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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기본합의서는 어떤 문서인가?

Written by. 김지욱   입력 : 2007-10-07 오후 7: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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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나라 안보문제와 관련하여 NLL(해상 북방한계선)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됨에 따라 1992년에 남북 간에 맺어진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다시 한번 연구해 볼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1988년 12월 28일 당시 강영훈 국무총리의 제의로 1989년 2월 8일부터 1990년 7월 26일까지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 회담과 관련하여 8차례의 예비회담과 두 차례의 실무접촉을 가졌다.

 이후 남북한은 1992년 10월까지 8차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을 성사시켰는데 1991년 12월 31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 서명하였다.

 특히 이 합의서에 남북 양측의 국호와 서명자의 직책을 처음 명기함으로써 상호 인정의 토대를 마련하고 남북관계가 정상적으로 접어드는 기틀을 마련했다.

 ▲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장면 ⓒkonas.net

 남북기본합의서의 주요 내용

 서문과 함께 제1장 : 남북화해, 제2장 : 남북 불가침, 제3장 : 남북교류협력, 제4장 : 수정∙발효 등 4장 25조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남북한이 당장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공동 인식 아래 상호 인정, 군사적 불가침, 교류∙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내외에 천명하면서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밝힌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는 선언을 했고 민족적 화해, 평화보장과 교류협력의 실현을 선언했다.

 제1장에서는 남북화해에 관한 실천과제(제1조~7조)를 제시하여 분단 47년 동안 남북 사이에 쌓여진 불신과 대결의 장벽을 헐고 민족 성원 상호간에 화해와 신뢰를 쌓아 나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제1조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상호 체제인정 조항을 설정한 것은 남북이 상대방을 국제법상 국가로 승인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의 정치적 실체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2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내부문제 불간섭의 원칙’을 명문화하였다. 북한이 우리에게 상호 체제인정∙존중원칙에 반하는 구가보안법 철폐,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미군 철수 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국제법상 국내문제에 준하는 것으로 내부문제 간섭에 해당된다.

 제3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상투적으로 쓰고 있는 ‘군부파쇼’, ‘미제 식민지’ 등의 표현은 비방 중상에 해당되므로 제3조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제4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파괴, 전복’은 상대방 체제를 교란, 와해할 목적으로 사전 계획된 폭력, 비폭력의 제 수단을 동원한 물리적 위협행위를 말한다.

 제5조는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6조는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합의서에 ‘공동으로’라고 표현한 것은 남과 북이 상호 상대방의 국가성을 부인하려는 뜻에서 연유된 것이다.

 제2장에서는 불가침에 대한 쌍방의 확고한 약속을 내외에 선언하면서 그 이행을 보장해 나갈 구체적인 실천조치(제9조~13조)들을 담고 있다.

 제9조는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무력행사 금지의 원칙’을 규정한 것으로서 기본합의서의 조항 중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5조에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규정하고, 다시 제9조에 무력행사 금지의 원칙을 규정함으로써 남북한 사이의 무력행사금지의 규제장치는 2중으로 되어 있다.

 제10조는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북 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쟁’을 전쟁이나 무력의 사용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11조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경계선’으로 표시한 것은 남북한 간의 관계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고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임을 고려한 것이다.

 제12조는 남북 간의 불가침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신뢰구축, 그리고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 등 군축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제13조는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가 사이에 직통 전화를 설치 운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군사적 신뢰구축의 중요한 수단이다.

 제3장에서는 남북 쌍방 간의 경제 교류와 협력의 목적이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 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는데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기본합의서에는 합의내용의 이행을 보장하고 실행해 나갈 협의∙실천기구(분과위원회, 공동위원회, 연락사무소 등)에 관한 조항들을 각 장마다 2~3개항씩 설정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온 배경

 1989년 동구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된 후 1990년 10월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1991년 12월 소련마저 붕괴되었다.

 이러한 세계 질서의 영향을 받은 북한은 이때 생존전략 차원에서 체제유지를 위한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그 동안 반대해 왔던 남북한 UN 동시가입을 수용(1991.9.17)한데 이어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발효(1992.2.19)시킴으로써 남한으로부터 체제인정과 불가침을 보장받았다.

 한편 내부적으로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앞세워 주민들의 사상통제를 강화하고 핵무기∙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은밀히 추진하였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의의

 첫째 이 합의서는 7천만 온 겨레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3자의 개입없이 남북 간에 공개적인 협의를 거쳐 채택, 발표된 최초의 공식 합의문서이다.

 둘째 이 합의서는 조국통일을 한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한 과정으로 본다는 전제 하에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기본틀’을 제시했다.

