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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국토대장정 소감문(3)] 두 발로 휴전선 155마일

Written by. 주재영   입력 : 2023-08-22 오전 1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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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3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 지원동기

 “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한 번쯤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을 의미합니다. 국토대장정은 제 인생의 막연한 꿈이자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한 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혼자는 위험하니까, 아직은 어린 나이라서 등의 갖가지 이유로 시도해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재향군인회에서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시행하니 많은 참여 바란다는 공지를 보았습니다. 평소 꿈꾸고 그려왔던 것을 실현할 수 있고 더불어 안보 현장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하니, 육군 장교를 희망하는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저는 평소 내 안에 나를 이기고 싶은 승부욕이 강한 편입니다. 국토대장정은 무더위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부딪히며 스스로 인내와 끈기를 시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일반인의 신분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군부대나 민간인 통제구역에 진입한다는 것도 큰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드시 잡고 싶다는 생각에 13기 일반대원으로 지원했습니다.

□ 출발 전

 : 6월 9일 금요일 14시쯤 ‘띠링!’ 문자 알림음이 울렸습니다. 5일 전에 지원했던 대학생 국토대장정 참가가 확정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발계획에 대학생 100여 명만 모집한다고 해서 ‘내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하고 마음 졸였는데 문자를 받은 순간 놀라움과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신이 나서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멍하니 들여다보고 재차 명단에 적힌 이름이 내 이름이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출발하는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릴 만큼 떨리고 두근거렸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재향군인회가 운영하는 다음 카페에 들어가서 이전에 시행했던 국토대장정 활동사진도 찾아보고, 필요한 것들을 미리 챙겨뒀습니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에 걱정되는 부분도 생기고, 짐을 챙기며 궁금한 것도 많이 생겼는데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주셔서 궁금한 점에 대한 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걱정도 한시름 덜고 빠뜨리는 물건 없이 꼼꼼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결 시간이 6월 25일 오전 8시였기에 당일 구미에서 출발하기에는 빠듯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루 전날 서울로 올라가 숙소를 잡으려고 고민하고 있던 그때, 이번 국토대장정에 함께 가는 학과 동기가 자신의 본가에서 하룻밤 자고 같이 출발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감사하게 동기 부모님께서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6월 24일 구미를 떠나 저녁이 되어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동기생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챙겨온 짐을 한 번 더 꺼내어서 확인해 보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1일차 (6월 25일)
   [ 6·25정부 행사 참석 / 출정신고 → 국립서울현충원 → 제12사단 신병교육대대 ]

 :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출정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씻고 든든하게 아침도 먹고 나갈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동기 아버님께서 태워주신 덕분에 집결 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버스 2대와 줄 맞춰 바닥에 놓여있는 초록색 배낭이 보였습니다. 가방에는 조와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달려 있었습니다. 8조로 배정된 저는 가방 안의 단복으로 환복을 하고 버스에 짐을 실었습니다. 단장님의 통제 아래에 조별로 줄을 섰고, 같은 조 조원들의 얼굴을 처음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낯설고 어색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집니다. 

 저는 조금 내향적인 성격으로 누군가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거나 말을 건네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6일이라는 시간 동안 조원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조의 조장이 되신 분이 선뜻 나서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덕분에 부담을 덜어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 8조는 마지막 조인지라 다른 조와 비교했을 때 인원이 가장 적었습니다.

 부단장님께서 조의 인원이 적다고 말씀하시며 괜찮겠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하고, 소수 정예의 힘을 보여주자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출정 신고 연습을 끝마치고 행사 참석과 출정 신고식을 기다렸습니다.

 6월의 끝자락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절대 치유되지 않고, 잊을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아픔으로 기억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이 바로 6월 25일,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입니다. 우리는 73년 전 오늘을 생각하며 서울 장충체육관의 6·25전쟁 73주년 정부행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2층에서 참관을 해서 1층 행사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1층 중앙을 가득 메운 하얀 제복을 입으신 6·25 참전 용사들과 참전국 유가족들, 행사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고 군악대의 음악 반주에 맞춰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제창했습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악기 연주, 높고 낮은 저마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가슴 벅차도록 아름다운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습니다. 본 행사가 시작되고 전쟁 참전국의 국기, 참전 부대의 마크가 그려진 기가 차례로 무대로 입장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 배우 박성웅 님의 참전 영웅을 향한 감사 인사도 진행되었습니다. 전쟁 당시의 광경이 그대로 담긴 영상도 시청했습니다.

