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대학생 향군 국토대장정] ⑦ 흐르는 강물 따라 두 눈 가득 조국을 품다
강원도 화천 읍내에서 파로호(破虜湖)로 더 잘 알려진 6·25 격전지 파로호 안보전시관으로 향하는 북한강 강변은 평화 그 자체였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태양은 깊어가는 6월의 뙤약볕 그대로 쨍쨍 내리쬐고, 누구라 할 이 없이 생수 한 병을 들어 벌컥 벌컥 들이켜 목을 축이는 대원들의 얼굴 위로는 땀방울이 방울져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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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김진호) 주관 [제11회 대학생휴전선·전적지답사 국토대장정](6.25 ~ 7.1) 4일째인 28일 오전, 북한강은 말 그대로 고요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서부전선 무적태풍부대 최전방 태풍전망대 일원으로부터 시작해 4일차인 이 날에 이르기까지 휴전선 전적지를 따라 도보답사를 계속하고 있는 대학생 81명을 포함한 김종국(재향군인회 교육부장) 답사단장 등 92명은 전 날 오후의 ‘말고개’ 오름처럼 흐르는 땀방울을 계속 닦아가며 북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중간 중간 취재수첩을 펼쳐 내용을 기록하는 기자의 수첩에도 굵은 땀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이미 기록한 메모 내용이 얼룩지고 번져 제대로 알아보기가 쉽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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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은 쨍쨍하기 그지없는데 거기에 합창을 하기라도 하는 양 강물마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강 건너 푸른 산세의 산 모양 그대로의 모습이 마치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흔들림 하나 보이지 않는 강물 위로 산세 그대로 비쳐져 산이 강에 있는지, 강물에 산이 녹아들었는지 잠시 보는 이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다.
오늘로서 서울을 떠난 지 4일. 전국 각지 지방에서 참가한 대원들로서는 가족과 떨어진지 하루가 더 늘어난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원들 눈망울에 그런 모습 보이지 않는다. 이 날 아침 향군의 대학생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전날 묵었던 15사단 신병교육대 장병들의 박수 환송을 받으며 하루 일정을 시작, 화천 읍내 초입에서 도보 행군에 들어갔다.
이 날 일정은 오전엔 파로호 전투 안보전시관 견학과 6·25전투 안보교육이다.
파로호(破虜湖) 전투는 1951년 유엔군의 제3차 반격작전 기간 중 5월 26일∼28일까지 아군 제6사단이 화천저수지 일대에서 전개한 공격 전투로 이 기간 중 중공군은 최소한 2만 5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은 대 전투이다. 이 전투 이후 화천저수지가 ‘파로호(破虜湖)’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대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화천저수지를 ‘파로호’라 이름 붙인 데에서 유래하였다.
대원들은 전시관을 돌아보고, 6·25 참전용사이기도 한 전시관장으로부터 “6·25는 북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의 사주에 의해 일으킨 전쟁”, “파로호는 중공군인 오랑캐를 대대적으로 물리친 뜻을 기려 이승만 대통령이 붙여준 이름”이라는 안보 교육을 듣고는 평화로이 흘러가는 강물과 자연경관이 한껏 어우러지는 이곳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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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견학을 마친 대원들은 이 지역 내 하계 유원지인 딴산 유원지로 이동해 전투식량으로 한참 동안 걸어오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와 함께 이 날 하이라이트는 지난 4일간의 피로를 확 풀어주게 하는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기도 했다.
처음 만났던 친구들과 걸으면서 ‘파이팅’을 외쳤고, 물집이 잡히고 발뒤축이 벗겨져 불편해 하는 친구를 안내해 의료진에게 동행하는 등 각 조별 및 전체 단위로 친밀도가 더해졌지만 이 날을 통해 확실히 ‘젊은이는 젊은이끼리 통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하나 돼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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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고 모처럼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이들은 인공폭포가 쏟아지는 근처 하천의 얕은 물놀이장으로 이동해, 처음엔 쑥스러워 하며 주저주저하더니 불과 얼마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동료 대원들을 물색해 몇 사람이 한데 얼려 번쩍 들고 들어가 물 가운데로 내동댕이치는 물 사례를 퍼붓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했다.
이 과정에서 주변을 웃기는 풍경들도 빚어졌다. 물에 빠트리고자 하는 친구들과 이를 벗어나 도망치고자 하는, 공격자와 방어자 사이의 신경전과 치고 빠지기 식 작전이 보는 이들을 아슬아슬하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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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답사단을 이끄는 단장도 제물(?)이 됐다. 이리 저리 피해 다니던 단장도 수명이 달려들어 에워싸고 껴안는 바람에 결국 져주는 듯 자진해서 무전기와 휴대전화기 등을 넘겨주고 물속에 던져지고, 이내 지원 스텝과 동시 물벼락을 맞기도 해 전체 대원들에게 한 보따리 웃음을 선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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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이어진 대원 상호 간 물세례는 피로감에 지친 대의원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더욱 단단하게 하는 청량제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행군은 계속 됐다. 이번은 화천에서 평화의 댐으로 연결되는 도로의 일부구간인 화천군 풍산리 방향이다. 그런데 문제는 출발로부터 2시간 30분여 시간이 지나자 이 지역 일대가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늘엔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간간이 우르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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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원들이 우의로 갈아입고 행군을 서두르자 이내 거센 빗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틀 전 내린 비처럼 빗발은 더욱 강도를 더해가고, 우르릉 쾅쾅 계속되는 낙뢰는 매섭게 귓전을 때렸다. 안전이 우선이었다. 모두에게 차량 탑승 지시가 하달됐다. 신나는 물놀이로 사기가 충천한 대원들은 계속 행군을 바랬으나 목표지점을 불과 3km 남겨둔 시점에서 차량이동으로 이 날 일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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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오전 답사단이 북한강 도로를 따라 힘찬 발걸음을 계속하자 마침 주변에서 잡풀 등을 깎아 내리고 있던 한 주민이 휴대폰으로 대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기자에게 “수고하십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어디까지 가십니까?”고 물어 이를 알려주자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네요. 잘 가십시오”하며 뜻밖의 격려를 전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질문은 풍산리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졌다. 대원들에게 관심을 갖는 표현이지 않을까, 행렬의 맨 뒤에서 이들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기자에게는 기분 좋은 물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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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기자에게 있어서도 이 날 행군은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했던 옛 고향을 찾는 날이기도 했다. 바로 우리가 걸으며 진행하는 도로 옆으로 28년 전 필자가 근무했던 부대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애써 “내가 이 부대에서 28년 전에 근무했다”며 자랑스럽게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옛 추억을 되살리며, 휴식중인 대원들에게도 자랑스럽게 옛 추억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 날의 일정도 추억의 한 장으로 힘차게 마무리했다.
이제 막바지로 달려가는 국토대장정도 5일차인 29일에는 ‘평화의 댐’을 경유해 오미리 마을 생태체험관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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