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의 교훈
오늘(6월 29일)은 서해교전 5주기가 되는 날이다. 서해교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에 서해 연평도 서방 7마일 해상에서 남북한 해군 간에 일어난 소규모 전투다. 북한 해군 등산곶 경비정(200톤급)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3마일 월선 남하했다. 북한 경비정은 남하를 저지하던 우리 고속정 357정(150톤급)을 근거리에서 전포로 기습공격했다. 한동안 치열한 함포전이 계속됐다.
우리 고속정은 침몰되고, 북한 경비정은 화염에 휩싸여 동료 함에 의해 예인돼 북상했다. 북한 경비정의 피해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전이 일어난 이날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이 열린 날이었다. 북한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 하에 도발을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날 우리 국민은 북한 ‘선군정치(先軍政治)’의 호전성과 무력 적화 야욕을 실감했다.
북한 경비정에 비해 성능과 사격통제장비가 우수한 우리 고속정 두 척이 편대로 기동하면서 초기에 전투를 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가? 무장이 현대화된 오늘날 기습을 당한 후 반격해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기습공격을 받고도 끝까지 용감하게 싸워 적을 격퇴하고 NLL을 사수한 우리 장병들의 군인정신을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북한 경비정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다 적의 공격에 숨을 거둔 고속정 정장 고 윤영하 소령,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함포 방아쇠를 당긴 고 조천형 중사와 고 황도현 중사, M60 기관총 사수로 자신의 몸을 은폐하기도 힘든 노출된 갑판에서 응전사격 중 산화한 고 서후원 중사, 조타장으로 교전 당시 타기를 잡고 있었던 고 한상국 중사, 부상한 전우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중에 피격을 당해 3개월 여의 투병생활 끝에 꽃다운 청춘을 접은 의무병 고 박동혁 병장, 먼저 이상 여섯 명의 공적을 높이 기리며 전우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
서해교전 5주기를 회고하면서 앞으로 우리 후배 장병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북한 해군사령부는 지난 5월 10일부터 최근까지 성명을 발표해 NLL 인정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면서 ‘제3의 서해교전 발발’ 운운하며 협박을 계속하고 있다. NLL은 1953년 이래 남북한 간 실질적인 해상 군사경계선이자 절대 사수해야 할 우리의 생명선이다. NLL을 지키지 못하면 서북도서(백령도·연평도 등)를 방어할 수 없으며, 자유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배들은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목숨을 다해 사수한 것이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전우가 사수한 NLL, 우리가 지킨다’는 구호대로 철저히 무장하고 경계태세에 빈틈이 없도록 특별히 당부한다. 오늘도 어려운 여건 하에서 묵묵히 NLL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는 우리 해군 장병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오직 승리의 무운이 항상 같이하길 기원한다.(konas)
김성만 (예비역 해군중장·전 해군작전사령관)
출처: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