영상 속의 참전 영웅들은 군복도 무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박격포를 피하며 맨몸으로 적을 막으셨고, 함께 싸운 전우의 시신을 옮기며 또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삼키셨습니다. 죽음이라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적으로부터 이 땅을 절대 빼앗기지 않고 지키기 위해 싸우셨습니다. 저는 온몸과 청춘을 조국과 겨레를 위해 기꺼이 바치신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영상을 보던 중간에 1층에서 옷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시던 참전 용사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습은 제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쟁에 참전하셨던 용사분이 영상을 보며 떠올리셨을 생각과 느끼셨을 감정, 그 순간들의 기억들로 흘리시는 값진 눈물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었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영웅들의 피, 땀, 눈물로 지켜낸 이 땅.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다시 선 대한민국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다시금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 향군 2023 '제13기 대학생국토대장정' ⓒkonas.net


 정부 행사가 막을 내리고 드디어 우리는 출정 신고식을 거행했습니다. 재향군인회장님의 격려 말씀과 응원 속에서 우리는 ‘향군!’이라는 경례로 하나가 되어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국립서울현충원이었습니다.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묵념을 했습니다. 참배 후 단장님께서 화환을 올리셨습니다. 뒤편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국방부 장관, 각 군 참모총장의 이름이 적힌 화환들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현충원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 의료 스태프분께서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코로나 자가 진단키트 검사를 실시하도록 하셨습니다. 양성 없이 모두가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껏 따뜻해진 마음으로 뜨거운 육개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우리는 차량에 탑승해 첫날의 숙소인 제12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던 저는 버스에서 눈을 붙였다가 천천히 멈추는 것이 느껴져 눈을 떴더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군부대 내에서 촬영이 불가하기에 우리는 촬영 금지 스티커를 배부 받아 휴대전화 전면·후면 카메라에 부착했습니다. 12사단 을지부대에서 군용장비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듣고 짐 정리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습니다. 군부대에서 밥을 먹어 보는 것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충성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조원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대로 앉아서 얼굴 마주한 것은 처음이라 정적이 흐를 때도 있었지만 천천히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라 좋았습니다. 그렇게 5박 6일의 첫날밤이 깊어져 갔습니다.

□ 2일차 (6월 26일)
 [제12사단 신병교육대대 → DMZ 박물관 → 금강산전망대(717OP) → 통일전망대 → 제진검문소 → 백골병단전적지 → 제7사단 신병교육대대]

