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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바벨탑과 '전범' 사담 후세인의 운명

Written by.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입력 : 2003-12-15 오후 12: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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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n피플] 사담 신병,이라크 특별전범재판소에 회부될 듯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집권하는 동안 자신을 바벨탑을 세운 네브카드네자르 2세라고 불렀다. 네드카드네자르 2세(재위 BC 604~ 562년)는 고대 신바빌로니아(BC 625~539년) 왕국에서 가장 뛰어났던 왕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 물론 시리아까지 모두 지배한 절대군주였다. 당시 중동과 소아시아, 이집트,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세력이 강대했던 신바빌로니아 왕국은 현재 이라크를 중심으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었다. 네드카드네자르 2세는 특히 BC 586년 당시 유다 왕국(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성전을 파괴했으며 유대인 수 만 명을 포로로 잡아 수도 바빌론(현재 바그다드 인근지역)으로 끌고 갔다. 네드카드네자르 2세는 전쟁포로들을 동원해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바벨탑을 세웠다.

후세인의 통치 시절 이라크의 집권 바트당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이뤘던 바빌론의 영광을 후세인 대통령이 재현했다'고 국민들에게 선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후세인은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신을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서는 아랍의 맹주로 자처했었다. 그는 또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켰으며 쿠웨이트를 침공하기도 했다. 196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197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2003년 4월 9일 미군의 바그다드 함락으로 권좌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라크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였다.

그는 현상금 2,500만 달러가 걸린 미군의 '최우선 수배자'로서 도피생활을 해오다 마침내 2003년 12월 14일 미군 특수부대와 쿠르드 민병대의 합동작전으로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백50㎞ 떨어진 고향 티크리크에서 생포됐다. 1937년 4월 28일 태어난 그는 생후 9개월 만에 부친을 잃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외삼촌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아랍민족주의에 심취했던 그는 1956년 이라크 왕정체제 타파를 주장한 바트당에 입당, 청년 핵심 당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59년 왕정붕괴 후 집권한 군사정부의 압델-카림 카셈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바트당의 모의에 참여했던 그는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자 유목민으로 변장한 채 시리아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도망가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1963년 바트당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그는 바그다드로 돌아왔으나 불과 9개월 후 다시 정권이 뒤집히자 체포돼 3년 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1968년 바트당이 집권하는 쿠데타에서 핵심역할을 한 그는 혁명평의회 부의장이 되면서 권력을 잡게 된다. 이후 그는 바트당의 반대파는 물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당내 비판세력까지 모두 피의 숙청을 단행했으며 1979년 이라크 지도자가 됐다.

세계 석유 파동으로 엄청난 달러를 거머쥔 그는 이란에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의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전략을 이용, 1980년부터 8년 간 이란과의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승패 없이 끝난 이 전쟁 때문에 이라크는 주변국들에게 막대한 빚을 져야 했고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게 됐다. 국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오르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후세인은 1990년 8월 전격적으로 부유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 침공은 이라크의 옛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대의 명분을 내세웠으나 미국이 이끄는 다국적군에 패퇴한 이라크는 이후 유엔과 미국의 경제제재 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후세인은 이 같은 국제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이슬람 지도자라는 말을 들으면서 국내적으로 권력을 탄탄하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는 2001년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주도하는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선제, 예방 공격의 희생자가 됐다. 이라크군은 2001년 4월 최정예 부대인 네부카드네자르 보병사단을 앞세워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과 맞섰으나 결국 패배했고 그는 8개월 간 도망자로 전전하다 체포되고 만 것이다. '직면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사담'이라는 이름처럼 그는 미국에게 두 번이나 맞섰으나 모두 부시 부자에게 패한 채 이제 전리품이 된 셈이다.

그러면 앞으로 후세인의 신병은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그는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9.11 테러를 배후 조종했으며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등 전범인가, 또 무고한 국민을 죽이고 고문하는 등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인가. 그의 향후 신병 처리 문제는 이라크 뿐 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이다.

