는 왜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가?](/img_data/article/261104/261104_6315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