 : 오전 6시, 제12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부터 내렸던 비로 촉촉하게 젖은 흙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이었습니다. 간단한 우유와 죽으로 식사를 끝마치고 을지부대를 떠나 오늘의 첫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유리창을 스쳐 지나가는 매서운 빗줄기를 바라보며 오늘 비가 오는데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 내리는 날씨였지만 여름이라 창밖의 풍경은 마냥 푸르고 싱그러워 보였습니다. 도로를 달리며 보았던 동해는 내리는 비를 품어주듯 잔잔하고 고요하게 울렁이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차로 한참을 달리며 창밖을 구경했더니 어느새 우리나라의 최북단에 닿아 있었습니다. 계획에 따르면 DMZ 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이 순서였으나 매주 월요일이 박물관의 정기휴무일이라 아쉽게도 고성 통일전망대로 발을 돌렸습니다. 차에서 내려 노란 우비를 쓰고 전망대로 줄줄이 올라가는 모습을 맨 뒤에서 바라보니, 마치 병아리들이 종종걸음으로 걷는 것 같아 귀여웠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2층으로 올라가 우리는 큰 창이 보이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큐레이터의 해설에 따라 눈동자를 굴리며 해금강, 금강산을 눈에 담았습니다. 날이 흐려 멀리까지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실루엣으로나마 저곳이 북한 지역이라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같이 온 학과 동기들과 사진 한 장을 남기며 이곳을 추억했습니다. 통일전망대를 내려와 6·25전쟁 체험 전시관을 구경했습니다. 크기가 크지 않아 약 15분 정도 관람하고 열차 식당에서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었습니다. 먹어본 막국수 중 최고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비를 피해 차에 탑승해서 다음 일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단장님께서 걸어서 제진검문소로 갈 예정이니 우비 입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섬주섬 우비를 입으려는 비 맞은 저희의 모습을 보시고, 단장님께서는 단원들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사주셨습니다. 그러고는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한 커피 마시고 몸 좀 녹인 후에 출발하겠다고 다정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날씨 변화에 따라 단원들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시고 신경 써주시는 단장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 후 통일전망대에서 제진검문소까지는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사실상 첫 행군이었기에 얼마나 걸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통일전망대에서 제진검문소로 이동하는 사진입니다. 마지막 조라서 앞 조의 걸음 속도에 맞춰 걸어갔습니다. 누군가 앞에서 거리를 벌이면 우리는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뛰어야만 했습니다. 걷다가 뛰다가 속도 조절하는 부분이 조금 힘들었지만, 다른 조들은 걸을 때 뛰어본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에 우비를 쓴 것이 무색할 정도로 옷이 젖어갔습니다. 계속 걸으니 땀이 차서 우비에 맺힌 물방울이 내 땀인지 물방울인지 구분이 잘 안 갔습니다. 촉촉한 신발에서 축축한 신발이 되며 양말에도 물이 들어갔습니다. 신발이 스펀지처럼 폭신한 게 마치 물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물이 들어갔다 빠지는 소리가 ‘뾱뾱’하고 경쾌하게 들렸습니다. 어릴 적 뾱뾱이 신발을 신고 걸었던 생각이 나서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조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첫날 저녁 한 시간 동안 대화했던 자리보다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 것 같았습니다. 조원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화진포였습니다. 화진포에 도착했을 때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우비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비 그친 후의 청량하고 맑은 공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욕심내서 많이 마시고 싶은 기분 좋은 상쾌함이었습니다. 화진포호를 따라 걸을 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강원도라 밭에 감자가 널려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풀 위에는 물방울이 동그랗게 앉아있었고, 예쁘게 핀 꽃들과 우거진 숲이 아름다웠습니다. 신발이 젖어 찝찝하긴 했지만, 솔솔 부는 바람이 신발을 말려주는 것 같아 불편한 감정은 잠시 잊기로 했습니다. 화진포호가 보이는 곳에서 조별로 사진 찍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야외에서 찍는 첫 8조 단체 사진이라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날씨는 흐렸지만 고생했다고 서로를 다독이는 조원들의 얼굴만큼은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코스를 걷고 우리는 오늘의 숙소인 제7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했습니다. 꽤 오래 버스를 탔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배도 고팠고, 화장실도 가고 싶었고, 에어컨 바람에 젖은 발도 시렸습니다. 조금만 참자는 마음으로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토대장정 단원들을 환영하는 LED 간판과 7보병사단이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갔다가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몸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다 먹은 식판은 본인이 설거지 후 검사 맡고 식기 보관대에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자기 식판을 자신이 세척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는 점은 좋게 느껴졌으나 한 사람이 사용할 때마다 주방 세제를 사용하면 세제 비용적 측면에서 낭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깨끗하게 세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장녀의 설거지 기술로 한 번에 검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짐을 정리하며 신발을 벗었는데 양말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자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흙탕물에 얼룩덜룩 까만 양말로 변해있었습니다. 현역 장병들과의 대화시간 전까지 씻고, 세탁할 옷을 모으고, 운동화 깔창을 빨고 나름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병들과 대화하는 장소에 도착하니 조별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과자와 음료가 책상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장교와 부사관, 총 다섯 분이 자리해 주셨습니다. 간단한 부대 소개 영상을 시청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된 간식 먹으면서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원한다는 7사단 측의 요청에 단장님과 부단장님은 흔쾌히 자리를 양보해 주셨습니다. 

 여성이라는 성별로 무시나 차별을 당한 경험은 없었는지, GOP 전방은 진급이나 장기복무에 유리한지, 소위·중위 때 어떤 보직을 맡았는지, 결혼 후 복지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의 다양한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궁금증을 현역으로 근무 중인 장교와 부사관을 통해 들을 수 있어 장교를 희망하는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고, 경험있는 선배들을 통해 상황 판단 능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나는 어떤 모습을 갖춘 장교가 될지를 그려보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길었던 일정이 모두 끝나고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점호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처음으로 내가 보고하는 날이라 실수할까 봐 떨리는 마음이 컸습니다. 1조부터 하나둘씩 방에 불이 꺼지고 단장님의 목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긴장감이 커졌습니다. 옆 조에서 어떻게 보고하는지 잘 듣고 보고요령을 얼거리며 외웠습니다. 마침내 단장님이 문 앞에 오셨고,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를 냈습니다. 단장님께서는 오늘 보고 중에 제일 깔끔하고 좋았다고 칭찬해 주셨고, 손뼉을 쳐주셨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의 끝이었습니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잠을 청했습니다. 

