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위트컴 장군,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6·25전쟁 당시 부산지역 미 제2군수기지 사령관을 역임하고, 퇴역한 후에도 대한민국 재건에 헌신했던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고 리차드 위트컴(Richard Whitcomb) 장군에게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장이 추서된다.
국가보훈처는 8일 “올해 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을 계기로 고 리차드 위트컴 장군에 대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안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11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거행되는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트컴 장군의 유족(자녀)인 민태정 위트컴희망재단 이사장에게 전수할 예정이다.
올해는 한미수교 140주년이자 위트컴 장군 서거 40주기가 되는 해로, 장군이 안장되어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정부포상이 추서되어 더욱 의미가 크다.
고 리차드 위트컴 장군은 1953년부터 2년여간 부산지역 미 제2군수기지 사령관을 역임하며 한국을 도왔고, 전쟁 이후에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재건하는데 일생을 헌신했다.
특히 1953년 11월 미 제2군수기지 사령관 당시, 부산역전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상부의 승인 없이 군수창고를 개방, 2만 3천여 명분의 식량을 비롯해 의복 등 군수물자를 이재민들에게 긴급 지원했다.
이 일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위트컴 장군은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말해 의원들의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재민 주택건설 지원과 도로 건설, 의료시설 건립을 지원하고 부산대학교를 비롯한 초중고등학교 설립 지원 등을 통해 폐허가 된 대한민국과 부산을 재건하는데 힘을 썼다.
1954년 퇴역한 위트컴 장군은 한국에 남아 전쟁고아를 위해 함께 활동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해 전쟁고아 돕기와 미군 유해 발굴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이로 인해 그에게는 ‘전쟁고아의 아버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등의 수식어가 생겼다.
1982년 7월 12일 작고한 위트컴 장군은 “내가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부산 유엔기념공원 내 미국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대한민국의 재건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던 고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숭고한 희생과 공헌을 기억할 것”이라며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22개 유엔참전국 195만 영웅들에 대한 보답과 예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올해 유엔군참전의 날(7.27.)을 맞아 정부포상이 결정된 유엔참전용사의 아들이자 남아공한국전참전협회장인 더크 제이코버스 로우(국민훈장 석류장)와 호주 한국전 참전용사 실종자위원회 고문 위원인 케빈 콜린 베리만(대통령표창), 터키 공군 중위 고 무자페르 에르된메즈(무공훈장, 을지)에게 포상을 전수할 계획이다.
포상은 오는 11일, 재방한 행사를 위해 방한 중인 더크 제이코버스 로우와 케빈 콜린 베리만 본인과 고 무자페르 에르된메즈의 유족(조카, 아이한 에르된메즈)에게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직접 전수할 예정이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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