 셋째 이 합의서에서 남북한이 상호 체제인정∙존중을 약속한 것은 각기 상대방을 국제법상 완전한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으나 상대방의 ‘실체성’은 인정한다는 뜻이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성격

 첫째 서문에서 남북 간의 관계가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선언한 것은 남북한의 관계를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한때 이 합의서의 조약성 및 국회 동의 필요성 여부 등에 관하여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합의서는 국제법상 상호 승인한 국가 간의 조약은 아니다.

 둘째 서문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남북한이 통일의 개념을 하나의 실천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과 이 합의서가 화해, 협력단계의 남북 관계를 규율하는 일종이 잠정협정임을 나타내고 있다.

 셋째 우리 헌법(제73조)상 조약 체결권자인 대통령과 북한 헌법(제96조)상 조약 체결권자인 주석이 최종적으로 재가했으므로 남북한의 조약 체결권자가 합의한 공식문서이다.

 넷째 합의서 명칭에서 ‘남북 사이’로 표현한 것은 이 기본합의서의 채택으로 남과 북이 상호 국가승인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합의서’라고 표시한 것은 단순한 ‘정책의 선언’이 아니라 남북한이 함께 그 실천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규범’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와 NLL문제

 NLL은 1953년 8월 30일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설정했다. 그 동안 북한은 NLL을 묵시적으로 인정해 왔다. 그 후 남북한은 NLL이 휴전협정에 명시되지 않은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남북기본합의서에 관련 내용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선포(1999년 9월 2일)와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를 발표(2000년 3월 29일)하면서 수시로 NLL을 침범했다. 지금도 북한은 NLL무실화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NLL을 지키기 위해 우리 해군장병들은 1999년 6월 15일의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29일의 서해교전에서 북한 해군과 교전을 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제2장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에 있는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규정(제10조)을 근거로 NLL의 재조정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합의든 부속합의서는 본문 조항을 충실히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문조항의 충실한 이행’이라는 전제 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본합의서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 무력 불가침(제9조)과 평화적 해결원칙(제10조), 그리고 이의 전제가 될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군축문제(제12조)가 이행되었을 때 비로소 해상 경계선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연평해전 등 그 동안 수많은 무력 침략행위를 자행하여 기본합의서를 위반하면서 오직 ‘부속합의서’에 나와 있는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는 조항만을 존중하겠다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받아들인 수 없는 주장이다.

 NLL은 반세기 넘게 남북 간의 충돌을 막아온 ‘평화 수호선’이고 ‘해상 인계철선’이다. 만약 이를 양보하게 되면 인천과 수도권의 ‘안보차단막’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남북기본합의서가 무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남북 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아예 거론조차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부득이 거론하게 된다면 이 문제를 철저하게 안보 군사적인 입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좌절

 남북기본합의서는 조국 분단 이후 남북 간에 맺어진 문서 중에서 가장 공을 들여 만든 것이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특면에서 이 합의서는 영국 헌정사의 기본 장전이었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견줄 수 있는 남북관계의 대장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합의서는 발효 이후 불과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효용성을 정지당하고 말았다. 북한의 핵사찰 거부문제가 돌출되면서 팀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되고 1994년 7월 북한 김일성이 사망하여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됨으로써 남북 기본합의서는 사실상 한 장의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남북 간에 합의된 후 15년이 지난 오늘에는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 조차 희미한 추억의 문서로 남게 되었다.

 이 합의서의 이행을 어렵게 만든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합의서는 민간교류를 포함한 광범한 남북교류를 통해서 어느 정도 화해와 교류협력의 연결선이 마련된 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남북 당국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둘째 이 합의서는 남북 공동가치에 대한 일치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양측의 입장과 이익을 한꺼번에 합의서에 배합했기 때문에 양측이 이 문건을 제각기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셋째 북한이 남북관계의 개선에 대한 내재적인 필요성보다는 국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이 합의서에 매달린 측면이 컸다. 그 후 북한이 급격한 경제위기로 빠져 들면서 이 합의서가 북한 체제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기피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북한의 체제 방어적 전략으로 인해 김일성 사후에 체제위기가 심화되면서부터 아깝게도 남북기본합의서가 사문화되고 말았다.

 맺는말

 오늘날 북한이 이 합의서의 복원에 관심이 없으면서 NLL 문제와 관련하여 느닷없이 부속합의서 조항을 들고 나와 NLL 재설정을 시도하고 있으니 답답한 점이 있다.

 앞으로 남북기본합의서가 과연 재생(再生)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의견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에 대해 남북기본합의서의 복원을 계속해서 촉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북한보고 먼저 합의서를 지키라고 요구하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합의서를 복원하기 위해서 우리 쪽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북한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북정책이 혹시 북한에게 체제붕괴를 유도하는 것으로 또는 흡수합병을 시도하는 것으로 비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국통일을 향한 평화공존과 협력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konas)

 김지욱(성우회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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