□ 3일차 (6월 27일)
 [제7사단 신병교육대대 → 평화의 댐 → 오미리마을 → 제15사단 수색대대 → 금성지구 전투전적비 → 제15사단 신병교육대대]

 : 피곤해서였는지 제7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준비해 준 폭신한 새 이불 덕분인지 꿀같이 달콤한 잠을 잤습니다. 일어났을 때 뻐근한 느낌이 조금 있었는데 아침 체조하니까 개운하게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배꼽시계가 제법 정확해진 것 같습니다. 6시 30분만 되면 아침 달라고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를 냅니다. 아침 든든하게 먹고 새로운 하루를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차를 타고 떠날 채비를 하는데 제7사단 신병교육대대의 장병들이 줄지어 손을 흔들어 가는 길을 배웅해 줬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남겨두고 버스는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렸습니다.

 버스는 평화의 댐에서 멈췄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댐에서 오미리 마을까지 걸어서 이동할 계획이었습니다. 부단장님께서는 가는 길에 화장실이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시며 다녀올 시간을 주셨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댐을 내려다봤는데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어 조금 무서웠습니다. 댐이 보이게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우리는 오미리 마을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이 정말 뜨거웠습니다. 오르막길도 많아 숨이 조금씩 차올랐습니다. 이야기하면서 걸어가는 게 점점 힘에 겨워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걸었습니다. 걷는 길이 심심해져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걸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걸으니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높이 올라가니까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반쯤 걸었을까 잠시 쉬어가겠다는 이야기가 앞에서 들려왔습니다. 쉬는 동안 푸르고 짙은 경치를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약 10분의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다시 오미리 마을을 향해 걸었습니다. 단장님께서 도착하면 시원한 막국수를 점심으로 먹을 거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조원들과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 속에서 더 힘차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행군 지원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군가도 지친 우리를 달래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걷다가 약 1.2km의 긴 터널이 나왔습니다. 터널 속을 걸으니 차가운 공기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우리는 터널을 뛰어서 이동했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올 때쯤에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던 것 같습니다. 

 단장님께서는 지쳐서 앉아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터널을 지날 동안 다른 차들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구급 차량이 터널 입구를 막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 다른 차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기 때문에 뛰라고 지시했습니다.” 갑자기 왜 뛰는지 영문도 모른 채 뛰었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셔서 결국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그런 판단을 내리셨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쉬면서 조원들과 둘러앉아 간식을 먹고 당 충전을 했습니다. 초코파이가 정말 달콤하게 느껴졌습니다. 배가 점점 고파지는 게 빨리 막국수를 먹고 싶었습니다. 간식으로 당을 충전하면서 두 번째 휴식을 서둘러 끝내고 막국수를 향해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가는 동안 줄줄이 끝말잇기를 하면서 걸었습니다. 약 40분 동안 끝말잇기를 했는데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그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막국수 가게에 다 닿았을 때쯤 적막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우리는 마지막 단어를 막국수로 외치며 끝말잇기를 마무리했습니다. 12km를 걷고 난 후 먹는 막국수는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고소한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주고 살얼음이 끼인 차가운 육수를 부어 양념과 골고루 비벼 먹으니,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더위가 한꺼번에 가시는 느낌이었습니다.

 달콤한 점심 식사를 끝마치고 제15사단 수색대대로 이동했습니다. 장비 견학을 했는데 실제 군에서 사용하는 총을 만져보고 군장을 메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실제 총을 잡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웠습니다. 3kg 정도 된다고 설명해 주시면서 잡는 법과 자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군에서 집총하고 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 무게를 들고 뛴다고 생각하니 팔이 저리는 것 같았습니다. 총도 비슷하지만 다 다르게 생겼고, 배율이 장착된 총은 멀리 있는 것도 선명하게 보여 신기했습니다. 약 20kg의 군장도 메봤는데 드는 것 자체가 혼자서는 불가능했었습니다. 현역분의 도움을 받아 겨우 군장을 멨습니다. 등이 확 무거워지는 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더뎌졌습니다. 실무에 나가기 전에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향군 2023 '제13기 대학생국토대장정'ⓒkonas.net


