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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말하는 군인-‘푸른 제복’이 주는 의미

박상유 대령·육군2포병여단 참모장
Written by. konas   입력 : 2007-11-28 오전 10: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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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포병들은 일반 사람들이 듣기에 이상한 서수와 기수가 포함된 숫자읽기를 사용한다. 포 사격시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포병이기에, 숫자를 읽을 시 습관화돼 다른 사람들과 분명히 차별화된다.

얼마 전 ○○카드회사에 문의할 때였다. 주민등록번호를 포병답게 불러 주다가 직원이 뭔가 이상한지 내 직업을 확인하고, ○○년에 경기도 ○○지역에서 근무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그렇다고 대답하자 수화기에서 매우 반가워하는 음성이 들렸다.

“충성 ! 대대장님, 저 김○○입니다.”
“누구신지 ?”
“수송부 김○○ 상병입니다.”

기억이 날듯 말듯 한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매달 휴가 나갔던 김○○입니다.”
아! 드디어 기억이 났다. 암으로 투병 중이신 홀어머니 간병 때문에 자주 휴가를 나갔던 부하였다.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 친구의 전역을 보지 못하고 내가 먼저 다른 부임지로 떠나게 돼 한동안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8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 부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준비, 쏴 !”
“꽝 !”
엄청난 굉음을 쏟아내며 발사되는 포탄 한 발을 위해 일반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과정을 거친다.

우선 표적을 찾고, 방위각과 거리를 계산하고, 탄종과 장약을 선택한다. 그리고 화포를 표적지역으로 고정시킨 후, 사격한다. 전혀 무관한 듯한 일련의 여러 임무 과정이 연계돼 비로소 초탄이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다. 한 문의 화포를 다루는 전 포인원은 10명 정도지만 관측·통신·측지·사격지휘분야 등 모두가 하나 돼야만 포탄을 발사할 수 있다. 만약 자기만 알고, 또 치밀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고도의 팀워크가 요구되는 포병부대에서는 생활하기 힘들 것이다.

팀워크가 이렇게 중요한 포병대대 지휘관으로 지냈던 2002년. 김상병(그 당시는 이등병이었다)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내게 자신의 성장 이야기와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부터였다.“휴가 보내 달라는 편지구나. 아직 전입 100일도 안 됐는데, 벌써 휴가 보내 달라니.”

가끔씩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간호해야 한다는 거짓말로 휴가를 보내 달라는 병사들이 있는지라 이 편지 내용도 마찬가지리라 판단하고 그냥 넘겼다.그러던 어느 날 김상병의 가정을 도와주고 있는 한 봉사단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3년 전 폐암에 걸리신 뒤 수술받으셨던 김상병 어머니가 쓰러져 병원에 다시 입원중이라는 사연이었다.어머니를 보살피던 봉사단체 관계자는 그 후 김상병의 어머니가 폐암이 재발했으며 암세포가 간·위로 전이돼 회복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전해줬다.

나는 수송관과 김상병이 소속된 수송분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했다.분대장은 분대원들과 조심스럽게 상의한 후 자신들의 휴가를 김상병에게 나눠 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얼마를 사실지 모르는 홀어머니를 간호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대대장님 가시고 얼마 뒤 어머니 장례 치렀습니다. 다행히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고 병장으로 전역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죽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불쌍한 엄마 생각에, 옆에서 말없이 저를 응원해 준 전우들이 있어 끝까지 참을 수 있었습니다. 전우들이 저를 위해 그렇게 가고 싶은 휴가를 포기했다니 지금도 가슴이 찡합니다.”

동료 전우들의 양해 아래 대대의 포상휴가는 김상병이 많이 갔다. 부대원 모두 김상병이 짧은 시간이라도 어머니 옆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정도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었다.“염치없이 꼬박꼬박 휴가 나가면서 대대장님과 전우들한테 얼마나 죄송했는데요. 대대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뭐, 내가 해 준 게 있나. 군생활 열심히 하니까 주위에서 도와준 거지. 지금은 어떤가?”“이젠 취직해서 돈도 벌고 내년이면 장가도 갑니다. 다 대대장님과 전우들 덕분입니다.”내 덕분이라고? 내가 굳이 해 준 것은 고작 휴가증 정도 챙겨 준 것밖에 없는데. 오히려 김상병의 안타까운 일로 인해 부대원 모두가 더 화합하고 일치단결한 것 같은데.

자포자기하지 않고 군생활 끝까지 잘해 준 김상병한테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김상병과 통화를 마친 후 대대장으로 부대를 지휘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 특이한 목소리도 아닌데, 포병 숫자읽기 하나로 전화상에서 이렇게 반가운 만남을 가질 수 있다니. 군복을 입고 있지 않았으면, 내가 포병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으리라.

김상병과의 통화로 내가 왜 군복을 아직까지 입고 있는지 잠시 돌아보게 됐다.“커서 뭐가 되고 싶니?”“저는 나라를 지키는 씩씩한 군인이 될 거예요.”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주저 없이 군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렇게 입고 싶어 했던 푸른 제복을 입게 됐다. 군인이 됐다는 기쁨도 잠시, 겉모습만 군인이 아닌 진정한 군인으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혈기왕성한 초급장교 때는 이것저것 실수하면서 하나씩 배워 갔지만 계급이 높아질수록 해야 할 일도 늘어났고, 그에 대한 책임도 한층 더해졌다.가족들이 깨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군화끈을 조이며 출근하면서 마음을 다부지게 먹을 때도 있었지만,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다른 사회인들도 자신의 직업에 회의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하는 대로 부대 운영이 되지 않고 삐걱거릴 때,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과 하늘밖에 없는 전방지역에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짐을 쌀 때, 새로운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볼 때 등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내가 왜 굳이 푸른 군복을 고집하느냐 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참 살맛나는 일들이 있어서다.

내 조국을 내손으로 지킨다는 자부심과 함께 부하의 진심어린 “고맙습니다” 라는 존경어린 말 한마디, 상관으로부터 듣는 “수고했어” 라는 짧은 말 한 마디는 여전히 내가 군대에서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군복을 입지 않은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사실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내가 군복을 입고 부대에서 근무할 때 진정한 ‘나’를 느낄 수 있다. 내가 가진 능력이 크지는 않지만 내 위치에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고, 화합·단결된 강한 부대를 만드는 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다가서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임이 틀림없다.

 출처: 국방일보 11월23일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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