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대학생 국토대장정 동행취재 1부
6월 24일
2026년 6월 24일, 아침부터 날씨가 무더웠음에도 불구하고 약 90여명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제16회 대학생 전적지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기 위하여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향군회관으로 집결했다. 제3기 향군 대학생 기자단 소속인 필자도 그 중 하나였다.
오전 9시, 예정대로 대학생 대원들과 스테프, 관계자 분들이 모두 집결한 가운데 간략한 오리엔테이션이 실시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번 국토대장정의 단장 역할을 맡으신 “전복동” 단장님의 소개 말씀과 첫날 일정 설명을 시작으로, 장장 6박 7일간의 국토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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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설명이 끝난 뒤, 대학생 대원들은 총 10개조, 2개 버스로 나뉘어 현충원을 참배한 후, 두 번째 장소인 전쟁기념관으로 이동했다.
1994년 6월 국민들의 안보 의식을 고취시키고 호국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처음 건립된 전쟁기념관에서, 대원들은 약 1시간 동안 조별로 나뉘어 기념관 내 외부의 각종 기념비 및 호국 보훈시설을 견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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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학 직후에는 재향군인회 측 내빈과 군악대, 대원 및 관계자 전부가 참여한 대규모 출정식이 전쟁기념관 지하 1층에서 실시되었다. 정식 출정식에 앞서 경례 및 행사 전반에 대한 예행연습이 실시되었다.
대원들 중 절반 이상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미필이었기에 처음에는 적지 않은 수가 “열중 쉬어”나 “거수경례” 같은 지시를 따라오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단장님의 꼼꼼한 설명과 여러 차례의 연습 끝에 출정식은 성황리에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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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로 조우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모든 조에 어색함이 감돌았으나, 같이 자유로운 견학을 진행하며 이러한 분위기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후 대원들은 버스에 탑승해 마지막 목적지, 경기도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로 이동했다. 과거 오랫동안 최전방 미군기지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숙박시설이 된 캠프 그리브스는 민간인 출입 통제선, 일명 민통선 내부에 위치했었기에 철저한 신원검증을 거친 후에야 출입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캠프 그리브스에 도착한 대원들은 방배정 이후 저녁식사 후 군번줄 제작, 군복 실착 등의 활동을 하며 국토대장정의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었지만, 첫날이었기에 이날만큼은 비교적 쉽고 재미있는 활동 위주로 일정이 편성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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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마침내 6.25 전쟁 76주년 당일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에 비교적 이른 6시에 기상했다. 아직 피곤한 눈으로 버스에 오른 대원들은 수원컨벤션으로 이동해 6.25 참전용사, 파병국 16개국 주재무관, 대통령 및 국방부장관 등이 참석한 6.25 전쟁 공식 정부 기념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는 6.25 전쟁에서 국군의 희생을 기리는 것 외에도, 아직 생존해 계신 전쟁 참전용사들을 뵐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었다. 76년이라는 세월을 알려주듯 흰색 제복을 착용하고 행사장 맨 앞에 줄지어 앉으신 참전용사들은 전부 고령자셨지만, 지나치며 마주친 그분들의 눈은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결의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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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관 행사가 종료된 이후, 대원들은 다음 목적지인 제8전투비행단이 위치한 강원도 원주시로 이동했다. 그러나 제8 전투비행단으로 진입하기 직전,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다. 바로 비행단 인근에 위치한 원주 현충탑 및 심일소령 위령비를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심일 소령의 부친이 기증한 부지에 건립된 위령탑에는,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호국영령 558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원들은 이곳에서 묵념 및 참배를 진행한 뒤, 제8 전투비행단 영내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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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 전투비행단 영내에서는 항공기 정비창 견학이 이루어졌다. 보안상의 이유로 카메라 사용이 금지되었기에 사진 자료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집체만한 정비창 안에서 최신 국산 항공기 FA-50, KT-1 및 T-50이 일제히 정비를 받고 있는 모습은, 모든 대원들로 하여금 언제던지 출격 준비가 되어 있는 공군의 정신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날의 숙소는 제8 전투비행단 내 예비군 숙박시설이었다. 본격적으로 군 시설을 이용하는 만큼 대원들에게는 이때부터 청소와 불침번, 그리고 생활관 점호라는 새로운 세 가지 임무가 부여되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임무, 특히 불침번과 점호의 존재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던 미필 대원들도, 군필 대원 및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은 뒤에는 모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가 취침중인 밤 중 일어날 수 있는 안전 사고 및 정확한 인원 수 파악을 위해서라도 불침번과 점호는 필수불가결한 절차였던 것이다.