제15사단 수색대대에서 오늘의 숙소인 제15사단 신병교육대대로 가기 전 방문한 곳은 금성지구 전투전적비였습니다. 지난 학기 한국 전쟁사 전공 수업 시간에 6·25 전쟁을 비롯한 우리나라 전쟁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금성 전투를 듣고 1953년 전쟁 끝 무렵 최후의 대규모 전투라고 교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내용을 바탕으로 대위분이 설명해 주시는 이야기를 들었더니 조각난 기억의 퍼즐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것 같았습니다. 위대한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자유와 평화의 무게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동 전에 금성지구 전투전적비 옆에 위치한 작은 추모비 앞에서 단장님의 군 시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장님께서 철원에서 군 복무하실 때 쏟아지는 많은 비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분들이 있었고, 그분들을 추모하는 비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단장님께서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며 본인도 순간의 판단을 잘못했다면 용사들을 잃을 뻔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지휘관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지휘관의 결정으로 인한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꼈습니다. 차를 타고나서도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과 더불어 내가 지휘관이었다면 저렇게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 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제15사단 신병교육대대로 갔습니다. 시간이 늦은지라 저녁을 먹으러 바로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지금껏 먹었던 부대 밥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 먹은 후 어김없이 씻고 짐 정리를 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다시 식당에서 다시 모여 5일차에 있을 전야제 레크레이션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 8조는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라는 곡을 준비했습니다. 발매된지는 9년이 지난 노래지만 대중적이고, 신나는 멜로디고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안무였기 때문입니다. 박자도 잘 못 맞추고 몸치라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차근차근 반복해서 알려주는 조원들이 있었기에 더 잘하려고 열정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춤 연습을 하면서 야식으로 시켜주신 피자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은지 얼마 안 지나 배가 불러서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 들어와야했는데 어떻게 피자 배달이 가능했는지 놀랍기도 했습니다. 맛있게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 점호 준비를 했습니다. 점호를 할 때면 부상자 없이 하루 일과를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불침번을 서야하는 날이라 점호가 끝나자 마자 눈을 감았습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이전 시간 불침번인 같은 조 언니가 저를 깨웠습니다. 비몽사몽한 채로 눈을 비비며 복도로 나갔습니다. 복도에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한동안 복도 끝만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2시 정각이 되자 남자 불침번도 잠이 덜 깬 상태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불침번 서면서 복도 가운데 책상에 군인 한 분이 앉아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이 늦은 새벽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앉아계신 건가 싶어 놀라웠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이날 하루 2층은 우리 국토대장정 단원들만 사용했는데 저희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안 주무시고 계셨다고 생각하니 감사하고 든든한 마음이었습니다. 길게만 느껴졌던 한 시간이 지나가고 다음 차례 불침번을 깨우고 다시 단잠에 들었습니다.

□ 4일차 (6월 28일)
 [ 제15사단 신병교육대대 → 화천 붕어섬삼거리 → 파로호 안보전시관 → 제2땅굴 → 철원 평화전망대 → 제5사단 신병교육대대 ]

 : 눈을 떴을 때는 6시였습니다. 모두 분주하게 아침 체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빨리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국군 도수체조를 마치고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강원도라 그런지 모든 부대가 매일 아침 강원 우유를 줬던 것 같습니다. 여느 날과 같이 버스에 탑승했고, 오늘의 일정을 위해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화천 붕어섬삼거리로 이동하는 동안 자꾸만 하품이 나오며 눈꺼풀이 무거워졌습니다.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더니 어느새 내리자는 부단장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취재하시는 기자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조원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걸었더니 금방 도착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부은 발등이 욱신거렸지만, 어제와 다르게 걷는 길이 평지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5km의 짧은 행군을 끝마치고 무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파로호 안보전시관으로 향했습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에서 안내해 주시는 선생님을 따라 2층 강연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전등이 켜지지 않아 까만 강연장이었지만 오히려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큐레이터 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생생하게 설명해 주신 덕분에  10억 8,000만 톤의 화천댐이 그려지고, 끊이지 않는 총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들으면서 원래 남한 땅인데 지금 북한 땅이 된 곳을 ‘해방지구’, 원래 북한 땅인데 우리 땅이 된 곳은 ‘수복지구’라고 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1층으로 내려와 전시관을 구경하고, 그늘에 앉아 점심으로 전투식량을 먹었습니다. 