아흐마드 찰라비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 위원은 후세인이 공개 재판에 회부돼 범죄에 합당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통치위원회는 최근 후세인을 비롯한 바트당 정권 핵심 관계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특별 사법재판소를 구성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집권기간 동안 저질렀던 각종 범죄만을 볼 때 당연히 이라크 국내법에 따라 이라크인에 의해 이라크에서 처벌받아야 한다고 논리이다.

후세인 바트당 정권은 수많은 사람들을 체포, 투옥, 고문, 살해했으며 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망명하는 등 폭정을 저지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후세인은 또 1980년대 이라크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을 독가스 등을 사용해 학살토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쿠웨이트 침공과 이에 따른 제1차 걸프전쟁에 대한 책임 문제도 면할 수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 사실만으로도 후세인은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미군정과 과도통치위원회는 이라크 전범 단죄의 일환으로 지난 10일 이라크에서 자행된 반인권 및 학살행위 등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이라크 전범 특별재판소에서 그를 단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라크 전범 특별재판소가 미군정에 의해 사실상 좌지우지될 수 있어 후세인에 대한 재판에서 미국에게 불리한 사실이 은폐될 수도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그가 저지른 국내와 국제법상의 범죄의 전모를 모조리 파헤치고, 특히 미국이 이라크 공격 이유로 내세웠던 9.11 테러 배후와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 법정을 구성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대량 학살과 전쟁 범죄 등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대한 국제 법정 구성은 아무런 국제법적 제약이 없다. 국제법학자들이나 인권단체들은 르완다나 유고 내전 관련 전범 처리처럼 단일한 국제법정을 구성하거나 아니면 이라크의 주권을 존중해 시에라리온 내전 처리 방식처럼 해당 국가와 국제기구가 혼성 법정을 구성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의 여론이나 저항세력과의 게릴라전 등을 감안할 때 미국과 이라크 과도 통치위는 '이라크인에 의한 단죄'라는 이유를 들어 이라크 전범 특별재판소에서 후세인을 재판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라크 공격과 함께 후세인 등 이라크 지도부의 제네바 협약과 전쟁법규 위반, 과거의 각종 반인권 범죄 및 학살행위를 조사하는 등 전범 재판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 왔다. 이와 관련, 피에르 리처드 프로스퍼 미국 국무부 전범문제 담당대사는 '이번 전쟁의 전범들을 재판하기 위한 국제법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부시 대통령도 후세인을 국제 전범으로 규정하고 그의 생포나 사살 여부에 관계없이 생사가 확인되는 대로 그를 정의의 심판대에 반드시 세우겠다고 공언해왔다.

부시 행정부는 또 후세인 처리 문제를 이라크내 치안 유지와 저항 세력의 제거 및 다국적군 파병, 대선을 앞둔 미국 국내 정치에 적절히 활용할 경우 상당한 전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 공격 이유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다면 부시 행정부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후세인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할 것으로 분석된다. .

따라서 이라크 전범 특별재판소는 제2차 대전 후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소(1945-46), 도쿄 국제군사재판소(1945-48), 유고 국제전범재판소(1933). 크메르루즈 전범재판소(2003) 등의 사례에 따라 후세인 등 피의자들을 재판할 것이다. 이 경우 후세인은 '전범 수괴'로 1983년 쿠르드족 바르자니 부족 학살사건, 1988년 할라브자 시에서의 화학무기 사용을 통한 쿠르드족 학살, 1991년 걸프전 이후 시아파 대학살 혐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유엔 결의 위반, 제네바 협약위반 및 기타 전쟁범죄 등의 죄목으로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의 심판대'에 서게 될 후세인의 운명은 그의 말대로 '알라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약력
한국일보 모스크바 주재 초대 특파원을 지냈고 사회부 차장, 국제부 수석 차장, 주간한국 부장을 역임했다. 한국 신문협회 기자 대상, 한국 기자협회 기자상, 백상 기자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들>,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이 있으며 현재 국제 분야의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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