6월 26일
이날의 첫 번째 방문지는 고성 통일전망대 및 해안 철책이었다. 6.25 전쟁 이전에는 북한령이었고, 현재도 코 앞에 남방한계선과 북한 땅을 마주한 고성의 바닷가에는, 두 겹으로 이루어진 철조망과 각종 감시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은 전방 중에서 최전방이었기에 많은 제약사항이 있었다. 사진 촬영이 제한되었던 건 기본이오, 견학 역시 담당 인솔자분의 지도 및 무장 병력의 호위 아래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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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봤을 때는 단순히 해안선을 따라 세워진 철책만이 보였지만, 두 시간 가량 설명을 듣자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례로, 철책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었고, 철책 뒤로 길게 이어진 철로는 과거 일본 제국이 동해안 지역을 종방향으로 잇기 위해 부설했다가 버려진 동해북부선 철도의 흔적이었다.
또한, 대원들은 철책을 걸으면서 바다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점에 의아해 했는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매우 간결했다. 남방한계선 및 군사분계선 인근 수역은 안전을 위해 대한민국 및 북한 측의 어로 활동이 일체 제한된 것이었다. 즉, 그곳에서는 족히 수십 년간 어떠한 형태의 어업도 실시되지 않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다 특유의 냄새 또한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고성에서 해안 철책을 따라 행군한 대원들은, 이번에는 방향을 서쪽으로 바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제12 보병사단 “을지부대”의 신병교육대에 진입했다.
을지부대 신병교육대에 진입하자, 각종 군용차량, 화포, 소화기류 및 장비가 보기 좋기 전시되어 있었다. 사단 측에서 감사하게도 대원들의 견학 소식을 듣고 미리 해당 장비들을 배치해 견학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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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대원들은 저녁 식사 이전까지 자유롭게 부대 운동장에 전시된 장비들 및 차량을 둘러보고, 각 장비를 운용하는 장병들에게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이렇게 국군의 현용 장비를 코앞에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인 대원들이 많았기에, 견학 내내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현용 국군 전투식량 종류, K-9 자주포의 에어컨 설치 여부, 현궁 대전차미사일의 발당 가격 등 대원들의 질문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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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저녁에는 특별한 방문도 이루어졌는데, 강동화 향군 안보교수님의 안보 교육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날 안보 교육의 핵심은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과 우리나라는 엄연히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소 딱딱해 보일지도 모르는 “안보 교육”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교수님의 재치가 섞인 강연 실력 덕에 강연이 끝날 때쯤 강당에는 대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렇게 국토대장정의 셋째날 밤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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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7일
다음 날 견학할 곳은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넓디넓은 호수, 파로호였다. 얼핏 보면 안보와 전혀 관련 없는 장소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곳에는 대규모 전력을 생산하는 화천댐이 위치해 있었고, 그랬기에 6.25 전쟁 막판 중공군과 국군 제6사단이 크게 맞붙었던 중요 격전지였다.
파로호가 가진 역사적 의의는 바로 그 이름에서부터 드러났는데, 단장님은 파로호라는 이름은 깨트릴 파(破)와 사로잡을, 오랑캐 로(虜)라고 설명해 주셨다. 즉 오랑캐를 깨트린 호수라는 뜻인데 실제로 해당 전투에서 제6사단은 698명의 사상자만을 내며 약 2만여명이 넘는 중공군을 몰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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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북한이 점거한 화천댐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폭탄이 예상보다 효과가 떨어지자 미 해군이 창의력을 십분 발휘해 군함 상대용 어뢰를 동원했다는 사실 역시 이날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파로호 전투 기념관을 살펴본 대원들은 곧바로 다음 3시간 가량 파로호 옆의 화천호를 따라 걸으며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틀어 최장거리 행군에 들어갔다. 파로호 전투 당시 양측의 목표가 되었던 화천댐과 역사적 장소인 미륵바위를 지나자, 어느새 붕어섬이 눈 앞에 들어왔다.
행군을 마친 대원들은 이후 붕어섬에 둘러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했다. 마침 날씨가 좋았기에 처음에는 상쾌했지만, 이 호수와 댐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군 장병들이 희생되었는지 떠올리게 되자 연신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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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관광을 마친 이후 철원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한 대원들을 반겨준 것은 레크레이션,정확하게는 군가 레크레이션이었다. 숙소에서 저녁 식사 및 세면을 마친 대원들은, 조별로 나뉘어 군가 “전선을 간다”의 1절을 외운 뒤 단상에 서서 힘차게 제창했다.
10개 조는 각자의 방식대로 힘차게 군가를 제창했고, 이 중 가장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준 1조와 2조에게는 상품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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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2부가 계속됩니다. (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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