 처음 전투식량을 먹어보게 되어 기대되고 궁금함이 컸습니다. 저는 짜장밥을 먹었습니다. 알려주신 방법대로 줄을 당기니 연기가 모락모락 나며 밥이 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약 15분 정도 기다려야 했습니다. 동봉된 볶음김치를 뜯어 한 젓가락 먹어봤는데 빨리 밥이랑 같이 먹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밥을 꺼내니 따뜻하게 잘 데워져 있었습니다. 밥 안에 옥수수와 당근과 같은 야채도 있었습니다. 짜장 소스를 부어서 먹으니 맛있었습니다. 

 북한은 6·25 전쟁 이후 여러 차례 다양한 방법으로 대남도발을 해왔습니다. 1970년대에 북한은 남한의 정부 요인과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고,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1971년 김일성은 남조선을 조속히 해방시켜야 한다며 ‘특수공사’라고 위장해 남침 땅굴의 굴착 작업을 지시했습니다. 그렇게 북한은 1972년 5월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땅굴은 4개가 발견되었고, 발견된 순서에 따라 순번이 붙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1975년 강원도 철원 북방에서 발견된 제2땅굴에 방문했습니다. 

 안전모를 착용하고 땅굴에 들어갔습니다. 내부에 들어가자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습니다. 땅굴은 깊었고 생각보다 높이가 높았습니다. 실제로 이 땅굴은 병력과 중화기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철장 끝까지 가니 우리 군이 경계 감시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철장을 넘어 땅굴을 걸어가면 북한인데 더 이상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분단의 아픈 현실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침략 도발 현장에 직접 다녀와서 70년대 북한이 펼친 평화적 제스처가 단지 위장에 불과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회담을 개최하고,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할 때 뒤에서 땅굴을 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화도 났습니다. 아직도 북한은 대남도발의 야욕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북한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철원 평화전망대로 이동했습니다. 전망대로 걸어가는 길이 막혀있어 우리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모노레일에서 내리자 관리원분께서 보이는 방향의 우측이 북한이니 촬영하면 안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만큼 가까운건가 싶어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전망대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2층에 올라가니까 몇십배로 확대 가능한 디지털 망원경과 일반 망원경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좋아 북한군의 초소와 그 근처에서 움직이는 북한 군인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최북단에서 철망으로 쳐진 휴전선과 북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고, 안타까웠습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월정리역입니다. 월정리 폐역에는 6·25 전쟁 당시 탈선한 열차의 잔해와 4001호 기관차가 숨을 죽인 채 멈춰있었습니다. 이전에 남한과 북한을 오가는 역이었다고 생각하니 쓸쓸하고 울컥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월정리역에서 기차를 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감정을 안고 오늘의 숙소 제5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특별한 분을 만났습니다. 포천에서 근무하시는 6사단 중위 계급의 국토대장정 12기 선배였습니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13기 후배들을 응원하고자 음료를 사 들고 왔다고 했습니다. 단장님께서는 같은 기수끼리는 일회성 만남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만나는 인연이 되었으면, 새로운 후배 기수에게는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는 따뜻한 선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씀하셨습니다. 국토대장정의 좋은 기수 문화를 이어 나가는데 저도 일조하고 싶었습니다. 

 선배님이 가시고 약 30분 동안 다음 날의 레크레이션을 준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의 조장이었던 분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우리 조 인원에 변동이 생겼습니다. 함께 남은 일정을 소화할 수 없게 되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5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조원 중 한 명의 발목 부상으로 총 4명이 무대에 서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새롭게 동선을 짜고 적은 인원이지만 무대가 꽉 차 보일 수 있게 열심히 춤을 연습했습니다. 춤 연습이 끝나고 숙소에 복귀하여 점호를 했습니다. 5사단에서의 밤도 깊어져 갔습니다. 

□ 5일차 (6월 29일)
[ 제5사단 신병교육대대 → 노동상사 → 주상절리길 → 백마고지전적지 → 임진각(평화누리공원) → 해병 제2사단(청룡회관) → 해병 제2사단(동원교육대대) ]

 : 5일차는 제5사단 열쇠부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어제의 맑은 날씨는 어디 가고 창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비로 인한 위험성이 있어 주상절리길은 출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철원 역사문화공원을 방문하고, 고석정을 걸었습니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에 앞이 잘 안 보였습니다. 그래도 우비 쓰고 비 맞으며 걷는 경험을 하는 게 쉽지 않은데 할 수 있었음에 행복했습니다. 비 맞은 몸을 녹이기 위해 점심으로 두부 버섯전골을 먹었습니다. 으슬으슬 떨리던 몸이 한순간에 녹는 듯했습니다.

