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적 민족주의와 결사전을 벌이자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는 항상 사람의 가슴을 끓게 한다. 우리가 공장에서 기계를 조립하기 위해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선 넓은 잔디의 골프코스에서 골프공을 부릅뜨고 보고 있는 이들이 있는 이 처참한 빈부(貧富)격차에 누가 감정을 절제할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우월성을 수도 없이 배우며 자랐는데 우리가 다른 민족을 압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많이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젊은 혈기에 어떻게 배알이 꼴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체주의세력에게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는 언제든지 지배와 통치를 위해 구사할 수 있는 최대 자원이었다. 스탈린은 계급주의를 결합시켰고 히틀러는 민족주의를 결합시켰다. 계급주의와 결합된 전체주의는 계급 적대세력을 만들고 계급의 적에 대한 적대감을 통해 전체주의를 유지하며, 민족주의와 결합된 전체주의는 적대적 민족을 만들고 민족의 적에 대한 적대감을 통해 전체주의를 유지한다. 물론 적(敵)을 만들고 적에 대한 적개심을 통한 국민동원(mobilization) 방식이란 측면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필요에 따라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를 바꿔가며 결합시켜나가는 것도 전체주의와 민중주의의 공통된 특징이다. 중국 모택동이 민족주의를 통해 세를 확장시키고 계급주의를 통해 전체주의를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모택동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훌륭한 계승자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두 개의 세력과 두 개의 전장(戰場)에서 대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 개 세력이란 한반도 북쪽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전체주의와 한반도 남쪽에 형성되어온 민중주의다. 또 두 가지 전장이란 한편으론 계급주의와의 대결이고 다른 한편으론 민족주의와의 대결이다.
우리에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좌파 민족주의다. 계급주의는 소련을 포함한 공산주의의 붕괴로 그 힘을 크게 잃었지만 민족주의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흐름을 모를 리 없는 김일성이 사회주의붕괴를 목도하며 역점사업으로 삼은 것이 바로 민족주의이다. 단군릉(檀君陵) 조성사업 등이 그것이다. 민중을 말하고, 변혁을 말하던 우리 사회의 진보 좌파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던 민중과 변혁 대신 어느덧 민족을 말하게 된 것도 생존의 방식이다.
그런데 생존적 차원에서 변신의 방식으로 거론되던 그 ‘민족주의’가 생존수단을 넘어 어느덧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생존도구가 승리도구가 된 것이다. 지난 6월 1일 <매일경제>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대통령이 부시대통령에게 해야 할 말이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대해 중견 기업인들 7명에게 질문문안을 받은 적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들 중견 기업인들이 하나같이 반미적 태도로 대결적 내용을 주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자주적 행로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라”, “미국의 자기 중심적 세계관은 위험하다”, “미국은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지 말고 남북한 자율에 맡겨라”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프레첼(과자) 먹다가 목에 걸려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라”는 식의 비아냥도 많았다. 답변자들은 에넥스 전무, 신한증권 부사장, 지오사장, 미즈메드병원장 등 우리 사회의 중심적 인사들이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형성되고 있는 허구적 민족주의의 본질을 투시하고 결연히 대응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잘못된 길로 가는 민족주의 정서는 단지 386세대나 철없는 젊은 세대에 국한된 것도, 일시적인 것도 아니다. 2002년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이런 흐름에서 나타난 사건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던 사건인 것이다. 이런 흐름은 결국 폐쇄적 반외세주의로 갈 수 밖에 없고, 필리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된 반미주의로 슈빅만 해군기지 및 클라크 공군기지 폐쇄 등 미군철수가 단행되었던 그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주의가 표류하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 민족주의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저지한다고 저지되는 것이 아니라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길을 터주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 민족주의의 방향은 첫째, 북에 있는 2천 2백만의 우리 민족에게도 자유와 민주주의와 번영된 삶을 살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민족주의다. 우리는 그 민족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김정일을 포함하여 북에 있는 우리 민족의 자유민주주의와 번영의 길을 막거나 방향을 호도하는 세력과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 민족주의의 방향은 우리 민족을 세계 최악을 나락으로 떨어뜨려온 김정일을 포함한 반민족주의자와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우리 민족주의가 가야할 길은 우리 민족을 더 번영시키고 우리 민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선진화의 길이다. 그것은 당연히 선진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달성해야 할 과제다. 그것은 민주주의(Democracy) 선진국, 과학기술(Science & Technology) 선진국, 또 시장을 포함한 제도(Institution)와 문화 선진국과의 교류와 협조체제를 통해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진세력에 대한 배타성을 키우며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과학기술 후진국, 또 각종 제도와 문화적 후진국과의 협조와 연대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민족을 내세우며 가장 반민족의 길로 가는 세력들이 하는 짓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주의가 가야할 길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쌓아온 기적과 금자탑을 좌절시키지 않고 완성해가는 일이다. 1945년 해방, 독립 이래 우리가 60년간 지키고 만들어온 대한민국의 성공을 좌절시키지 않고, 계속 성공 스토리(success story)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민족주의이다. 결국 우리의 민족주의는 곧 대한민국의 성공을 낳게 만든 가치와 문화(예: 생산산업주의), 제도와 법(예; 국가보안법), 그리고 인물과 지도자(예: 이승만, 박정희)를 짓밟고 되돌리려는 세력과의 투쟁을 통해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허구적 반민족주의가 민족주의로 둔갑하여 대중을 사로잡고 현혹시키는 현상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사이비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민족 전체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한국 민족주의가 가야할 길을 만들고 방향을 설정해주어야 할 민족주의세력이 그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가 잘못된 길로 가서는 안된다고 하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허구적 민족주의가 왜 반민족적인 것이고 반역사적인 것인지를 설명하고, 더 중요하게는 우리가 가야할 민족주의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실천 투쟁에 나서야 한다. (freezone2005.com)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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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4 오전 11: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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