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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에서-시련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Written by. 박세직   입력 : 2007-12-17 오후 10: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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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씻고 닦아내도 끝이 없는 바다 기름, 하루 종일 퍼내고 담아내도 한없이 몰려드는 검은 재앙.오늘따라 바닷가의 칼바람은 자원봉사자들의 뼛속을 파고든다. 칼바람쯤이야 각오하고 나선 길이지만 끝내 울어버리는 어느 주민의 통곡에 모두의 애간장을 도려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넘실거리는 파도, 하얀 모래사장, 입맛 당기는 횟감으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했던 태안 앞바다. 540여㎞에 이르는 국내 유일의 국립해상공원.그러나 이러한 천국을 상상하다 지옥 같은 재앙의 현장을 목도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은 찢어져 내린다. 과연 인류가 직면할 수 있는 재앙은 어디까지인가? 인간이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렇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개의 시련은 도약의 계기가 됐고 재앙은 종종 희망의 씨앗이 됐다. 그중에서도 우리 민족은 절망 속에서 희망의 꽃을 피우는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대한제국 시절, 국채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담배를 끊고 비녀·가락지를 팔아 모은 돈은 불과 몇 개월 만에 230만 원이 됐다. 일제가 억지로 중단시키지 않았더라면 금방 목표액를 달성했을 것이다.

 IMF 시절, 손가락의 결혼반지까지 빼냈던 금 모으기 운동은 외환위기(IMF) 극복에 불을 당긴 기폭제가 됐고, 한국인의 위기 극복 능력을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우리 스스로 반신 반의했던 88 서울 올림픽을 최고의 명작으로 치러 냈고, 그것은 2002년의 한일 월드컵 붉은 열풍으로 이어졌다. 

 초속 10m가 넘는 강풍은 더욱 세차게 자원봉사자들의 뺨을 후려친다. 그러나 그 무엇이 하얀 백사장을 되찾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을 가로막을 수 있을까. 이제 막 수능시험을 마친 예비 대학생들이 부지런히 먹기름을 퍼 담고 있다. 멀리서 자원봉사하러 온 아저씨·아주머니들이 퍼 담은 기름을 나른다. 이제는 집에서 편히 쉬어야 할 역전의 노병들도 나섰다.

 칠순을 넘긴 노장군의 손에는 지휘봉 대신 흡착포가 들려 있고, 소총을 들고 전장을 누볐던 참전용사들의 손에는 기름동이가 들려 있다. 목숨 바쳐 지켜 온 이 국토가 폐허로 변해 가는 것을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아직도 소신에게 배 열두 척이 남아 있습니다”라는 이충무공의 결연한 의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 필사즉생이라 했다. 온 국민이 이렇게 죽을 각오로 사투를 벌이는데 이보다 더한 재앙도 우리를 주저앉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굳게 믿는다. 머지않아 우리는 서해안의 하얀 백사장을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은 이 바다를 헤엄치며 노닐게 될 것이다.

 오늘은 눈물로 흡착포를 던지는 어민들이 내일은 기쁨으로 고기잡는 그물을 던지게 될 것이다. 되돌아오는 길에 성경 한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Konas)

 박세직(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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