 밥을 먹은 후에는 백마고지 전적지로 갔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심겨 있는 나무와 태극기가 참 예뻐 보였습니다. 시계는 6시 25분에 멈춰있는 듯했습니다. 한국전쟁의 역사 중 가장 치열한 전투라고 손꼽히는 백마고지 전투가 내가 밟고 있는 땅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백마고지에서 산화한 영령을 기리는 위령비 앞에서 전사자 명단을 읽으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 수많은 전사자의 이름을 보고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는 한반도에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전지 답사 후에는 해병 제2사단 동원 교육대대에서 씻고 짐을 풀면서 레크레이션을 준비했습니다. 청룡회관에 도착했을 때는 생각보다 큰 규모라 놀랐습니다. 저녁과 함께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테이블마다 술도 주셨습니다.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마무리했습니다. 밥을 먹은 후 전야제 때 진행자분이 왔습니다. 센스와 유머 감각이 좋아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중간에 재향군인회에서 제작해 주신 영상도 봤는데,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주셔서 지나온 하루하루를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원들과 함께하는 밤을 보내며 준비해 주신 케이크의 불도 껐습니다. 준비했던 장기자랑도 끝내고 아쉬움 없는 밤을 보냈습니다. 점호가 끝난 후 동기들끼리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잠이 들었습니다.

□ 6일차 (6월 30일)
   [ 해병 제2사단(동원교육대대) → 공군 제10비행전투단 → 해군 2함대사령부 → 해단식 → 복귀] 

 : 어느덧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해병 제2사단에서 출발해 공군 제10비행전투단이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강당에서 10비행전투단 소개 영상 시청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군에서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는 소령분과의 대화가 흔한 기회가 아니라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전시관 구경도 했는데, 전시관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활주로가 정말 넓었습니다. 마치 공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보는 전투기의 내부와 크기에 비해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장비들이 신기했습니다. 견학을 마친 후 공군 식당으로 향해 점심을 먹었습니다.

 

 ▲  향군 2023 '제13기 대학생국토대장정'ⓒkonas.net


그리고 해군 2함대 사령부로 발을 옮겼습니다. 해군 병사분의 설명을 따라 전시관을 구경했습니다. 피로써 지켜낸 해상경계선 NLL과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두 번의 해전을 겪으신 故 박경수 하사를 비롯한 모든 용사의 희생에 감사했습니다. 피와 땀, 눈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거듭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반짝이는 별이 된 46용사들을 추모하며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시간이 조금 남아 두 동강 난 천안함의 내부도 봤습니다. 전시관에서 영상과 자료를 봤지만 실제로 눈앞에 마주하니 무척 참혹했습니다. 단 1초 만에 폭침되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습니다. 관람하는 시간 내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5박 6일의 마침표를 찍는 해단식 시간이 왔습니다. 식을 거행하는 동안은 끝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수료증과 기념품을 받고 단체 사진을 찍으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조원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각각 서울과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버스가 떠날 때 단장님과 부단장님이 손을 흔들어 주셨는데, 그때 국토대장정이 진짜 끝이 났구나 싶었습니다. 

□ 일상으로 복귀

 :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국토대장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수묵화처럼 뭉근하게 번지듯 서서히 퍼지는 여운이 좋아 저는 아직 그날의 추억 속에 잠겨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먼저, 이번 행사를 개최해 주신 재향군인회 단체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보현장을 견학하며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것을 다시금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조들의 임전무퇴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정신을 닮아, 조국의 평화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군 복무를 마치고 국민의 호국·보훈 의식 및 애국정신 함양을 위해 계속해서 힘쓰는 재향군인회 단체 일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경험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으로,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사고 없이 국토대장정이 끝날 수 있도록 애써주신 김성래 단장님, 이승훈 부단장님, 김혜영 부단장님, 박여진 부단장님, 의료 대원님, STAFF 분들, 촬영 기자님들, 먼 걸음에 함께해 주신 차량 기사님께도 깊게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안전하게 5박 6일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13기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단원들에게도 고맙습니다. 함께라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잊지 않고 앞으로도 소중한 인연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안보의식을 강화하고, 행군을 통해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 이번 제13회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konas)

주재영(경운대학교 군사학과)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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