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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아픔을 딛고 치유의 계절로...

"진정성 있는 정상회담 후속조치 이어지길"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8-06-25 오후 2: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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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이 끝난지 68주년을 앞두고 열린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참전용사들과 이산가족, 북한의 도발로 희생당한 이의 유족들이 느끼는 감회는 누구보다 특별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4월 북한의 지도자가 최초로 휴전선을 넘어 한국 땅을 밟았다. 남북의 두 정상은 올해 안으로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약속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쟁 종식이다.

 이어진 미북정상회담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것을 합의했다. 핵을 앞세워 협박하며 반목하던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북한의 핵을 제거함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향해 나아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날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지난해만 해도 공개적으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 부르며 조롱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정상회담 이후 “최고 지도자”로 칭했고, 북한 언론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칭을 ‘늙다리 미치광이’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수정해 사용했다.

 또 지난 14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개최된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에서는 군사적 충돌의 원인이 되어왔던 일체의 적대행위 중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조성, 남북 교류협력과 왕래 및 접촉에 대한 군사적 보장 대책 수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8일에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체육회담을 진행해 내달 4일 평양에서 남북통일농구경기를 개최하기로 하고 가을에는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8월 18일 개막하는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폐회식에 공동으로 입장하고 카누 용선(TBR)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장시간이 소요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정착되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예상되긴 하나, 봇물터지듯 이어지고 있는 최근 남북 간의 진척상황을 보면 여기까지 오는데 그렇게도 오랜 준비시간이 필요했던가 하는 지난 65년 간의 대립과 적대감이 참 허탈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는 6·25참전용사 중에 몸이 아무리 아파도 죽은 드시지 않는 분이 있다. 그 분은 1930년 일제 감정기에 출생해 열 다섯 되던 해에 동네 이장의 꾐에 속아 일본 공군에 지원했다. 2차대전 막바지에 전황이 불리해진 일본이 가미가제 자살특공대로 조선의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에 내몰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방송이나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으니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미가제 특공대가 뭔지도 몰랐지만 조국과 가문을 위한 영예로운 일이란 이장의 말을 곧이 믿었다고 한다. 그러다 해방이 되면서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일본의 명운이 더 길었더라면 아마 그 분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6·25전쟁이 터졌다. 당시 학생 신분이라 학도병으로 국군에 자원해 간단히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 백마고지 전투를 비롯한 숱한 전투에서 생사를 오갔고 전우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전쟁 중이라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다. 식사라곤 익지도 않은 푸른 호박에 소금만 넣어 끓인 멀건 호박죽이 전부였다. 그래서 호박죽, 아니 죽만 보면 그때의 배고픈 기억이 되살아 난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은 고열로 몇일 간 의식을 잃었는데 국군병원에서는 병명을 몰라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운좋게 미군 의무대로 이송돼 다시 목숨을 건졌다. 지금으로 치면 유행성 출혈열인데 당시 미군 측에서도 병명을 몰라 거의 임상실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휴전이 되었다. 하지만 북녘이 고향인 그 분에게 한국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생존을 위한 전투는 여전히 계속됐다. 한국의 힘든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으며 평생을 전투를 치르듯 산 인생이 어느덧 아흔을 바라보고 있다.

 전쟁은 어린시절 물장구치며 같이 놀던 친구와 부모 형제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전쟁이 끝나도 그 분의 잃어버린 세월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 그저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힘든 역사의 고비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불운한 인생’으로 여길 수 밖에는.

 이제 이 분에겐 그리운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갈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기억의 한 끝자락을 붙잡으려 애써도 어린시절 뛰놀던 고향땅조차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 버렸다. 과거 북한과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마다 북한은 절대 믿을 상대가 못된다며 우려했던 노병이 전쟁의 끝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떨까?

 전쟁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고통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참전용사들과 이산가족들의 가슴 속에 아로 새겨진 전쟁의 상흔과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돌릴 순 없지만, 북한의 도발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영혼과 그 유족들의 아픔을 무엇으로도 채울 순 없지만 그래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정은이 미북정상회담에서 말한 “그동안 눈과 귀를 가린 그릇된 관행과 편견”이 과감히 깨트려지는 조치들이, 바라건대 과거와 확연히 달라져 진정성 있게 이어져, 앞으로는 아까운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는, 날선 비방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는, 남남갈등과 남북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일이 없는, 인간이 만든 장벽과 제도로 인간이 고통받는 일이 없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멀지 않은 길을 돌고 돌아 뒤늦게나마 국제사회의 무대로 한 발 나선 북한 당국의 진정성을 간절히 염원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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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아빠(heng6114)   

    북한의 남침으로 동잔상잔의 비극된 6.25전쟁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2018-06-26 오전 9:05:29
    찬성0반대0
1
    2020.11.26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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