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죽어서도 한국 못잊은 佛 참전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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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념에 잠긴 프랑스 참전용사의 부인
지난 9월 18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수입면 문등리 931고지 '단장의 능선'에서 6.25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참전을 기념하는 표지석 제막식이 열린 가운데 한국전 참전용사인 남편의 유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나바르(71) 부인이 기념비를 어루만지며 상념에 잠겼다. |
"나의 유골을 전우들이 잠든 곳에 뿌려달라."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3년 전 노환으로 사망한 프랑스의 한 노병이 자신의 유골을 한국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 사실이 30일 뒤늦게 전해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프랑스 참전용사인 고(故) 모리스 나바르 씨가 그 주인공.
2004년 79세를 일기로 사망한 나바르 씨는 숨지기 직전 가족들에게 "내가 죽은 후 유골을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한국의 격전지 931고지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골을 뿌려달라는 장소인 931고지는 851, 894고지와 함께 강원도 양구군 사태리에 있는 일명 '단장의 능선'을 말한다. 당시 이 고지는 금성(金城) 지구에 위치한 적의 후방기지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고 동부 전선에서 아군의 진격작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고지에 대한 쟁탈전에서 유엔군 3천700여 명과 북한군 2만5천여 명이 죽거나 부상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나바르 씨는 1951년 2월 일등병의 계급으로 참전, 미 2사단에 배속돼 그 해 9월 13일부터 23일간 철의 삼각지대(철원~김화~평강지역)에서 전개된 유엔군의 대공세에 투입됐다. 이 기간 931고지를 중심으로 한 단장의 능선에는 23일간 30만발의 포탄이 쏟아져 산의 지형 자체를 거의 바꿔놓았다.
1951년 10월 12일 나바르 씨는 야간공격 작전에 참가해 적의 마지막 저항선인 851고지에서 적의 유탄으로 부상했다. 1952년 2월 프랑스로 돌아가 치료를 받은 뒤 이듬해 3월 재차 참전,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가 같은해 10월 하사로 진급해 귀국했다. 이후 나바르 씨는 인도차이나 전쟁에도 참가했다.
나바르 씨의 가족들은 주한 프랑스대사관에 유언을 전달하고 도움을 요청했으며 육군은 지난 9월 18일 단장의 능선에서 거행된 '프랑스 참전 기념비' 제막식 행사를 계기로 고인의 유골을 뿌리려다 비로 인해 연기했다.
육군 관계자는 "현재 고인의 유골은 21사단이 보관하고 있으며 조만간 고인의 유언대로 유골을 풍장(風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프랑스대대에 편입한 한국군 18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일등중사(선임하사)까지 진급했고 프랑스 동성훈장을 2개나 받은 참전용사 박동하(74) 옹은 "프랑스군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군기가 엄했고 상호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우애가 남달랐다"며 "주어진 임무를 반드시 완수하는 훌륭한 군인들이었다"고 회고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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