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런 나라를 위해 싸우려고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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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8일 잠실 재향군인회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6.25참전국군포로가족모임’(대표 서영석)은 6.25전쟁 당시 북한의 포로로 잡혀 휴전 후 남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 남아 터를 잡고 살아온 국군포로 및 그 가족들의 모임이다. 현재까지 한국에 입국한 국군포로 2,3세 출신 탈북자들은 100여명 정도이며, 그 중 30명 정도가 이 모임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군포로 가족들은 1994년 국군포로 조창호 소위의 귀환때만 해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으나, 최근 2002~4년 사이 탈북자들의 대거 남한입국이 이루어지면서 이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된 것.
생존하는 국군포로들의 나이가 평균 70~80세인 것을 감안하면 그 2세대들은 대부분 40~50대인 것이 일반적인 추세인 것에 비해 서영석(30, 고려대 컴퓨터교육·3) 대표는 국군포로 2세대들 중 젊은 편에 속한다. 3대 독자인 아버지가 46세때 얻은 귀한 4대 독자였기 때문. 충남 서산이 고향인 서 대표의 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 휴전 후 북한에 억류되어 평생 탄광일을 하다가 병으로 지난 96년 일생을 마감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군이었다” 그러나...
탈북을 생각하게 됐던 계기는 96년, 돌아가시기 전날의 아버지와의 대화에서였다. 서대표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내 성분 때문에 가족들을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군이었다. 희망없는 이 땅을 떠나서 남한으로 가는게 좋겠다”며 남한행을 권유했다.
그러나 어머니, 두 명의 누나와 함께 99년 한국에 입국한 서 대표는 한국으로의 입국과정에서부터 한국정부로부터 냉대를 당했다. “우리는 국군포로의 가족이다. 한국에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한 서 대표와 가족들의 애타는 호소에 재중 한국대사관의 대답은 “도와줄 수 없다. 자꾸 이러면 공안에 신고하겠다”는 것이였다. 결국 서 대표는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에 연락을 취했고, 곧 5명의 고모가 중국으로 한숨에 달려와 남한으로의 입국을 도왔다.
서 대표는 한국입국 후 국군포로와 그 가족에 대한 아무런 보상도, 관심도 없는 한국정부의 태도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한다. 직접 각종 정부기관, 당, 심지어 국민고충처리위원회까지 탄원서를 써서 보냈지만 대답은 모두 “도와주고 싶지만 법률이 없다. 기다려라”는 반응이였다. 그나마 1994년 조창호 소위의 귀환을 계기로 1999년에서야 제정된「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이 있었지만 국군포로의 가족들은 이 법의 보호로부터 제외되어 있는 형편. 서 대표는 “이 법률조차도 조창호 소위를 비롯한 몇몇 국군포로 당사자들이 직접 항의하고 뛰어다닌 결과로 제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 억류된 국군포로들, 나쁜 성분·최하층의 대우의 삶 영위
서 대표는 “휴전전후에 귀환했던 국군포로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건강한 국군포로들은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북한이 강제로 억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대부분 탄광에서 일을 하는 등 최하층의 성분으로 최하의 대우를 받고 살아왔으며, 그 자식들도 부친의 출신성분 때문에 극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서 대표 역시 ‘국군포로’라는 아버지의 ‘나쁜’ 성분 때문에 특기생으로 뽑힌 대학에 입학 며칠전 입학취소를 통보받았다는 것. 열악한 환경의 탄광에서 일하게 되는 국군포로들은 대부분 폐병이나 천식으로 일찍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한다.
“누가 이런 나라를 위해 싸우겠습니까”
서영석 대표는 국군포로가족모임 활동을 통해 남북교류에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포함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남한 국민들에게 미 송환된 국군포로를 알리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대표는 “북한에서 국군포로의 삶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국군포로에 대해 북한에 한마디도 못하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며, 납북자 문제로 떠들썩한 일본이나 단 한명의 포로라도 송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미국의 예를 들며 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격분했다. 그는 이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은 청춘과 목숨을 던져 나라를 지켜낸 참전 호국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인데도,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이들을 외면하고 홀대한다면 앞으로 이런 나라를 위해 누가 싸움터로 나가겠냐”고 불만을 털어놨다.
현재 우리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북한내 생존 국군포로 542명. 서 대표는 “아버지 주위에 친구라 불리는 국군포로들만 해도 3~40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으로 모셔와야 한다”
서 대표는 “아직 살아계신 분들은 젊어야 70살”이라며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으로 오셔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국을 통해 남한행을 시도하고 있는 국군포로가 많다”며,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남한의 입국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 대표는 지금 국군포로의 명단확보와 생사확인 작업에도 열심이다. 또 현재 몇몇 시민단체와 함께 국군포로 백서제작도 기획중에 있다. 그는 “아버지를 비롯, 나라를 지키다가 평생 타향에서 힘든 삶을 산 국군포로들이 더욱 조명되고 평가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남한 생활에 대해 “처음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정말 만족하고 있다”며 대학 졸업 후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며 학업에 충실하고 있는 서 대표. 대화 곳곳에서 그의 진심어린 안타까움과 의분,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당찬 결심을 느낄 수 있었다. (konas)
김수연(코나스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